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연못 Oct 03. 2023

신은 오늘도 피곤하였다

신은 오늘도 피곤하였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방의 전등을 킨다

오래된 전등은 빠르게 깜빡거린다

탁한 불빛이 안개처럼 뿌려진다


신은 오늘도 괴롭고 슬펐다

매일 그의 눈 속을 가득 채우는

피조물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과 연약함에

피조물들이 만들어내는 탐욕과 이기심과 잔혹함에


신은 오늘도 무기력하였다

이제는 커튼을 내리고 싶다


그러나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의

새벽 첫차가 출발하는 소리와,

정거장에서 피로한 눈으로 버스를 기다리다

몸을 싣고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의 숨결과,

인력대기소 앞에서 길게 줄을 서서 있는 이들의 기다림에

그는 자신의 오래된 전등을 다시 킨다



작가의 이전글 항해, 그리고 선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