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양, 그리고 2022년의 내 메모리뱅크
애프터양을 봤다. 많은 생각을 했는데, 2022년을 다 보낸 후에야 한 해의 회고와 함께 그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미운 정이 든 2022년을 보내줄 시간이다. 아직 나와 낯을 가리는 2023년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기 위해!
애프터양에는 제이크 가족,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인공지능 로봇 양이 등장한다. 양에게 주어진 역할은 입양된 중국 소녀 미카에게 중국의 문화와 그녀의 뿌리를 알려주는 것. 미카의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양의 뚜렷한 용도, 그리고 로봇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제이크 부부는 양과 보이지 않는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양이 고장이 나 작동을 멈췄을 때도 제이크 부부는 크게 슬퍼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리에 드는 돈이나 딸 미카가 느낄 양의 빈자리에 대한 현실적인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가족 구성원을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이나 애도는 부재했다. 이쯤되면 양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양은 무엇일까? 미카나 제이크, 그리고 우리와 같은 하나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이크는 양을 고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양의 메모리 뱅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속에는 양이 녹화한 몇 초 분량의 영상들이 담겨있다. 녹화한 영상들의 기준도, 왜 녹화했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영화에서 pov 형식으로 보여주는 양의 기억들은 우리의 기억과 똑 닮아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햇살이 비치는 거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 미카. 찻잎이 우러나는 모습. 다정하게 기대있는 제이크 부부. 거울에 비친 양 스스로의 모습. 그리고 양이 사랑한 듯한 백금발의 여자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처럼 자그맣게 흔들리는 영상들 속에는 그가 감각한 것과 소중히 아끼던 것이 담겨있다. 양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던 것은 바로 그 메모리 뱅크 속 몇 초에 불과한 짧은 영상들이었다.
우리의 존재 방식도 양과 닮아있다. 기억은 휘발성이라 하루에 느낀 그 모든 것들을 선명히 기억할 수 없지만 내가 느낀 감각들은 흐릿하게나마 남아있다.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감각은 더 짙게 남는다. 명도를 달리하는 경험의 흔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뤘다. 나아가 과거의 기억은 미래의 선택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때문에 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물음에는 내 과거의 기억들을 답안으로 써낼 수밖에 없다.
제이크는 양의 영상을 보며 울었다. 처음의 제이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마 그는 양의 기억을 보며 양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을테다. 특히 찻잎을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양의 기억을 볼 때 말이다. 이 영화에서 제이크 가족이 양의 기억을 들여다볼때면, 버퍼링이 일어나듯 말이 반복되거나 시점이 오락가락하는 등의 혼란한 방식으로 기억이 묘사된다. 중첩된 기억을 표현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하나는 양의 것, 그리고 하나는 그 기억을 함께 한 제이크의 것이다. 가족관계 혹은 연인관계처럼, 타인과 언어로 정의내릴 수 있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을 뜻한다. 기억이 내 존재를 규정한다면, 함께한 기억을 가지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 일부를 나눠갖는 것과도 같다. 제이크와 양도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었다. 찻잎에 대한 물음과 답이 오갔던 그 기억을 공유하며 둘은 관계를 맺었다. 제이크가 눈물을 흘린 이유도, 공동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양의 존재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제이크의 아내 카이라도 마찬가지다. 함께한 기억을 되돌아보며 제이크 가족은 눈물을 흘렸고 그가 가족에게 소중한 존재였음을 자각한다.
내 2022년은 가장 많이 울고 가장 많은 밤을 샌 해였다. 스무 살의 나는 막 성인이 된 탓에 너무 말랑했고 2022년은 차갑도록 뾰족했다. 긍정과 부정의 모든 방향에 굳은 살이 생기는 일은 갑옷을 입는 일과도 같아 때로는 날 무겁게 만들었다. 이처럼 올해의 내 메모리뱅크에는 슬픈 기억과 행복한 기억이 혼재해있지만, 확실한 것은 2022년 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사실이다. 많이 변화했다는 것은 내 안에 새로운 기억들이 많이 쌓였다는 뜻이겠지. 그게 굳은 살의 무게를 알려주는 것인지, 아니면 굳은 살이 벗겨져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라는 존재의 변화를 관찰하는 회고는 이상하리만큼 신기하게 느껴진다. 양의 메모리 뱅크를 열어보는 것처럼, 올 한 해 내가 감각한 것들과 웃고 울은 일들이 짧은 플래시백처럼 지나간다. 대학에서의 첫 수업, 첫 학식, 첫 엠티, 첫 영화제, 동아리에서 찍은 단편영화들. 그리고 그 기억들을 함께한 소중한 사람들. 그들과 공유하는 기억을 통해 관계를 맺었고 그 기억들로 새로운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만하면 미운 정이 들만한 2022년이었다.
2023년에는 어떤 기억을 쌓을까? 어떤 내가 될까? 그 때는 외로움이 아닌 고독감을 즐기고 있을까? 애프터양의 수록곡인 glide가 떠오른다. I wanna be라고 읊조리며 멜로디와 바람과 바다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노래처럼, 내가 새롭게 듣고 보고 느끼게 될 것들이 이루어갈 나의 존재가 궁금하다. 그것 하나로 삶의 이유가 충분하다. 2023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