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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Aug 29. 2022

엄마의 잔소리 나의 잔소리

2015.6. 계간 <니> 39호, '너 나 구분 없이 포함하다'

엄마의 잔소리가 무척이나 듣기 싫었다. 들어보면 옳은 소리긴 한데 매번 같은 내용이니 시작부터 짜증이 나서 도리어 더 그렇게 하기 싫어지는 말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라, 청소 정리정돈 해라, 엄마 말 들어 손해날 것 없다에서부터 엄마 말 안 들으면 후회할 거란 말까지…. 그리고 설거지 잘하는 방법 같은 것도 있다. 엄마는 따뜻한 물에 세제를 풀어 위에 있는 접시부터 그 물을 흘려가며 닦으면 좋다고 했다. 난 가끔 설거지할 때마다 엄마가 일러준 대로 하지 않았고 그럴 때면 엄마는 자신의 방법이 좋다고 얘기했다. 자신의 방식이, 자신의 말이 옳고 그대로 하면 너에게 좋을 것이며 그러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해되었지만 따르기 거북했다. 그래서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엄마처럼 잔소리하지 말아야지, 그냥 두면 알아서 하는데 긁어 부스럼을 만들잖아’하고 생각했었다.     



이제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은 지 10여 년이 되다 보니 어렴풋이 싫었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하지만 요즘 느끼는 건 나도 잔소리를 꽤 한다는 거다. 그것도 아주 세세하게 말이다. 세훈이에게 자기 전 준비를 시킬 때 시간을 알려주면서 일어나 화장실 가서 손부터 닦고, 그다음 뭐하고 뭐하고, 이렇게 순서대로 얘기한다. 난 바람직한 동선을 알려준다고 한 건데 아이는 “나 이거 했는데 그다음에 뭐해?”하고 묻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하나하나 엄마에게 물어보며 눈치 보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이가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지만 실상은 엄마가 아이에게 이럴 때 이것, 이것 다음은 저것 하는 식으로 하나하나를 지시하고 있다. 잔소리로 말이다.    

 

아이한테만이 아니라 남편한테도 하고 있다. 잔소리만으로도 모자라 난 원래 잔소리하기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런 것까지 잔소리하게 만드냐고 상대에게 짜증까지 낸다. 기대를 줄인다고 하면서 최소한 지켜야 할 것, 기본이란 걸 만들어두고 거기에 맞도록 잔소리도 하고 체크도 하고 싫은 소리도 했다. 그러면 남편이 나한테 미안해할 줄 알았는데 그 기본도 하지 않으면서 당당했고 나에게 원칙주의자라고 비난하며 도리어 남편을 뭘로 보는 거냐고 공격을 해오니 황당하다. 남편으로서 나에게 당연히 해줘야 할 것들을 하지 않아서 생긴 상황인데 나에게 어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었다.     




문제는 내가 하는 말들이 잔소리로 듣는 사람도 잔소리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데 있다. 말의 내용을 떠나 말을 듣는 사람에 대한 못마땅함이 깔려 있고 그 사람이 스스로 하기 전에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못 미덥다는 듯이 여러 번 반복한다는 점이 듣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근본적으로는 나와 같지 않은 사람에게 내 기준, 내가 옳다고 바람직하다고 결론 낸 방식을 강요하는 거라 느껴져 예전의 나도, 지금의 남편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 아니겠는가. 세훈이 경우는 내 기준과 방식을 자기 것으로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말이다.     


잔소리하는 사람들은 내가 남에게는 안 이런다, 애정이 있고 관심이 있는 사이니까 안타까워서 하는 거라고 한다. 내 가까운 사람이 내 마음같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 잘못되지 않고 잘 되어줬음 하는 바람, 실수하거나 돌아가지 않고 빨리 편하게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됐을 거다, 잔소리는. 하지만 그 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런 사랑의 말을, 피가 되고 살이 될 도움이 되는 말을 몰라주고 거부했다는 것에 마음이 상해서 표현의 강도가 점점 더 세지고 그 말은 점점 더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당연한 원칙이 되어 간다. 그래서 이런 당연하고도 중요한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 경우도 생긴다. 이번 호 주제인 ‘포함’과도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포함하고 있는 사람들, 나와 다름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에게 잊지 않도록 다그치듯 그렇게 반복하는 게 아닐까.     


내 잔소리를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일단은 상대방의 어떤 행동을 보고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소리를 붙잡아야 할 것이다. 이미 습관이 된 것이라 잔소리가 나가고 보는 경우가 많겠으나 그래도 의식적으로 참아야겠지. 그리고 지켜보는 것도 필요할 거다. 그다음 행동을 내가 정해놓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라 결론짓지 말고, 두고 보면 내가 성급하게 잔소리하려 했구나 하는 경우도 생기겠지. 또 더 두고 보면 내 틀, 내 기준과는 다르지만 저 사람 방식대로 하고 있는 거구나 발견할 기회도 생길 거다. 그러려면 내 기준이, 내 방식이 표준이고 정답이라는 생각부터 연하게 하고, 다른 사람도 나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믿음도 가져야 할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 사람에 맞게 말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겠다. 그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점을 명심하고 말이다.

     

♥ 정은선 _ 알트루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만 보다가 주변 사람, 이웃,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얼마 전 둘째가 태어나 이제 세훈, 세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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