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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Apr 01. 2023

[7]부모님께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알렸다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여 미리 말해 둔다. 이번 이야기는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는 내용이 아니다. 당시에는 매우 원망스러웠고, 서운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말을 전달하는 나의 태도가 바르지 못하였다. 사람이 죽을뻔한 심각한 이야기를 아무일도 아닌 것과 같은 말투로 전달하다니 말이다. 어린애처럼 상대방이 모든 것을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나는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잘 못한다. 짜증, 분노, 기쁨, 사랑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말이다. 기쁨의 말을 해도, 미안하다고 말을 해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로봇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나는 진심인데도 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감정 표현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것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치명적이다. 



나의 생각과 상대방이 느끼는 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발생한다. 나의 마음을 몰라준다며 서로 오해하게 되고 다투게 된다. 가까운 지인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던 일이다.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네가 저번에 그렇게 말했잖아!!"

"업무를 이러한 방식으로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말했는지, 상대방이 잘못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생각이 상대방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나에게 손해이고, 시간 낭비이다. 한번 생긴 오해는 점점 쌓이게 되고, 나중에 결국 폭발하게 되어있다. 나의 말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라고 서로 오해를 푸는 과정은 매우 지치고 고단한 길이다. 



사실, 내 생각을 말로써 전달하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내면화가 되어서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아예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걸 깨달은 것은 나중의 일이고 당시에는 부모님의 행동에 서운하고, 화가 나고, 억울한 마음뿐이었다.



내가 전달하는 말과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말이 다르다는 것을 이 나이 되어서 깨닫다니... 늦은 건지 빠른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예 깨닫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번 일은 나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후유증을 회복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인데, 이러한 방식으로 나는 밑바닥에서 하나하나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쌓아 올려갔다. 내가 겪은 문제 상황에 대해서 하나하나 깊게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과정이 나의 후유증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서론을 이렇게 길게 작성하였다. 이번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시라도 내 부모님이나 지인을 원망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당시의 나는 원망했지만, 지금의 나는 원망하지 않고 있다. 읽으면서 그냥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넘어가 주시거나,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이라면 '지인들에게 말을 잘해야겠다' 하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이 책을 보시면서 다른건 다 몰라도, '내가 이야기한 것이 상대방에게 다르게 들릴 수 있겠구나' 라는 저의 깨달음만 가져가셨으면 좋겠다. 내가 죽을뻔한 사고를 겪으면서 깨달은 가장 귀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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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거듭하였던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 하고 나서부터, 왠지 모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기분이 상쾌하였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한 후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느끼지 않았는가? 나의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어졌다. 



나 지금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의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매번 문제 상황마다 주변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해결해 왔다. 나에게 책은 스승이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였다. 책을 통해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해결해 왔다. 이 방법으로 마음의 힘을 얻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동안에 내가 마주한 문제들은 이 방법으로 해결이 되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해결된 것을 보면, 아마 그동안 내가 겪은 문제들은 작은 문제였던 것 같다.



큰 문제는 이 방법으로 해결이 안 되더라. 스트레스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죽을뻔한 사고와 같은, 목숨을 위협하는 큰 문제는 이 방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라는 해결 방법은 알고 있었으나, 마음의 힘이 없었다. 자신감도 없었다. 책을 아무리 보아도 용기가 나지 않았고, 행동하지 못하였다.



내가 용기를 얻고, 행동하게 된 계기는 처음 본 의사 선생님이 해준 공감과 위로였다. 그리고 약의 도움도 컸다. 처음 본 사람의 공감과 위로가 이 정도로 힘이 되었는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는 과연 어느 정도 일까? 하는 마음에 설레었다.



'나에게 든든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앞으로 내가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받는 와중에 내 마음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관계가 더 돈독해질 것이다'



하는 생각이 있었다. 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 나 자신에게 '고생했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음의 힘을 얻고, 더 당당하게 나아갈 것이다. 신고 후 분명 안 좋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 뻔하지만 말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이겨 낼 수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나 스스로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혼자라면 어렵겠지만, 내 소중한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라면 나는 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으로 부모님께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사실... 휴가를 쓰고 3일간 집에 있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요"



이렇게 말로 시작하였다. 대화 내용을 적어보려고 했는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을뿐더러, 상세히 적으려고 하니 손이 떨려서 적지를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하나 챙겨 먹고 적어보려고 하는데, 내가 기억나는 건 부모님께 들은 몇 마디 이야기 밖에 없다.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뇌에서 지워졌나 싶기도 하다. 



대단하다!! 인간의 생존본능!! 이건 전혀 기억을 못해내는구나. 아마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그 당시 감정만 남아 있고, 자세한 기억은 없다.



그래도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는 부모님께 스트레스성 실신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이야기. 회사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그 사람 때문에 쓰러진 것 같다는 이야기. 회사에 신고했다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정신의학과를 다니고 있는 이야기. 이렇게 하였다.  



부모님은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아마 이 당시에도 나는 어버버 하면서 이야기 했다. 부모님은 다른 이야기에도 반응을 하셨지만, 정신의학과에 가장 크게 반응을 하셨다. 상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약을 방금 먹었는데도 두통이 찾아온다. 내 기억에 강렬한 것만 몇 가지 적어보겠다.



"뭐!!! 정신병원에 다닌다고??"

"다들 그렇게 회사생활을 한다. 그거 하나 못 참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해?"



기대와 다른 답변에 우선 당황을 하였다. 얼굴이 상기되었고, 숨이 점점 차올랐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부모님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면 하나다. '네가 참을성이 없어서 그렇다', '정신의학과 다니지 말아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겠냐!!' 



