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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Apr 03. 2023

[9]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서점으로 가는 도중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오늘은 2022년 2월 13일 일요일이다.



이번주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스트레스로 정신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가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고, 태어나서 처음 정신의학과를 가고,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이야기하고 말이다.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는데,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감정은 하나다. 



그건 바로 '외로움'이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바랐지만,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였다. 물론 나의 설명 방식이 올바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이것을 몰랐다.



나는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한 지인들을 원망했고, '세상에는 나 혼자다'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었고, 늘 긴장상태로 있어서 성격은 점점 예민해져 갔다. 긴장이 풀려서 몸이 느슨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약을 먹고 잠들 때뿐이었다.



집에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정보만 하루 종일 검색하다 보니, 여전히 나오지 않는 정보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신고 후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었는데 하나도 못 찾았다. "후..." 한숨을 푹 쉬었다. 머리를 좀 식히고 싶었다. 가볍게 산책이라도 할 겸 번화가에 있는 서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책을 많이 사는데, 나는 가끔 서점을 가는 것도 좋아한다. 서점만의 특유의 분위기도 좋고, 유명하지 않지만 좋은 책을 찾는 재미도 있다. 베스트셀러도 물론 좋지만, 나에게 적절한 책이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책장을 뒤지며 찾아보기도 한다.






점심을 먹고, 약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서점이 있는 번화가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2월이라 날씨도 쌀쌀했지만,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기 딱 좋았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고, 쌔엥~ 하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상점에서 들려오는 음악 등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사람들과 주변 소음들에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갈까' 하고 살짝 고민하였지만, 목적지가 있다 보니 계속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번화가로 점점 더 걸어 들어 갈수록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더라. 숨이 가팔라지고 호흡이 점점 빨라졌다. 헐떡 거리게 된 것이다. 앞으로 가려고 하는 발이 점점 떨어지지 않았다. 



'뭐지?'



나도 모르게 갑자기 걸음이 멈췄다. 그 사람 많고 소음이 가득한 길 한가운데 우뚝 섰다. 혹시나 말하자면, 내 의지로 멈춰 선 게 아니다. 나는 가려고 했으니 갑자기 발이 멈췄다.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뭐지?' 하고 당황을 한 것이다. 



내가 멈추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서 걸어갔다. 앞에서만 지나쳐가던 사람이 이제는 뒤에서도 지나쳐 갔다. 갑자기 주변의 자동차 소음이 더 크게 들리고, 상점가의 음악소리도 더 크게 들렸다. 정신이 점점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놀이동산의 바이킹처럼 갑자기 주욱~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좌우 앞 뒤로 나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으며, 주변에서 들리는 소음은 내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크게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고, 번화가 한가운데에 서서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변화하는 주변환경과 점점 켜지를 소리를 막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뒷목이 서서히 뻣뻣해졌다.



나는 이 감각을 안다. 기억은 안 나지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 뒷목이 뻣뻣해지는 감각은 내가 회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느꼈던 감각이다. 과거 죽을뻔한 경험 때문인지,  죽음의 공포가 나를 덥쳤왔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흐른다'는 것은 책에서만 보던 문장인데 직접 겪으니 정말 두렵고 무서웠다. 



몸이 굳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번화가 한복판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그대로 서 있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계속 그대로 서 있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자세히는 모르겠다. 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 서러움은 평소 자주 가던 길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망가져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슬픔'이었다. 공포에 떨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도 포함되어 있다. 



'내 정신이 이렇게 망가져 있다니..'

'내 몸이 이렇게 망가져 있다니..'

'내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러한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눈물이 나니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속 안에 입은 티셔츠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2월의 한겨울에 티셔츠가 다 젖다니... 얼마나 땀을 많이 흘린 거지. 축축함과 땀이 마르면서 차가워지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차가운 느낌에 정신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감았던 눈을 떠서 앞을 보았다. 저 앞에 2층 건물에 나의 목적지인 서점이 보인다.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나는 오늘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겨내자", "이겨낼 수 있다", "이겨낼 수 있어 ㅇㅇ야!" 번화가 한복판에 서서 이 말을 입 밖으로 되뇌었다. 서점을 향해 앞으로 한 걸음 더 가보려고 하였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대체 왜냐고... 왜!"

"제발... 가자고"



대체 나는 누구에게 말을 걸었던 것일까? 내 몸에게 아니면 나 자신에게? 잘 모르겠다. 이렇게 혼잣말을 되니이고, 움직이려고 해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또다시 좌절감에 눈물이 났다. 내가 서서 울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인상을 찡그리며 한심한 듯 쳐다보거나, 나를 피해서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져 부끄러웠다. 



그런 시선을 받는다는 게 억울했다.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이 상황이 너무나도 웃겼다. '킥킥' 하면서 웃기 시작했다. 왜 웃기냐고 물어보면 사실 정확히 대답은 못할 것 같다. 잘 걷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웃음이 나온 것 같기도 한데. 아마 이게 맞을 것이다. 또 혼잣말을 했다.



"킥킥"

"하... 재미있네"



이건 내 습관 중에 하나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혼잣말로 "재미있네" 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옛날에 어떤 만화책에서 주인공이 넘어야 할 벽을 만나면 "재미있네" 하고 웃으면서, 본인을 가로막는 벽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 벽을 뛰어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그래서 동경하는 마음으로 어렸을 때부터 따라 했던 것 같다.



