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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Apr 05. 2023

[10]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첫 출근

웃으며 부모님께 인사하고 회사로 향했다.

2월 14일 월요일,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 하고 나서 회사로 첫 출근이다.



전 날에 서점이 있는 번화가로 가던 도중 공황장애를 느끼고, 심하게 불안했다. 회사에서 다시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회사는 가야지...'



다들 그렇겠지만 쉽지 않게 들어온 회사이다. 퇴사 후 이직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취업 준비를 약 2년간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다시 그 과정을 거치고 싶지 않았다. 모두들 어엿하게 직장에 취직하여 돈을 벌고 잇는데, 나 혼자 뒤떨어져 있다는 느낌 말이다. 나는 사회에서 왜 받아드려지지 않는가 하는 좌절감 말이다. 내가 회사에 첫 출근 하던 날, 안심하시고 뿌듯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러니 나는 회사를 가야만 한다. 



느릿느릿 회사 갈 준비를 마치고, 문 앞에서 부모님께 인사드렸다. 발이 머뭇거렸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가 두려웠다. 부모님도 장사를 하시기 위해 출근 준비를 하고 계셨다. 당시의 내 정확한 마음은 어떠했는지 잘 모르겠다. 한 문장으로는 설명이 안될 정도로 복잡했겠지... 부모님께는 별일 없다는 듯이 '웃으며' 인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녀오겠습니다~"



억지로 얼굴에 잡힌 미소 근육을 다시 풀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웃으며 인사를 한 적이 있었나?' 아니다. 늘 무뚝뚝하게 대충 인사하거나, 인사 자체를 안 한 적도 많다. 오늘 굳이 웃으며 인사를 한 이유는 아마 너무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건 나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웃음이고 인사이다. 가식적인 웃음일지라도 말이다.



제발, 내가 회사를 별일 없이 잘 다녀오기를 바라는 스스로에게 하는 기도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앞으로 펼쳐질 일은 알고 있다. 이미 인터넷에서 예시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 회사가 적이 되어서 나를 몰아붙일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종교가 없어도 신을 찾게 되더라. 그 만큼 의지할 곳이 없었던 것이고, 어딘가에 의지를 하고 싶었다.



그래도 사람이 참 웃긴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풀릴 거라고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로또를 사고 나서 당첨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확률상 매우 작은데도 말이다. 두려운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희망을 가지고 회사로 출근했다. 이상하게도 이 날은 로또가 당첨될 것 같은 기분처럼, 내 상황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났다.

 


'과연 어떤 상황이 펼쳐져 있을까?' 

'나는 스트레스성 실신으로 죽을 뻔했잖아'

'내가 용기 내어서 신고했으니 당연히 다들 내 편을 들어주겠지?'



회사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나를 힐끗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옆자리 사람과 수근 수근 말을 나누고 있었다. 혹시나 나와 눈이 마주치면 눈을 바로 피했다. 사람들의 행동은 평소와 달랐다. 이러한 변화가 신경이 안 쓰이면 거짓말이다. 생각이 다시 많아지면서 매우 신경이 쓰였다. 희망찬 마음은 다시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주변 동료들은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예 모르는 척하지는 않은 것이다. 후..... 그나마 안심했다. 하지만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서로서로 불편했을 터이다. 내 바로 맞으면 자리의 '가해자'는 아직 회사를 오지 않았나 보다. 자리에 없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하였다. 일을 해야 하는데 불안한 마음이 다시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약을 아직 안 먹었다. 정신의학과에서 받은 안정제를 먹었다. 약의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점점 정신이 멍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두리번두리번 좌우를 살펴보았는데,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혹시 그것 아는가??



허리가 아파 병원을 다녀온 사람은 허리가 아픈 사람들이 더 잘 보인다. 자동차를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자연스레 눈이 간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잘 보이는 것이 다르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정신과 약을 먹고 멍하니 있다 보니, 다른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이 눈에 보이더라. 그 사람도 약을 먹고 한 동안 나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먹고 나서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하는 걸 보니 분명히 안정제이다. 그 사람도 지금 정신이 멍한 상태여서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것이다.



박 과장이었다. 나와 나이는 같은데, 회사를 일찍 들어와 직급이 더 높다. 그래도 나이가 같아서 매우 친하게 지내는 동료이다. 불안한 마음에 누구와 대화가 하고 싶었다.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지금 생각해도 참 예의가 없는 질문이다. 



"혹시 안정제 드세요?"



박 과장은 대답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였다. 아마 대답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것 같다. 아마 본인도 이 약을 먹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으리라. 괜히 소문이 나면 정신과 약을 먹는 이상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제가 안정제를 먹고 있어서요.. 이번에 처음 먹어보았는데 정신이 멍해지더라고요. 처음 먹다 보니 불안하기도 하고요. 약 드시고 멍하게 계시길래 혹시나 하고 궁금해서 물어보았어요. 다른 사람은 어떤지 불안해서 알고 싶었거든요"



내가 먼저 안정제를 먹고 있다는 것을 말해서 그런지, 박 과장이 안심했나 보다. 씩 웃더니 답변을 하였다.