공감과 위로를 바랬건만, 나에게 돌아온 건 내가 참을성이 없다고 '내 탓'을 하는 부모님이었다. 정신의학과 다니지 말라고 주변의 시선을 더 신경 쓰는 부모님이 였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공감과 위로가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될까' 하고 워낙 기대가 컸을까... 부모님의 부정적인 반응에 충격과 억울함만이 내 몸과 신경 하나하나에 남아 있었다.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가까운 사람에게 듣는 '그건 너의 잘못' 이라는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과연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왜 내가 문제들을 혼자 해결하는데 익숙한지, 왜 내가 자책을 많이 하는지 이러한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의지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 의지를 하려고 하여도 '내 탓으로 돌리라'는 답변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늘 혼자 책을 보며 해결해 온 것이다.



지금의 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하기 위해서는 주변을 꼼꼼히 잘 살펴봐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들과 어떠한 대화를 하고 있는지, 내가 주로 하는 말은 무엇인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자주 듣는 말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봐야지만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 즉, 내가 어떠한 것에 영향을 자주 받고 살아왔는지 알아야 한다. 



부모님을 원망할 수는 없다. 그 시절에는 정말로 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며, 정보가 넘쳐나지도 않았다. 심지어 먹고사는 것도 어려워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나만해도 어렸을 때 주된 식사는 간장과 참기름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이었다. 계란후라이? 그런거 없었다. 



사람의 감정, 위로, 공감 이런 것을 돌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았다. 모두들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약한 자는 잡아 먹히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약육강식이 지금보다 더 심한 시대였다. 지금 내 정신으로 그 시대를 살아갔으면 분명히 잡아 먹혔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고 싶다. 



그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시고, 다음 세대를 더 풍족하게 만들어주신 그 고생을 알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맨땅에서 시작해서 현재는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신다. 마케팅, 세일즈 이런 교육도 없었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셨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정말 몸 하나와 노력, 근면과 성실로 다 해내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지 않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맞다. 그래서 정말로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원망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의 나는 부모님을 원망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서러움과 억울함, 그리고 기대를 배신당했다는 분노 밖에 없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 기억에 나는 이렇게 답변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이 쓰러져서 죽을 뻔했는데 그렇게 밖에 이야기를 못해요?!!"



아들이 죽을뻔했다는 이야기에 부모님은 말이 없으셨다. 나는 내 침대에 누워서 흐느꼈다. 정신이 불안정해서 약을 먹고 싶었다. 약은 가지고 있었지만, 물을 먹기 위해서는 방을 나가야 했다. 기껏 문을 꽝 닫고 들어갔는데 다시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약을 억지로 씹어서 침과 함께 삼켜 먹었다. 약이 이렇게 쓰다니... 내 마음이 씁쓸한지, 약이 쓴 것인지는 모른다. 훌쩍훌쩍 눈물만 흘렀다. 



나의 주된 마음은 기대했던 것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 '할 수 있다' , '이겨낼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부모님께 말을 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내탓이라는 부모님이였다. 긍정적이였던 마음은 순식간에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혔다. 



"웃기지 말라지, 세상은 혼자다".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는 없다" 다시 혼자가 된 기분에 눈물이 펑펑 흘렀다. 베개가 눈물로 흠뻑 젖어 축축해져서 기분이 나빴다. 나는 베개를 뒤집은 후 다시 누었다. 



잠시 후 부모님이 내 방문에 대고 머뭇머뭇하더니 말씀을 하셨다. 혹시 따뜻한 말을 기대했는가? 미안하다. 그렇지 않다. 이 상황이 마음에 충격이 컸던 것일까, 그래서 기억에서 지워졌나 싶다.



"혹시라도, 정신병원 다니는 이야기는 어디서 하고 다니지 말아라!"



마지막까지 배신하지 않는 부모님. 한결같으시다. 나 스스로 기대를 하고 배신을 당하고, 뭐 하는 짓인가 싶다. 이 정도 정신이 있으셔야지 그 험난하고, 힘겨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리라. 



주 5일제, 52시간 근무라는 말랑말랑한 시대가 아니라, 주 6일. 무제한 근무시간과 욕설과 폭행이 난무하는 회사가 있던 시절. 서류를 던지거나, 서류가 좀 약한가 싶으면 재떨이가 날아오던 시절의 회사 말이다. 이 시대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 시대가 잘 못되었으면 지금이 잘못되어 있어야 한다. 



현재는 과거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대는 괜찮다. 먹을 걱정도 하지 않고 있고, 세계가 다 알아주는 나라가 되어있으며 훌륭한 나라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6.25 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되고,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이렇게 성장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기적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 좋아질 수 있던 방향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먹고사는 게 충족되었다는 지금 현재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집단이 중요한 시대에서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공감과 위로가 중요한 시대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시대에 적응하여 사는 과거 세대들이 있는가 하면, 예전 그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변화에 적응 하지 못하는 이 사람들은 '사회 부적응자'이며, 멍청한 것이다. 



우리와 같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은 시대의 '부적응자들'에 의해 주로 일어난다. 



가해자가 어린 사람이라면 부모에게 그렇게 배웠을 것이고,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쭉 그대로 살아온 것이다. 시대가 변화할 때 남아있는 파편이 우리에게 박혀서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파편은 누구에게나 박히고 있다. 크고 작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박히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나는 생각보다 큰 파편이 박혀서 죽을 뻔했고, 사실 조금 많이 아픈 것 같다.  



이 '시대의 부적응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다. 지금 시대에는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시간은 걸리겠지만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내가 이 시간을 단축시켜서 나의 밑의 세대들은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자식, 조카, 손주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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