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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Nov 08. 2022

내 코 이야기

2016.6. 계간<니> 43호, '우리 모두 아름다워'

내 코는 매부리코이다. 콧대의 시작부분은 높은데 가운데부터 쭉 뻗지 못하고 갑작스레 미끄러져 내려온다. 엄마와 아빠 중 아빠 코를 더 닮았다. 엄마는 코가 높지 않지만 곧고, 아빠는 코가 높고 큰 편인데 가운데 부분이 튀어나왔다. 내 코는 크진 않고 엄마 코처럼 날씬한 편이기에 옆에서 보면 아빠보다 더 두드러지게 매부리코로 보인다.     



내 코는 언제부턴가 뭔가 조금 부족한 것으로 여겨졌다. 친구들도 주변 어른들도 내 얼굴에서 코만 높아지면 예쁠 거라고 아쉬워하는 소리들을 했다. 매일 코를 위로 만져주면 올라갈 거라고도 하고 나중에 크면 성형수술하라고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코를 높여보겠다고, 코가 높아지면 정말 예뻐질지 궁금해서 엎드려 텔레비전을 보면서 베개를 이용해 코를 세우고 있었던 적이 있다. 30분인지 1시간인지 그러고 있다가 거울을 보니 코 옆선이 매끈하게 일직선이 됐다. 그런데 웃어보니 다시 예전 코로 돌아왔다. 나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내 코가 높아졌으면 하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 내 코를 높일 방법은 성형수술밖에 없는데 많이들 하는 쌍꺼풀 수술보다는 코 수술이 위험하고 부작용도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아예 생각도 안 했던 거다. 코가 예쁜 사람들을 보면, 특히 옆선으로 봤을 때 적당한 높이로 쭉 뻗어가는 코를 보면 부러웠다. 그리고 내가 뭔가를 하다가 마음이 식거나 중간에 포기하거나 하면 내 코가 꺾여서 그런 건 아닐까 쓸데없이 연결지어 보기도 했었다.     


코가 높았음 예쁠 거라는 얘기 안 하고 그냥 내가 예쁘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 사귀게 되었다. 그러다 결혼하기로 하고는 다들 하는 스튜디오 촬영도 했다. 안 하던 화장과 안 입던 옷들을 입고는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해보겠냐며, 그리고 지금이 가장 젊을 때 아니냐며 약간은 어색한 포즈와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고 포토샵은 거의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의 말을 더했다. 팔뚝 살을 없애고 얼굴선을 깎아 날씬하게 해준다는 말도 들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지금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결혼식을 하고 얼마 뒤 앨범을 받았다. 조금 낯설긴 했지만 화장을 하고 옷을 다르게 입어서라고 생각했다. 앨범을 본 다른 사람들은 참 예쁘게 잘 나왔다고들 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예쁘긴 한데 나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특히 몇몇 사진은 정말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한참을 살핀 후에야 코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얼굴 옆면을 찍은 사진을 보다 보니 코가 내 코가 아니었다. 내 코에 있는 볼록한 부분이 매끈하게 깎여 있었다. 아, 이래서 달라 보였구나. 포토샵을 원치 않았는데 내 코가 성형수술돼 있었다. 황당하긴 했지만 이미 앨범이 나왔고 사람들도, 그리고 신랑도 예쁘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 이후부터일까. 신랑이 내 코를 보면 콧대를 낮춰야 한다고 누르기 시작했다. 장난으로 여기기엔 집요했고 진짜 내 콧대가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 말라고 화도 내고 피하기도 했는데 그게 더 재미있는지 신랑은 계속했다. 그래서 정색을 하고 얘기했다. 난 당신 생긴 거 가지고 놀리거나 하지 않는데 당신은 왜 자꾸 내 코에 대해 뭐라 하고 누르고 하냐고 말이다. 내 코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런데도 가끔 나에게 여자가 콧대가 높아서 어쩌고 했다. 그럼 내 콧대를 낮춰야 한다고 눌렀던 게 이중적 의미였던가 싶기도 했다. 흥, 내 코가 어때서.     


내 코는 매부리코이다. 고집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좀 수줍어 보이기도 하고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다르게 바뀌는 건 또 견딜 수 없다. 나와 함께 냄새 맡고 콧물도 흘리고 하기를 어언 40년. 거울 속의 내 코를 본 것만도 25년이 넘었다. 이게 나다운 코다.     


♥정은선 _ 알트루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만 보다가 주변 사람, 이웃,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편과 8살 세훈이, 2살 세진이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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