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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물질의 방 May 19. 2023

5.18 사건을 통해 배운 지혜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어떤 사건 하나를 놓고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좋다.

어느 한 시점에만 그 사건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에도 다시 한번, 그 이후에도 또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그 사건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은 자신에게 큰 경험이 된다.

처음 생각한 것과 그다음 생각한 것은 분명히 다르다. 상반된 입장이 취해질 수도 있고, 새로운 관점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시간을 두고 생각을 거듭하게 되면, 극단에 치우쳐 있던 입장이 가운데로 점차 수렴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 사건을 판단하기에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다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시각각 내게 다가오는 [죽음]이 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며 [사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5.18 사건]을 통해 나는 위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5.18 사건]에 대한 내 생각은 나이의 변화에 따라 매 십 년마다 한 번씩 변해서, 3단계로 변해왔다. 앞으로도 변화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 도달한 3단계에서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1단계는 10대부터 20대 후반까지 갖고 있던 생각으로 [5.18 사건]은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이었다. [군부 독재]에 저항하여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주적인 방식의 저항 운동으로 그 정신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중요한 역사적 업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군부]는 [악], [저항세력]은 [선]이라는 입장이었다.


2단계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때 갖고 있던 생각이다. [5.18 사건]은 불순분자들의 선동으로부터 야기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외부의 개입]이 있었고,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민주]라는 가치를 앞세워 대중들을 선동해 일으킨 하나의 [폭동]이라는 입장을 가졌었다. 대중을 선동하고 물리적 수단으로 치안질서를 어지럽힌 [저항세력]은 [악], 이들의 활동을 제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군부]는 [선]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3단계는 몇 년 전부터 갖게 된 생각으로 [5.18 사건]의 진실은 [알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정보]를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갖고, 이를 시의적절하게 정보처리할 수 있다면 항상 보편타당한 결정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정보는 지금도 계속 생산되고 있을 정도로 [무한]하며, 정보라는 물결이 흐르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AI가 아무리 발전되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처리]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같은 시간 동안 또 다른 AI가 정보를 [생산]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인식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은 완벽할 수 없다. 우리가 [5.18 사건]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정보]는 사회, 정치, 문화 등 다방면에서 영향을 받는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우리가 [진실]이라 여기는 사실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필요에 의해 계속 변한다. 과거 절대적 권한을 지니고 있던 [종교]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 권한이 약화되었다.

조지 오웰의 문장처럼 [현재]를 지배하는 자들에 의해 [정보]는 통제될 수 있고, 제한된 [정보]를 그 사건을 설명하는 [전부]라고 여기게 된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것은 괴짜의 [돈 낭비]가 결코 아니다. [현재]의 정보를 통제하면 [과거]를 지배할 수 있고, [과거]를 지배함으로써 지금 하는 행위에 대한 당위성과 권위를 부여할 수 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어떤 세력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방귀]라고 하면, 거기에 맞춘 [근거]와 [예시]는 쏟아져 나올 것이고, 방귀를 억제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생산되고 소비될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정보 비대칭]은 결코 해소될 수 없으며, 힘을 가진 이들은 정보를 통제하여 그들의 힘을 더 키울 것이다.

인간에게 허락된 불과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보 비대칭]의 환경 속에서 얻은 정보 중 [진실]이라 여길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

위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난 후, 나는 [5.18 사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 밖에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나름의 생각은 갖고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점차 [알 수 없음] 또는 [관심 없음]으로 수렴되는 것이 느껴진다.

100년 안팎의 짧은 삶을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의해 [진실]과 [거짓]이 바뀌는 가십(gossip) 거리에 휘둘리기보다는 [진리]와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삶에 훨씬 유익하다.

더불어 세상일에 [의견]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만큼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없어 보인다. 의견을 표출하는 순간 [피/아]가 생겨나며, 나의 말과 생각은 [공동재]가 된다. 그래서 옛 성인들과 지혜로운 철학자들은 말을 극도로 아꼈나 보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알 수 없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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