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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물질의 방 Jun 01. 2023

빛에 굶주린 나머지, 그는 그만 올라가고 말았다

"빛에 굶주린 나머지, 그는 그만 올라가고 말았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야간 비행]에 나오는 문장이다. 야간 비행은 작가이며, 조종사였던 생텍쥐베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가 조종사가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작가가 아니었다면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표현해냈다.

야간 비행은 20세기 초에는 굉장히 위험한 비행이었다. 지금과 달리 항법 장치 등 조종을 보조해 주는 수단이 현저히 부족한 상태에서의 야간 비행은 그 자체로 모험이었다.

어둠은 모험가에게 공포를 준다. 모든 인간은 미지의 삶을 살아내는 모험가이기에, 우리 모두는 어둠으로부터 공포를 느낀다.

[어둠]은 인간이 정보를 인식하는 통로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가시광선]의 영역을 차단한다. [보이지 않기]때문에 [알 수 없음]으로 공포를 느낀다.

[알 수 없음]이라는 상황에 놓이면, 우리는 작은 빛이라도 찾아 나선다. 불빛에 모여드는 나방처럼, 그리고 네온사인 아래 모여 취해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알 수 없음]을 맞닥뜨렸을 때, 그 자체에 머물러 있는 방법도 있다. 결국 날이 밝으면 간밤에 찾아 헤매던 빛은 온 세상에 충만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때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야간 비행] 속 조종사와 그의 상관, 리비에르에게는 달성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그 임무를 위해 [알 수 없음]의 영역인 [어둠] 속으로 스스로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임무]는 결과로 종결되고, 행위자는 결과를 위해 원인이 되는 행위를 하도록 강요받는다. [원인],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로 나타나는 [인과법]은 인간에게 [알 수 없음]의 미지의 환경 속에서도 행위를 하도록 한다.

그것은 [의무]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소설 속 조종사의 상관, 리비에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자기 안에서 목적을 찾지 않고,
자신을 지배하고 살아가게 하는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따르며 희생한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다니는 것은 인간에게 씌워진 하나의 [사회문화적 굴레]일 것이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 어둠을 어둠 그대로, 알 수 없는 것을 그대로 알 수 없는 상태로 남길 수 있다면 [인과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금강경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면, [결과로부터 자유로운 행위를 하라]이다. 낮에도 밤에도 인간에게 주어진 [굴레]와 같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 야간 비행과 같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다니는 행위는 [삶]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피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죽음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는 깜깜하기에 두려워한다.

[어둠], [알 수 없음]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깜깜한 어둠을 향해 나아가는 이는 모든 면에서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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