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을 할 수록 법이라는 것이 멀게만 느껴진다
나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2차 재판이 열렸다.
1차 재판이 끝나고 몇 달 뒤의 일이다. 1차 재판의 경우 지난 글에서도 말했지만 5분 만에 끝나버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드라마적 상황은 실제 재판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갑작스레 변호사가 증거를 제시하거나, 말실수를 하다가 꼬투리를 잡히는 이러한 극적인 상황은 전혀 없다. 그래서 사실 2차 재판은 참석하지 않았다. 1차 재판을 참석해 보고 실망감이 컸기 때문이다.
변호사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2차 재판도 연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상대방 측이 아직 회사에서 받을 자료가 있다는데 그것을 다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료는 재판 초기에 받으면 될 텐데, 굳이 이제 와서 받는다고 재판을 연장하고 있다.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계속 재판을 연장하는 가해자 측에게 너무나도 화가 났었는데, 이제는 안다. 이 업종의 생태계를. 불리한 측에서 재판을 계속해서 연장하는 것이 이 업종의 생태계이다.
불리한 측에서 재판을 계속해서 연장을 시키는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지는 싸움 빨리 끝내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내 추측으로는 불리한 측의 변호사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5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고 선임이 되었는데, "이거 길게 가봐야 지는 싸움이니 그만하죠"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나와 상황이 비슷하게 흘러가더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민사소송을 하는 다른 분의 이야기를 들어도 상대방 변호사 측이 계속해서 재판을 연장한다고 하였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하신 분인데 이 분은 직장 내 괴롭힘 민사소송을 나보다 먼저 시작해서 나보다 늦게 끝났다. 상대방이 할 수 있는 최대로 재판을 연장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진행되는 것 같다. 그러니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게 좋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이 민사소송이 6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다. 이게 1년이나 지속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하;;;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다 보니 '내가 왜 했을까?' 하는 마음도 종종 들더라. 그리고 민사소송과 재판을 경험해 보고 강하게 드는 생각이 있었다.
'법'이라는 것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실 법이란 사람들 간의 약속이지 않는가?
한 국가 안의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하는 기준이고 말이다. 공동체 안의 사람들이 더욱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법이라 생각한다. 또한 나처럼 억울한 일이 있으면 법에 의하여 억울함을 호소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법이 이제는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라는 속담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딱 그 심정이다.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 체력, 감정, 돈 이 너무 많이 든다.
이 이야기는 생활이 여의치 않아 돈이 부족하거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거나,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라면 법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법이라는 게 더욱더 멀게만 느껴진다. 약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약자들은 사용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법은 힘이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힘이 있는 사람이 법'을 만든다 이런 이야기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용어 자체가 어려워서, 일반적으로는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게 사실인 것 같다. 일단 소장을 작성해야 하고, 전자소송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이런저런 답변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것도 제삼자가 알아보기 쉽게 말이다.
혹시나 하여 말씀드리면, 사법기관에 대해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에 대한 한탄입니다. 지금보다는 법이라는 이 정의로운 것에 일반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야 이제 한번 해봤으니 익숙해져서 괜찮다. 사실 다음에는 지금 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자신 있다. 하지만 민사소송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크나큰 벽이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심리적인 벽 말이다. 이러한 분들을 위해서 법이 지금보다 좀 더 가까워질 수는 없을까?
그리고 민사소송하면 보통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나중에 혹시 민사소송을 하게 되면 많이 들어볼 것이다.
"그렇게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굳이 왜 하냐?"
맞다. 참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시간만 걸리면 다행이게?? 돈이랑 감정, 체력, 정신력, 정말 쉽지 않은 길이다. 1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가져가야 하는 지구력까지 추가하도록 하겠다. 하하;;
그런데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는 뿌리 깊게 박힌 이 생각 자체가 법에 대한 접근을 더 어렵게 하는 것 같다. 억울한 일이 있었을 때 '소송을 진행해볼까?'라는 생각을 갖음과 동시에 '소송을 하면 내가 더 손해가 크겠다' 이런 생각이 같이 들기 때문이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상황에서 약자인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법'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법과 저의 사이의 심리적 시간적 간격이 너무 멀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주먹은 가깝고 법은 참 멀게만 느껴지는 하루이다.
분명 지금의 법과 제도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약자인 제 입장에서 힘들다 보니 아쉬움에 신세한탄을 해보았다.
다음에는 내가 성희롱으로 신고당한 마지막 재판 이야기를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