 


"맞아요. 저는 먹은 지 좀 되었어요. 회사 스트레스가 감당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더라고요. 제가 예전부터 멘탈이 약하기도 해 가지고, 종종 먹어요"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답변을 잘해주어서 안심했다. 이 대화를 나누고 난 후 안정제를 먹는 동료애 같은 게 생긴 기분이었다. 아마 박 과장도 같은 기분이었으리라. 그리고, 정신의학과와 먹는 약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박 과장이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많이 힘들면 상담사도 따로 찾아가 보는 게 좋아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정신의학과는 약처방 위주인 곳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돈은 들더라도, 전문 상담사를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돈이야 다시 벌면 되죠!"



나는 조언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넌지시 '그 사람'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다. 이제부터는 나를 괴롭히던 '그 사람'을 '가해자'라고 칭하겠다. 사람이라고 적고 싶지도 않다. 박 과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가해자는 저번주에 자리에서 벌떡 이어 나더니 갑자기 "아니라고!!!!" 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어요.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통화를 하고 있더라고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인사과랑 통화를 했나 봐요."



내가 신고하고 나서 인사과가 가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나 보다. 가해자가 인사과의 설명을 듣고 소리를 지른것 같다. 여전히 주변 생각 안하고 본인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여전하다. 회사 한가운대서 소리를 지르다니. 세상에 중심에서 소리치다를 시전한건가. 미친놈이다.




가해자는 평소에 '미친개'라고 소문이 난 사람이다. 어떤 스위치가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발작 스위치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스위치가 어떠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날그날 자기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였다. 이 스위치가 켜지면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가해자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는지 상상이 갔다. 내가 늘 당하던 것이니까 말이다.



상상이 되다 보니, 또다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고, 호흡이 가빠졌다. '약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반복적으로 괴롭힘 당한 기억이 무의식에 깊게 박혀 있었나 보다. 박 과장을 이어서 말하였다.



"신고하셨죠? 다 알아요. 가해자는 잠시 다른 자리로 잠시 옮긴 것 같아요. 컴퓨터와 짐을 싸더라고요. 그래도 근처에 있으니,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요. 알자나요. 어떤 사람인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 할 경우 가해자와 나는 자리가 분리돼야 하는 법이 있다. 근로기준법이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나는 회사에서 분리를 잘해주었지만, 회사의 인원이 적을 경우 못 해주는 곳도 많다.)



맞다. 가해자는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 많은 곳에서 욕설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고함을 치거나 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나에게는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한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욕 저 욕 섞어가면서 나를 위협하고 몰아붙인다. 1시간이 넘은 적도 종종 있다. 체력이 대단하다. 지금 와서 깨달은 거지만 괴롭히는 것이 즐거워서 그랬던 것 같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본인의 '우월성'을 느끼기 위해. 나는 저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감정을 얻기 위해서 이다. 



당신이 괴롭힘을 당한다면 이유를 찾지 마라. 상대방은 그냥 본인이 즐기기 위해 괴롭히는 것이다. 당신을 괴롭히면서 당신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즐거워 하고 있을 것이다. 



자리로 돌아와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다 보니 아까 느꼈던 두려움이 더 커졌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제발 가해자와 만나지 않기를 하고 기도하였다. 잊기 위해 일을 더 열심히 했지만 떨쳐버릴 수가 없더라.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어서 아까 박 과장이 이야기한 전문 상담사와 예약을 잡았다. 



두려운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열심히 일에 집중하던 중,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이었다. '사장님이라니??' 사장님께도 메일을 보내긴 하였지만, 직접 전화가 올 줄을 몰랐다. 정말 엄청 놀랐다. 놀란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께서는 먼저 조심스래 내 안부를 묻더니 "지금 시간 괜찮아요?"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네" 라고 대답하였다. 사장님이 직장 내 괴롭힘 관련하여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고, 조용히 본인의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나는 화장실 가는 척 일어나서 눈에 안띄게 빙 돌아, 사장실로 문 앞에 섯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몰랐으면 해서 빙빙 돌아서 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긴장되는 마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내부 고발 같은것으로 여겨져서, 회사가 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있는 직원, 분위기를 헤치는 직원 등으로 말이다. 



그래서 신고를 하여도 조용히 덮으려는 경우가 꽤 많다. 조용히 덮으려고 하면 다행이지, 회사 차원에서 신고한 사람을 퇴사시키려는 경우도 있다. 회사의 모든 공간과 모든 사람이 나의 적이 되는 것이다. 모두들 월급을 받고 일하니, 순순히 피해자의 편을 들어주지도 못한다. 나에게도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서로 사과하고 마무리 지으라고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하지?'

'내가 끝까지 싸울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문을 '똑똑' 노크하였다. 나의 노크에 대해 "들어오세요" 라는 사장님의 답변이 들렸다. 사장님의 답변이 친절했던 것인지 무뚝뚝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후 대화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친절하다고 기억하는 것 같다. 나는 문을 천천히 열어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장님과의 대화는 나에게 진정으로 행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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