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말들은 접할 때마다 새로운 인사이트를 준다. '르상티망(Ressentiment)'은 니체가 도덕을 이야기하며, 표현한 개념이다.
니체는 도덕을 군주도덕과 노예도덕으로 분류하여 표현했다. 말 그대로 군주도덕은 군주들이 지닌 도덕관이고, 노예도덕은 노예들이 지닌 도덕관이다. 두 가지의 도덕관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니체는 강조했다. 노예들이 지닌 도덕관념 속에는 부자는 악하고, 가난한 자는 선하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그래서 노예도덕 속에서 노예들은 부자 또는 강자에 대한 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존재하는데, 이를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 표현했다.
르상티망은 니체가 있기 전에도 있었고, 지금까지도 존재한다. 노예도덕은 물질에서 비롯되므로 물질을 추구하는 삶 속에서는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많은 사회문제들은 르상티망에 의해 발생된다.
대표적인 예로 노조들의 집단행동이 있을 수 있겠다. 노조 또는 사회운동가들은 대중들의 르상티망을 자극하여 세력을 키우고 원하는 바를 쟁취(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해낸다.
부자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대중매체의 스탠스도 르상티망을 자극하는 쪽을 향한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부자들의 악한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노예도덕을 강화시킨다. 소비가 되기 때문에 이런 류의 매체들이 시장에 나오는 것일 수도 있고, 이런 류의 매체들이 대중들에게 많이 노출되며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두 가지 요인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강화되어 간다. 마치 욕망이라는 목적과 화폐라는 수단이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커져가는 자본주의와 같이 말이다.
르상티망은 끝이 없다. 자산이 1억 인 사람은 10억 인 사람에게 르상티망을 느끼고, 자산이 10억 인 사람은 100억 인 사람에게 르상티망을 느낀다. 쇼펜하우어가 욕망을 바닷물에 비유한 것과 같이, 끊임없이 갈증은 더해만 간다. 니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초월한 인간, '위버멘쉬'가 될 것을 강조하며, 물질과 관계를 넘어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함으로써 르상티망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것을 권고한다.
니체는 위버멘쉬를 달성한 인간이 지닌 도덕을 군주도덕이라 표현했다. 군주도덕을 지닌 이들은 상대적인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행위를 하며, 진실과 진리를 추구해 나간다. 금강경 가르침 중, 결과로부터 자유로운 행위가 군주도덕이 지향하는 바와 같다고 본다. 군주도덕이라는 표현을 노예도덕과 반대 개념으로 본다면, 부자는 선하고 가난한 자는 악하다고 보는 것이 군주도덕이라 여길 수 있으나,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군주도덕은 선과 악, 강자와 약자의 상대적 개념을 넘어서 있다. 군주도덕은 근본이 정신에 있고, 철학에 담겨 있다. 노예도덕은 근본이 물질에 있고, 저잣거리에 널려 있다.
쉽게 생산되어, 쉽게 소비되는 대중매체 속에는 노예도덕, 르상티망을 강화시키는 것들로 가득하다.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도덕관을 지닐 것인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