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을 제출하고 첫 재판은 약 5개월 뒤 열렸다.
아마 법원과 재판에 대해서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이 오해부터 풀고 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는 보통 법원에 대해 직접 경험하지는 못하고, 드라마나 영화로 간접적인 경험을 한다. 사실 나도 이 번이 30년 평생 살면서 처음 가본 법정이니 나랑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 여러분의 법원에 대한 환상이 깨질 것 같다.
일단 가장 큰 오해는 다음과 같다.
1. 법원에서 변호사들끼리 변론하면서 치고받으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2. 드라마처럼 증거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상황이 반전 되는 그런 일도 불가능 하다.
대부분 문서로 자신의 주장과 증거를 이야기하고, 법원에서는 따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판사님이 읽어오고,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내가 재판에 참석을 한다고 하니, 변호사가 나에게 이야기해 준 것이 있다. 보통은 변호사를 고용할 경우 재판에 잘 참석하지 않는다더라.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재판이라는 게 드라마랑 달라요. 대부분이 서면 즉 미리 제출한 문서로 진행되기 때문에 드라마처럼 변론하고, 증거가 갑자기 나오고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아요. 그래서 보통 처음에는 의뢰인들이 호기심에 재판에 참석하시다가, 그 이후로는 안 오시더라고요."
그래도 호기심에 참석을 해보았다. 오전에 재판이 있어서 회사에다가는 연차를 쓰고 참석을 하였다.
처음 가 보는 수원지방법원은 첫 느낌은 '세련되다'였다. 건물 자체도 크고 웅장하였지만, 그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인해 분위기가 한층 더 고급스러웠다. 정장을 입은 전문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큰 서류가방과 문서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저들은 변호사 일 것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민사소송 건물로 들어갔다. '최근에 지은 건물인가?'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바닥과 벽면들이 반들반들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정장을 빼 입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보안위원 같은 사람이 앞에 듬직하게 서 있어서, 우물쭈물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 법정이 404 호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내부가 넓어서 엘리베이터를 못 찾겠더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길을 물어볼 사람은 아까 그 듬직하게 서 있는 보안요원 밖에 없었다. 보안요원에게 다시 우물쭈물 걸어가서 질문을 하였다.
"저... 민사 404 호 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 어디서 타나요?"
"직진하셔서 우측으로 돌으시면 됩니다!"
우렁차게 답변해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법정 문 앞으로 갔다. 문 앞에 전광판이 하나 있었는데 재판의 시간과 사건 번호가 스크린에 떠 있었다. 나는 처음 스크린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지??, 재판을 10분마다 한다고??!!"
위의 사진의 밑을 보면 어떤 재판은 11:30 분에 6개가 걸려있다. 이게 이해가 가는가?? 이런 게 가능한지 나는 잘 모르겠더라.
'한 사람이 6명에게 소송을 건건가?'
'에라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문 밖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의 재판 시간이 다가오니 변호사가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나의 안부를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나의 몰골이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여 6개월이 지난 후라 많이 회복된 상태다.
변호사 : 요즘은 좀 어떤가요? 몸이나 마음은 좀 괜찮아요?
나: 네 많이 좋아졌어요 ㅎ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재판 시간이 다가왔다. 법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참고로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는 법정과는 다르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는 법원은 대법원이 아닐까 한다. 일반 법원은 그렇게 크지 않다.
층이 나뉘어 있는데, 1층과 2층이라고 표현을 하는 게 적합하겠다.
2층에는 판사님이 앉아 계시고, 그 아래 두 명의 서기관이 앉아서 무언가를 적고 있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피고석과 원고석이 있다. 나는 나의 변호사와 같이 자리에 앉았고, 상대편 변호사도 자리에 앉았다. 참고로, 가해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두근두근 하는 마음에 첫 재판에 참석을 하였으나, 아래와 같은 대화가 오가고 끝났다.... 나의 직장 내 괴롭힘 첫 재판은 2분 만에 끝났다.
판사님 : 원고 측 더 제출할 자료 있나요??
저희 변호사 : 없습니다.
판사님 : 피고 측 더 제출할 자료 있나요?
상대 변호사 : 네 더 제출할 자료가 있습니다. 원고 측의 답변서에 대해 추가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판사님 : 검토 서면으로 제출하면 되지 않을까요??
상대 변호사 : 연기 부탁드립니다.
판사님 : 네 알겠습니다. 그럼 12월 xx 일 10시에 하시죠? 괜찮나요?
저희 변호사, 상대 변호사 : 네 괜찮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나누고 법원을 나왔다. 다 끝나고 나니 변호사가 머쓱해하면서 나에게 말을 하더라.
변호사 : 재판이 드라마랑은 많이 다르죠? ㅎㅎ
나 : 네 정말 그러네요. 5분도 안 걸리는군요
변호사 : 그래서 피해자 분들이 처음에는 참석하시고, 그다음부터는 잘 안 오시더라고요
나 : 왠지 그럴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어떻게 되나요?
변호사 : 상대편이 준비 서면을 내고, 다시 재판이 열릴 거예요. 다만, 재판을 연장한 것 보니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
나 : 그렇군요. 저희는 이제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변호사 : 네 맞아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소장을 작성하고, 준비서면을 작성하는 과정이 지치고 힘들지, 재판은 정말로 별게 없더라. 가해자가 재판을 억지로 연장한 것을 보니 자신이 없어 보이는 건 확실했다.
이렇게 나의 첫 재판은 2분 만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