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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Oct 10. 2022

혼자 그리고 함께 살기 위한 마음 레시피

2015.12. 계간 <니>41호, '삼시세끼' 정신건강을 읽어요

몸은 영혼의 집 – 마음을 위해 몸을 소중히 하라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2015년 초던가 봄이던가 이 책을 읽은 때가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책이 아니라 글로 먼저 접했다. 스마트폰으로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고 있었는데 우울증 관련 기사인지 먹는 거 관련된 기사인지에 관련 기사로 링크된 걸 눌러보니 공지영 씨 글이 있었다.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질 때 먹는 음식 뭐 그런 제목이었다. 그 글을 읽고 나니 ‘~할 때 먹는 oo’라는 시리즈의 글이 있었다. 바로 <한겨레 21>에 연재되고 있었다. 자기 전에 누워서 읽다가 하나만 더 읽고 자야지 하면서 야금야금 읽고는 혼자 보기 아까워 다음 날 동생들 카톡에 링크도 걸어 보내줬었다. 6월에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전에 걸어뒀던 링크는 닫히고 책이 나왔다. 책이 나온 걸 알고는 바로 세 권을 주문해 나도 다시 읽고 동생들에게도 선물했다.     



난 우울한 기운에 빠지면 먹는 것, 씻는 것이 귀찮아지고, 그러니 나가기 어려워진다. 예전에는 주로 자거나 책을 읽었는데 요새는 스마트폰으로 기사 읽기, 웹툰 보기, 드라마 보기 등에 빠진다. 마치 내가 왜 그런지 생각할 틈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만난 공지영 씨 글은 내 기분을 읽어주고 그건 이렇고 저래서 그런 거 아니겠어 하는 공감과 친절한 설명을 해주다가 이런 음식을 만들어 먹고 힘을 내보자고 토닥이는 느낌이었다. 시리즈 제목도 ‘딸을 위한 레시피’였던가? 20대 후반의 큰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니 그랬던 것도 같다. 난 그보다 열 살은 더 먹었지만 결혼은 하고 아이는 낳았지만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 독립하여 산다는 것, 돈을 벌어 장을 보고 세금을 낸다는 것…. 나에겐 아직 도달하지 못한 무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남편은 빼고라도) 아이들과 밥 해먹고 씻고 자는 것만으로도 허겁지겁 대는 느낌이다. 내가 어른다운가, 특히 아이들에게 엄마다운가를 생각하면 더 심란해진다. 태어나 삼십몇 년의 시간이 흘러 어른의 나이지만 그저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 같다 느낄 때가 있다. 잘하고 있는 건지, 잘 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고 먹어도 속은 헛헛하고 엄마가 있던 아주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때. 공지영 씨는 이런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엄마(부모)에게 바라던 거를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 얘기한다. 어른이 되어 혼자 살고 있는 딸에게 해주는 말이기에 내 진짜 엄마가 이렇게 말해줬음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가도 이런 엄마 같은 언니가 책을 내줘서, 나에게도 말해줘서 고맙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이 책엔 여러 요리들이 나온다. 음식 만드는 과정만 생각해도, 재료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어떨 때는 온몸에 귀찮음이 돋는 나인데 ‘쉽네. 해볼 만하겠네’ 싶은 요리들이 꽤 있다. 실제 시도해본 것도 있고 우리 집에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가 갖춰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의 요리 모토를 ‘단순함’이라 했다. 직접 하는 요리는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것을 추구한다고, 더 복잡한 요리는 전문가가 만드는 걸 먹는 게 낫다는 얘기에 속이 시원했다. 난 왜 그 복잡한 레시피를 다 따라할 생각만 했던 건가 의문이 생겼다. 저자의 레시피는 가장 간단한 버전으로 시작해 상황이 되면 하나씩 하나씩 덧붙여져 더 풍성해진다. 핵심재료가 아니면 없어도 그만이고 크게 썰든 작게 썰든 양념을 얼마씩 넣든 만들고 먹을 사람 마음이란 것도 딱 마음에 든다. 와인에 얼음을 넣어 마셔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내 머릿속엔 요리에 대한, 재료에 대한 고정관념이 가득했는데 이 책을 보고 조금씩 덜어내고 있다.      


사실 이 책의 레시피들을 다른 요리책처럼 쓴다면 글쎄 요리별로 한 페이지도 안 될 거다. 하지만 딸의 고민거리들을 같이 생각하며 지내는 얘기, 하는 생각, 엄마의 경험들을 풀어가며 요리 얘기를 하는 거라 더 재미있다. 요리 레시피뿐만 아니라 혼자 그리고 같이 살아가기 위한 마음 레시피를 볼 수 있다. 저자의 마음 레시피는 요리 레시피 못지않게 간결하고 명쾌하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아는 것, 그래서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일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나를 깎아내리려는 친구나 상사 등은 피하는 게 좋고 나를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사회에는 분노하는 게 맞다. 외롭다고 무턱대고 친구를 만나고 결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럴 때일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세상은 애초부터 불공평하고 살아간다는 건 힘들다, 누가 세상은 공평하고 힘들이지 않고 사는 게 좋다고 했나….     


무엇보다 우울해지면 내 몸(먹는 것, 씻는 것, 자는 것), 내 주변 사람들, 내가 해오던 일들 등 소중한 것들을 내팽개치고 싶은 기분이 드는 나에게는 나를 소중히 한다는 추상적인 말보다 깨끗이 씻고 간단한 음식을 해먹고 차분히 일기를 쓰고, 라벤더 오일이 도움이 되고, 집에서도 후줄근한 옷차림 대신 가장 예쁜 옷을 입으라는 구체적인 말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몸은 영혼의 집이고 몸과 영혼은 따로가 아니며 그렇기에 마음이 안 좋아지려 할 때는 몸을 먼저 돌보라는 말은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새겨 놓았다. 마음을, 영혼을 제쳐두는 게 아니라 그걸 위해 몸도 소중히 여기고 좋은 음식도 해먹는 것. 누군가 해주는 더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겠지만 나 스스로 만든 음식으로 포만감과 만족감을 느낀다는 건 자립(自立), 자족(自足)과 직결된다. 독거노인이나 은퇴 후 남성들에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줄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요리를 귀찮다 여기고, 편하게 갖다 주는 음식 먹는 게 좋지 않겠어 했던 나를 꼬집었다.      


책을 다시 읽다 보니 시도해본 요리보다 안 해본 요리가 훨씬 많다. 하나씩 해볼 때마다 이 책을 다시 펴게 되겠지. 레시피 앞뒤의 글을 읽으면서 ‘역시, 좋아!’ 할 테고 만들려던 음식은 나중으로 미루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 마음의 밥을 먹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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