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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Apr 02. 2023

[8] 더글로리  "오늘 부터 내 꿈은 너야" 의 의미

괴롭힘 피해자인 나는 이 슬픈 대사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약 덕분인지 잠은 잘 잤다.



어제는 부모님께 상황을 이야기하고, 오히려 나의 탓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울면서 잠들었다. 잠을 잘 못 잘 줄 알았는데 약 효과가 정말 좋았다. 푹 자서 상쾌하고 개운한 느낌이다. 오늘은 약 2년동안 만난 여자친구와 데이트가 있는 날이다. 그녀는 내가 휴가를 사용하고 3일간 집에서 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사실, 너무 쪽팔리고 부끄러워서 말을 못 했다. 여전히 나는 겁쟁이였다.



부모님께 공감과 위로를 받는 것을 실패했지만 오늘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긍정적인 생각이 계속 들더라.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긍정적이라니 미친 건가... 베개에는 아직도 눈물 자국이 그대로 있다. 그런데도 기분은 좋았다.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알고 보니 약의 덕분이었다.



약은 정신을 멍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세로토닌 흡수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사람에게는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지나면 사라진다. 하지만 정신과 약은 이 '세로토닌'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주고, 계속 남아 있게 해 준다. 이것을 억제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여자친구에게도 회사에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이야기부터 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쪽팔리고 부끄러웠지만 언제까지고 감출 수는 없었다. 잘 감추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들통날 것이다. 그러니 미리 말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말하는게 왜 쪽팔리고 부끄러운지에 대해 적어보겠다.



단순하게 말하면, 내 욕심이고 이기적인 마음이다.



여자친구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서' 이다. 강하고 의지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만나는 동안 내가 회사에서 겪고 있는 힘들 일들에 대해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불면증이 있다는 것도, 서서히 정신이 좀 먹어 가는 것도 말이다. 나는 늘 강해야만 했다.



항상 밝은 척을 하고, 당당한 척을 하였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늘 그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감춰왔던 것 같다. '웃는 게 일류다'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말이다.



이 '웃는 게 일류다'라는 바보 같은 생각 때문에 가해자가 괴롭힐 때도 늘 웃어넘겨 왔다. 그래서 결국 스트레스가 쌓여,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죽을뻔했지만 말이다. 이 말은 좋은말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떄 그떄 다르게 사용해야 하는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대체 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그렇게 까지 경계하였을까? 라는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에 정확히 말로 설명은 못하겠다. 풀어서 이야기 해보자면



- 내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여자친구가 한심하게 보고 떠날 것 같다는 생각?

-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아서?

- 강하고, 의지가 되는 남자가 되고 싶다는 강박?

- 나를 경쟁에서 패배한 패배자라고 생각할까 봐?



이러한 생각이 내 호르몬에 박여있는지, DNA에 기록되어 있는지, 본능적으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좋아하는 여자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한마디로 쪽 팔렸다. 그냥 쪽팔린 게 아니라 전신이 오그라들 정도로 쪽팔렸다. 지금도 글을 적고 있는데 전신이 오그라들고 있다. 아마 여자친구에게 약한 모습을 말하는 상황을 상상해서 그런 것 같다.






여자 친구를 만났다. 오늘 하기로한 쇼핑 데이트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에게 "나 이번에 정말 큰 일이 있었어" 라고 말을 꺼냈고,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간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이때도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강한 척, 센 척을 하였다. 사실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허세를 부렸다. 이 이야기를 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매우 두려웠다.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나... 경쟁에서 진 패배자라고 생각하려나...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센척을 한것 같다.



"많이 힘들었겠다"



원하는 답변이 나왔다. 안도했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쓰러질 수가 있다고 하더라고, 회사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때문에 그런 것 같아"라고 추가로 이야기를 하였다.



"응?? 한 사람 때문에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수가 있어?"

"오빠 건강이 안 좋았나 봐. 담배도 끊고, 예전에 꾸준히 다니던 요가도 다시 다녀"

"그리고 주말마다 나랑 런닝 하자"



응?? '나보고 더 노력해보자'는 답변이라니 이건 내가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다. 사실 이러한 답변은 당연한 수순이다. 서로 생각하는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6개월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른다. 알리가 있나. 내가 전혀 말을 하지 않았으니. 그녀는 내가 쓰러진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몰랐고, 그렇기 때문에 이 사고를 나의 개인적인 건강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그동안 몇 번 이야기한 주제가 아니라, 난생처음 듣는 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상대방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설명을 친절하게 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강한 척, 센 척 허세를 부리면서 말을 하였으니 문제의 심각성을 당연히 인지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행동해 놓고 상대방에게 이해를 바라는 건 크나큰 욕심이다.



이런 생각을 당시에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좀 더 솔직하게 내 감정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노력해서 전달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당시의 나는 너 역시도 '내 탓을 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감정이 상했다. 서운한 마음이 강했고, 그녀도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 말이다. 물론, 그날 카페에서 대화는 엉망진창이었다.



이 날 이후 나는 '너도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구나' 하고, 원망과 서운한 생각에 빠져버렸다.



그녀와 대화를 해서 무엇을 하나 싶은 생각에 그녀가 마음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러다 보니 연락이 줄게 되었고, 카톡도 잘 안 하게 되었다. 이 행동은 나중에 이별로 이어졌다. 상대방에게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상처받았다. 내 마음을 몰라준다면서 말이다. 여전히 나는 이기적이였다.



