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제한을 많이 둔 것
난 아이가 어릴 때 제한을 많이 둔 편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1-2살 때에는 아기 혼자 이동이 어려우니 딱히 제한할 만한 게 없어 놔뒀고 3살이 되면서 제한을 많이 두었고 본격적으로 훈육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제한이라고 하면 자유를 강탈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긴 하지만 “규율이 곧 자유다”라는 법칙은 내가 오랫동안 혼자 일하면서 깨닫게 된 진실이다. 직장인이 아니었던 나는 매일매일 출근하듯 아침에 집을 나서 작업을 하고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쥐어주지 않으면 자유라는 핑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순환 속에 빠지는 일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쨌든 그 이후로 매일매일을 어떤 규칙 안에 스스로 들어가게 했고 그래서 내 생활이 그나마 제대로 돌아가게 되면서 내면에 깊은 충족감이나 행복감이 생기게 됐다.
규칙이 없는 자유는 무기력을 낳고 오히려 적당히 통제된 자유가 주도적인 성취를 안겨준다. 그래서 오히려 규칙 속에서는 더 자유롭게 놀 수 있다. 제한이라는 건 사람에게 확실히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고 누군가 나를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완전히 개방된 자유는 오히려 사람을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회 안에 완전한 자유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단순하면서 규칙적인 계획이 더 많은 의욕과 노력을 안겨 준다.
내경우엔 직업적인 면에서 시간의 자유가 넘치기 때문에 무조건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야만 하고 만약 그게 없으면 시간의 자유는 지옥이 된다. 그래서 그 꼴을 안 보려면 스스로를 통제할 수 밖에는 없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내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처럼 아이에게도 그런 방법을 알려주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이 사람의 자기 통제력에 관련된 책이었는데 놀랍게도 자기 통제력은 아주 어린 시절 영유아기 때 만들어져서 그때 통제력을 잘 발휘했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통제력을 잃지 않았던 반면, 그 반대의 경우엔 어김없이 통제력 없는 삶을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약간 충격적인 내용이었는데 왜냐하면 통제력이라는 건 크면서 서서히 발달해 성인즈음에 발달이 완성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니까 봐주자, 이런 것 없이 안 되는 것에 대해 알려주고 약속의 의미에 대해 알려주고 떼을 쓰던, 난리를 치던 엄마가 한번 안된다고 한 것에 대한 것은 절대 들어주지 않았다. 미리 약속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아이가 생떼를 쓰기 시작하면 즉시 모든 걸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3-4살쯤 친구들과 놀기로 한 날 아이가 심하게 짜증을 내고 떼를 쓰기에 엄마들에게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친구들과 놀지 못하는 것이 물론 나에게도 속상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누구와도 놀 수 없으며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옳지 않다고 정확히 얘기해 주자 그 이후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떼를 쓰는 일은 없었다.
또 한 번은 약국에 갔는데 아이가 약국에 진열된 장난감을 보고 사달라고 떼를 썼다. 아이는 급기야 누워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에게 사줄 수 없으니 나와, 하고 약국을 나갔다. 약국을 갈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게 할 수 없었다. 매번 아이에게 무언가를 사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아이의 떼를 강화할 뿐이었다. 나는 다음 날 일부러 아이를 같은 약국에 또 데려갔다. 아이는 어김없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나 울음의 강도가 약했고 곧 그쳤다. 그다음 날도 또 약국에 데려갔다. 아이는 이번에는 구경만 한 뒤 장난감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약국을 나왔다. 놀라웠다. 아이는 채 24개월이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단 세 번 만에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 이후로 아이는 무엇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일은 없었다. 나는 이보다 더 어린 연령에서도 이것이 가능하리란 걸 확신하게 됐다.
나는 이런 식으로 아이의 통제력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제한을 거는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간식을 사줄 수 있지만 오늘 한번 참아볼까? 하고 미션을 주는 것이다. 이 외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상생활에서 사소하게 제한을 걸어둘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최근에는 하루에 할 일 10가지를 적어두고 그것들을 다 완료하면 500원씩 용돈을 주었다. 스스로 씻기나 유치원 가방정리 등과 같이 모두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에 관한 거였다. 500원을 받으면 바로 무언가를 사 먹을 수도 있고 모을 수도 있다. 그건 아이의 자유다. 처음엔 돈이 생기면 쪼르르 편의점에 달려가 사탕을 하나 사 먹던 아이가 어느 날 문구점에서 멋진 로봇을 보더니 한 달이나 돈을 쓰지 않고 모아 만원을 만들었다. 그 모습이 기특해 나는 만원을 더 보태어 그 로봇을 사주었다. 아이는 참고 모으는 기쁨에 대해 알았을 테고 복리에 대한 개념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제한을 많이 했던 탓인지 아이는 자기 통제력을 잘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일례로 얼마 전 유치원 친구들과 실내놀이터를 갔는데 그곳엔 걷지 못하는 영아들도 있었고 공간이 협소했다. 아이들은 이미 신나서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는 걸 멈추지 못했다. 위험해 보이기에 아이에게 가서 뛰어다니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엄마에게 제지를 당했는데 엄마의 말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신경도 안 쓰고 계속 뛰어다녔다. 이미 너무 흥분 상태였다. 나는 다시 한번 아이를 향해 안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그제야 엄마가 진짜로 안된다는 걸 확인하고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친구들은 모두 뛰어다녔다. 놀이 시간이 끝날 때까지 아이는 걷는 것을 지켰다. 다른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과는 별개로 본인은 본인의 약속만 지키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뛰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놀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아이를 칭찬해 주었다. 엄마의 말을 믿고 이해해 준 것에 대해, 스스로를 통제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을 통제해 본 아이들은 커가며 훨씬 더 자기 통제력을 더 잘 발휘하게 될 것이다. 난 그게 노는 것이든, 공부든, 뭐든 상관없이 똑같이 적용될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자기 통제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만 있다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스스로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통제력은 회복탄력성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데 회복탄력성이 좋은 아이들은 일단 자기 통제력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기 통제력 하나만 가르쳐 줄 수 있다면 그 이외의 것들은 사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모든 걸 잘해나갈 거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