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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Mar 30. 2023

[5] 정신의학과 선생님과 대화

의사와 대화를 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나?? 문제는 그대로 있는데...

정신의학과에 도착하였다.



사실 가기 싫어서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방문했다. 4층짜리 건물의 2층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가기 싫었기 때문에 정말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갔다. 나의 선입관 때문인지 입구가 더 으슥하게 보여서 무섭기도 하였다. 2층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 갔다. '따릉'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한껏 미소를 지은 접수원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분의 목소리가 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이상한 곳은 아니구나...' 하고 살짝 안심했다.



"예약하고 오셨나요?"

"네... 예약하고 왔어요"



내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접수원은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과 예약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안내해 주었다. 아로마 향 같은 게 나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편안한 분위기를 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조금 더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내 생각에는 환자끼리 만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예약시간을 좀 넉넉히 하는 것 같다. 내가 정신의학과를 여러 번 방문하는 동안 다른 환자를 만난 적은 딱 1번밖에 없다. 이 추측이 맞으려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을 잘 이해 못 하였다. 누군가는 힘들 때 맛있는 것을 먹으며, 지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마음이 풀리고 힘이 난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지인들과 대화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든다.



'문제 상황은 그대로 남아 있잖아, 지인들과 대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여기서 나의 성향을 눈치를 챗을 수도 있겠다. 나는 MBTI에서 F 인 공감형이 아니라, T 인 인지형이다. 문제가 해결되거나 혹은 해결방안이 있을 때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지인들과 대화할 때 T 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면, 상처를 받길래 F를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T의 사회화'라고 표현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앉아있었는데, 미소를 띤 접수원이 원장실로 들어가 보라고 하였다. 나는 똑똑하고 문을 노크한 후 들어갔다. 방안에는 여자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원장실 역시 아득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고, 뒤편에는 여러 가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미소를 짓더니 말을 하였다.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의 미소를 본 게 얼마만인가 싶기도 하다. 직업적인 미소라는 것을 알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작은 행동에도 기분이 좋아지다니 내가 정말 정신적으로 힘들었나 보다. 여기서의 경험은 앞으로 내가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데 큰 동기가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주로 질문을 하고 내가 답변을 하는 형식이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오늘도 힘들어했던 불면증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새벽 3~4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고 피곤한 상태로 깨어난다는 말을 했다. 



"많이 힘든 상황이네요. 약을 처방해 줄게요. 이거 드시면 잠 잘 오실 거예요."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회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회사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어떠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는지 질문을 하셔서, 안 좋은 기억을 끄집어내어 고민 끝에 답변을 했다.



"주로 회의시간에 폭언과 욕설을 하고,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저에게 욕을 해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제가 '저한테 왜 그러시나요?' 라고 상대방에게 물어본적이 있어요. 그런데 가해자가 저를 보고 '구타유발자'라고 답변을 한 것이에요. 이유도 없이 내가 구타율발을 하기 때문에 나를 괴롭힌다고? 라는 생각으로 정신이 어지러웠어요. 심지어 작년에는 손바닥으로 등을 맞고, 주먹으로 팔을 맞기도 하였어요"



사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문서를 작성할 때 가장 힘든 점이 여기 있다. 사람은 '생존본능'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그 기억이 계속해서 난다면 사는데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점점 잊혀진다.



그런데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애써 잊은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상세히 6하 원칙에 따라서 말이다.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추가 설명을 해야 할 때도 많다. 겨우 겨우 잊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말도 안 되게 고통스럽다. 이 날도 이야기하는데 매우 힘들었다.



선생님께서는 가만히 들으시다가, 나의 감정을 물어보셨다. 어떤 감정이 드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억울함이에요"



의사 선생님이 자세를 고쳐 앉으시더니, "억울함이요?"라고 되물으시고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다. 이 '억울함'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한 단어였나 보다. 조금 생각을 하고, 내 감정에 대해서 설명을 해보았다.



"모든 것에 대해 억울한 생각이 들어요. 이 사람은 이미 욕설과 폭언 문제로 인사과에 두 번이나 다녀온 사람인데, 이 사람이 아니라 피해본 사원들이 부서를 이동했어요. 신고를 하면 그게 저에게도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두려워요. 그리고 이런 사람을 그대로 방치하는 인사과의 행동도 너무 화가 나요"



지금은 내가 보기 편하게 정확한 단어를 쓰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어버버 하면서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지금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하시고, 불면증도 있으셔요. 일단 안정제와 수면제를 같이 드릴게요. 일단 드셔보시고 다음에 오셔서 드시고 나서 어떠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나의 첫 정신의학과 방문은 마무리 되었다. 나는 미소를 띤 접수원에게 다음 예약을 하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왔다. 태어나서 처음 간 정신의학과는 내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생각도 정리되고, 감정을 드러내다 보니 속이 답답한 느낌도 줄어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마음을 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대화를 통해 마음이 풀리는 일이 적었나 보다. 이해를 받고 공감을 받으니 오전보다 조금은 나아졌다. 식욕이 없었지만 밥을 챙겨 먹고 약을 먹었다.



정신의학과 약을 먹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안먹어 본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혹시 정신의학과 약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나는 처음 먹어봐서 매우 당황했다. 내 감정을 내가 통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약을 먹고 난 후 얼마 있지 않아 정신이 멍해졌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라. 헤롱헤롱한 느낌이 계속해서 들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안정제의 경우 정신이 멍해진다고 하더라. 그런데 신기하게 정신이 멍해지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약을 먹고 난 후 과정을 설명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정신이 멍해진다 → 생각을 안 하게 된다 → 생각을 안 하니 스트레스가 없다 → 괜찮다



쉽게 설명하면 바보가 된 기분이다. 바보는 생각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 약을 먹고 나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게 되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컴퓨터에 앉았다. 지금까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메일을 회사에 보낼까 말까 하는 고민을 계속해 왔다. 이 고민으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더 이상 고민이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약을 먹고 난 후 아무 생각이 안 났기 때문이다. 뭔가 잘 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나. 막연하게 세상이 밝아보였다. 내가 미쳐가고 있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1초도 체 할 수가 없었다. 정신이 계속 멍했기 떄문이다.



컴퓨터를 키고, 신고 메일을 쭉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기분이 나아져서 그런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제와서 말하는 거지만, 신고 메일을 이렇게 작성하면 안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정식으로 다시 썻다. 이건 다음주에 회사에서 발생할 일이니 그 때 다시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정말 시행착오를 많이 겼었던 것 같다.



2022년 2월 10일 목요일 오후 3시 51분, 나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 했다. 



이 날짜는 나의 '가시밭길' 이 시작된 순간이였다. 당시에는 신고 후 매일매일을  후회 하였지만, 지금은 더 이상 후회 하지 않는다. 나는 선을 넘는 불합리함에 대응을 하였다. 더 이상 바보처럼 참고만 살지 않는다. 이제 할말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신고를 통해 지금의 나는 과거에 비해 더 강해지고, 건강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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