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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Oct 24. 2022

마음 살핌 없는 관심은 독 - 누가 한스를 죽였을까

2016.3. 계간<니> 42호, '마음 알아, 배려' <문학 속의 니>

학교에서 1등을 도맡아 하는 모범생이 있다. 그 아이는 사회지도층이 되는 엘리트 코스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를 비롯해 학교나 주변 어른들은 그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아이는 갑갑증과 불안증을 겪고 있지만 좋은 기숙학교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해 집을 떠나 살게 된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에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친구는 없다. 좀 더 어린 시절 행복함을 느끼던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금지됐었다. 그러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동경하며 그 아이와 친구가 되어 행복했다. 자유로운 아이는 학교에서 왕따다. 모범생인 아이는 어느 한순간 그 친구를 모른 척한 죄책감에 이제라도 그를 혼자이게 하지 않겠다고, 학교 선생님들을, 다른 아이들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랬더니 모범생이던 아이가 문제아로 찍혔고 신경쇠약이 심해지자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돌아온다. 


앞날의 성공이 보장되는 듯 보였던 아이가 한순간 실패자로 전락하고 주변에서는 말이 많다. 아이 본인조차도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상황에 익숙해지기 어렵다. 대학에 가는 길이 아니라면 직업을 익혀야 한다. 작업복을 입은 모습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지만 어릴 적 친구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본다. 몸을 쓰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아 힘이 들었지만 고된 일주일을 보내고 난 후에 친구가 쏘는 한턱에 술을 마시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처음 마시는 술에 엄청 취한 아이는 다음날 죽은 채로 발견된다.




요즘 뉴스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야기, 우리 주변에 가깝든 그렇지 않든 지금도 있는 것 같은 이야기다. 헤르만 헤세가 30세이던 1906년에 나온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이야기이다. 100년 전 독일이나 지금 한국이나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 세워 경쟁하게 하고, 다른 생각이나 딴짓 못 하게 하나의 길로 몰아넣는 건 같은 듯싶다. 지치지 않고, 그 가치를 의심하지 않고 쉼 없이 달려야 한다. 


"아무튼 지치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고 말테니까.”한스가 친구 하일너와 친해지며 원래 주어진 과제보다 더 많이 열심히 해오던 공부를 못해 성적이 떨어지자 교장이 불러 설득할 때 한 말이다. 하일너와 거리두기를 권하던 교장은, 한스가 이를 거부하고 성적은 더 떨어지고 신경쇠약까지 보이자, 아니 그 전부터 한스를 포기한다. “무지막지하게 몰아댄 망아지는 길에 쓰러져 이제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그는 온갖 지식을 꾹꾹 눌러 담을 그릇도 아니었고, 갖가지 씨앗이 자랄 수 있는 밭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 시간과 공을 들일 이유가 없었다.”


한스는 자살을 한 걸까? 사고사인 걸까? 한스가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그러다가 누가 한스를 죽인 걸까 싶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따뜻하지는 않은 아버지와 돈 걱정은 없는 집에서 살았던 한스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스가 사는 깨끗한 거리 맞은편 ‘매의 거리’에 친구도 있고 따뜻한 어른들도 있었다. 한스가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낚시를 가르쳐준 친구도 그때 사귀었다. 그런데 한스가 커가면서 그 거리와 멀어지면서 친구는 없게 되고 깨끗한 거리의 어른들은 한스의 좋은 앞날만을 생각하고 대했다. 한스가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주에서의 시험을 준비할 때 그 시험을 보는 아이는 동네에서 한스가 유일했다. 목사도, 라틴어학교 교장도, 수학교사도 그의 시험공부에 도움을 줬다. 그가 기대대로 시험을 잘 보자 신학교 입학 전에 선행학습을 유도한 것도 그들이다. 한스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강요는 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학교 가기 전 자유시간은 그렇게 하나둘 공부시간이 돼 버렸다. 한스는 시험 전부터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머리가 아팠다. 한스가 좋아하던 토끼 기르기, 낚시는 공부를 위해 금지됐었다. 


학교는 좀 더 노골적이었다. 선생들도, 아이들도 자신들과 다른 이들을 봐줄 생각이 없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선생들은 귀하게 여기고 신경을 써준다. 하지만 천재로 분류되는, 자기만의 색이 분명하고 뛰어난 학생들은 경계한다. “교사의 임무는 지나치게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 라틴어나 산수를 잘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보통 사람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는 학생의 싹을 애초부터 자르려 한다. 미워하고 벌을 주고 그렇게 학교에서 몰아낸다.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으로 행복할 시간,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좌충우돌할 시간,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혼자서도 자연을 느끼며 살던 조용한 아이는 그 마음을 살펴주는 이 없이 자기 식의 배려를 하는 어른들로 인해, 조금씩 쌓여가는 독에 죽어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다, 한스의 마음을 알아준 이가 있었다. 시험을 앞둔 한스에게 행운을 빌고 격려해주지만 못 봐도, 떨어져도 괜찮다고 얘기해준 이, 바로 구둣방 주인아저씨다. 좀 더 어렸을 때 친했지만 한스가 거리를 두기 시작한, 주변 어른들과는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진 어른이다. 아저씨는 한스를 진심으로 아꼈지만 한스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한스도 주변 어른들의 생각과 같이 좋은 성적, 그 성적으로 얻을 수 있는 미래를 생각했었기에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구둣방 아저씨를 점점 피하게 됐던 터였다. 한스에게 쌓인 독들을 모두 풀어줄 해독제가 되기엔 부족했달까. 한스는 자신을 아껴주는 말을 받아들일 만큼 건강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한스는 누군가 정해놓은 길을 벗어나 자기 나름대로 살다 죽은 거다. 그 길에서 벗어날 생각을 했고 힘든 가운데도 격렬한 진짜 감정도 느껴봤다. 다만 마음 편하게 자신의 내용과 목표를 찾아갈 수 있었다면, 어엿한 한 어른으로 자라 자기대로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고 가정의, 마을의, 사회의 마음 살핌이,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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