이건 문제를 설명해주지 않고 해답을 맞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 혼자 기대하고 상처받고, 북 치고 장구치고 혼자 쇼를 한 것 같다. 사실 내가 원하는 건 매우 단순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소중한 사람이 내 편이 되어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전히 이해받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 말이다. 근데 이 '있는 그대로'를 이해 받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잘 설명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이다. 진심이여야 전달이 된다. 나는 진심이 아니였으니 이해를 받지 못한 것이겠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것이 차라리 잘되었을 수도 있다. 만약 여기서 여자친구에게 이해받았다면, 내가 나의 생각을 온전히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연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 부모님만 원망하고 있었을 것 같다.



이해받지 못한 것이 차라리 잘 되었다. 정말로 말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결국 나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주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신경을 써도 돌아오는 건 공감과 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점점 더 고립시키고, 고슴도치처럼 주변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가시를 있는 힘껏 세웠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상처는 이제 충분했다. 더 이상 받을 상처도 없다 이제는.



가족과 여자친구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으려고 노력한 순간은 나에게 축복이다.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억울함, 분노, 서러움, 서운함, 원망, 슬픔, 분노, 짜증, 두려움 등등 말이다.

물론 약을 먹으면 이 상황에서 기쁨의 감정도 같이 느낄 수 있다.



억울하고 분한대 기쁘기 까지 하다. 상상이 가는가?? 그냥 정말 제대로 미쳐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점점 미쳐가는 정신줄을 놓지 않은 이유는 하나이다. 사실 이때 '정신줄을 놓으면 편해질 텐데...' 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정말 편해지고 싶다. 진심으로 말이다. 설명을 조금 더 하자면, 이때의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에 말했던 삶을 거두고 싶다는 감정과는 또 다르다.



그때와는 다른점이, 미쳐가는 와중에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끈이 느껴진다. 아마 정신줄인 것 같다. 보통은 이 정신줄이 머리 위로 뻗어 있다고 묘사되어 있는데, 내 끈은 눈 옆 관자놀이에서 관자놀이로 연결되어 있어서 새로로 되어 있더라. 원래 끈이라는 것은 두꺼울수록 잘 느껴져야 하는데, 이 끈은 가느다래질수록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왠지 끊을 수 있는 상황에서 본인을 끊어 달라고 유혹하는 것 같다.



왠지 이것도 '생존본능'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생명이라도 연장시키기 위한 인체의 신비라고 할까나. 마지막 수단인 것 같기도 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뇌에서 지워버려 기억나지 않게 하는 '생존본능'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려나 모르겠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생존본능이 있는 것 같다.



생존본능!! 나를 살리려고 애쓰는 나의 몸아 정말 고맙다! 너 밖에 없구나.



다시 돌아와서 자기를 끊어달라고 점점 더 선명해지는 이 끈을 끊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해보겠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도 여자친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나에게 남은 건 한 명 밖에 없다. 혹시 누구일지 상상이 가는가? 이게 이해가 되려나 모르겠는데, 역설적이지만, 나에가 남은 소중한 한명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이다. 의외의 대답이 나와 당황스러울 것 같다.



아마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해가 갈 수도 있겠다.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를 아는가?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의 드라마이다. 여기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를 듣고 정말 소름이 돋았다. 이 대사를 쓸 수 있었던 작가는 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온 것인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나는 이 대사가 너무나도 이해가 간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나의 꿈이 되었고,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남은 게 없기 때문이다. 정말 더 이상 나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당시의 내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행동한 것도 있지만, 내게 남은 건 정말 가해자 밖에 없었다.



나를 이 깊고 어두운 구렁텅이 속으로 빠트린 원인제공자가 나를 살리는 사람이라니...



웃기지 않은가? 나는 이것을 깨닫고 엄청 웃겼다. 정말 미친듯이 꺽꺽 거리면서 웃었다. 미친것 같은가? 맞다. 나는 미쳤다. 나는 이렇게 정신이 무너지고, 미쳐갔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시간을 돌리고 싶어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테넷' 이라는 영화를 봤다.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렇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미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미쳐가는 상황속에서도 현실을 직시하고 책을 꺼내 들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책을 꺼내 들다니 정말 나 제정신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말이다. 사실 눈에 띄는 책 제목이 있었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워서 '혼돈의 해독제'라고 부제목이 붙은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 책의 정확한 제목은 다음과 같다.



"12가지 인생의 법칙"_조던.B.피터슨



이 책에서 나온 '제1법칙.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는 아직도 내가 매일매일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만 해도 기분이 많이 나아진다. 제1법칙 이후로는 종교랑 신화랑 복잡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나에게는 어렵더라. 이 책은 결국 다 읽지는 못하였다.



혹시 아직도 내가 미쳐있을까봐 걱정을 하시는 분이 있을것 같다. 모두 다 과거의 이야기이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잘 회복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나의 정신이 워낙 밑바닥에서 출발했다 보니 매일매일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내 자신을 바라보는게 너무나도 기쁘다. 밑바닥이라 조금만 노력해도 효과가 바로 나온다. 하핫



노력할 수록 조금씩 나아지는게 느껴진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괜찮다.

이전 08화 [7]부모님께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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