만화책의 주인공은 '재미있네' 하고 웃으며 벽을 뛰어넘었지만, 나는 '재미있네' 하고 돌아섰다. 때론 '킥킥' 거리며 웃거나, 때론 흐느끼면서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처음 느껴본 공황장애 였다. 왜 연예인들이 공황장애에 힘들어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일반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감정선이 아니다. 감정의 기복, 육체의 변화, 감각의 변화 등 내 머리가 따라갈 수가 없다. 나 자신이 통제가 안 되는 느낌은 뭐라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잠시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공황장애' 역시 인간의 생존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내 개인적인 의견일 뿐, 이를 전문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 그냥 내 생각이니 그대로 믿지는 말아주었으면 한다. 



'내성적인 회사원이 그러더라' 이런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이다. 그냥 나의 개똥철학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앞으로 내가 종종 '생존본능'이나 '자정작용' 이러한 단어를 쓸 때가 있을 것이다. '생존본능'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고, '자정작용'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의식'의 영역이다.



'의식'은 내가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하며, '무의식'은 내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심장이 뛰거나, 피가 흐르거나, 숨을 쉬거나 하는 행동들을 말할 수가 있겠다. 심장은 내가 뛰어보자! 하고 인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뛰고 있고, 피 역시도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흐른다. 



내가 걸을 수 없던 것은 무의식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내가 서점으로 가고자 해도 못 간 것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의식 : "제발 서점으로 가자"

■ 무의식 : "위험하다 가지 말아라"



나의 무의식은 사람이 많은 번화가로 가는 것을 위험하다 판단하였다. 그래서 나를 그곳으로 가지 않게 위해 내 생각과 상관없이 발을 못 움지기게 하였고, 몸을 긴장 상태로 만들었다. 손이 떨린다거나, 숨을 헐떡거린다거나, 식은땀이 흐른다거나 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내가 결코 원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다. 



즉,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다.



그러면 갑자기 왜 '생존본능'이 튀어나왔는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것도 설명해 보겠다. 나는 최근에 회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죽을 뻔 한 사고'를 겪었다. 말 그대로 죽을뻔한 사고이다. 생명에 위협이 가는 사고를 겪었으니, 나의 '무의식'은 현재를 위험 상황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언제 또 이런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호흡을 가파르게 해서 산소 공급을 원할 하게 하거나, 표정이 상기되게 하여 혈액 순환을 빠르게 하거나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손이 떠는 것도 근육이 긴장되어서 언제 어디서든 바로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내 무의식은 번화가의 사람이 많은 곳, 소음이 강한 곳을 '위험 지대'라고 인식을 한 것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정보가 널려 있으니 말이다. 나의 무의식이 안심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집과 같이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곳이라면 '안전함'을 느끼고, 생존본능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도 이 '생존본능'과 연관이 되어있다. 상처 입은 야생 동물과도 같은 상태인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경계한다. 그 사람이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께서는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가 있었을 것 같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호흡이 가팔라지고, 얼굴이 상기되고, 손이 떨리는 현상을 겪어 보셨을 수도 있다. 추가로 주변에 예민하게 굴고,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을 부릴 때가 있었을 거 같다. 



그것도 본인이 '편한 사람'에게 말이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이러한 행동을 하여 '자책'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반복되는 이러한 행동에 본인을 더 이상 용서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 잘 안다.  



그 마음 나는 잘 알고 있다. 



편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편한 공간 또는 사람에게는 긴장 상태가 풀리고 이완이 된다. 그러면 긴장 상태에서 애써 억눌러 왔던 감정들이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이 튀어나오게 된다. 이 감정들은 가지고 있으면 스스로에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린 상태이기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폭발을 한다. 



중요한 건 이 과정이 나의 생각과 상관없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무의식이기 때문에...



이 행동은 무의식적이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생존 본능'인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생존본능이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위험한 상황에 쳐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건 통제가 안된다. 생각대로 행동을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통제가 안되기 때문에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자책'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편한 사람 앞에서 까지 더 긴장하게 되고,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게 시간이 흐르게 되면, 더 이상 편한 공간이 없어진다. 하루 종일 긴장 상태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건 그 누구도 버티지 못한다.



길게 말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괜찮다!! 자책하지 말아라. 이런 일을 겪었다면 당신의 '생존본능'이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 본능이 잘 작동하고 있다면 충분히 회복할 수가 있다. '자정작용' 또한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갈 수 있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는 행동들에 대해 자책하고, 걱정하지 마라. 괜찮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어서 자책 하는 분들께 '괜찮다' 고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나는 역시 쓸모가 없다는' 자책으로 자기 자신을 더 이상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연스럽게 숨을 쉬는 것과 심장이 뛰는 것과 같이 말이다. 



무의식에서 작동하는 생존본능이다.



그래도 소중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으면 한다. 당신이 화를 냈다면 그 사람은 당신에게 편한 사람인 것이다.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을 한명 더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지는 스스로도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당신이 힘들어 그 사람에게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였지만, 그 사람은 꼭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당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격해져서 사과를 하는게 말로써 하는 게 힘들다면, 마음이 안정적일 때 글로써 하는 것도 좋다. 진심을 전달해 보자. 분명 당신을 이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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