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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 Jul 14. 2023

내 아이가 자랑스러웠던 순간

외동아이 엄마로 산다는 것

이의 유치원은 장애통합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장애라는 말 보다는 '어디가 불편하다'라는 말을 사용하며, 작년에 장애공감교육을 시행한 바 있다. 공립유치원의 장점인 듯싶다. 원래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던 나조차도 선생님들의 그러한 표현법 속에서, 나도 모르게 '불편하다'로 바꿔 말하게 되었다.


지난 주에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반 친구 중 아들의 행동을 칭찬한 아이가 있다며, 내용을 전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어떤 친구를 좋게 여기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물으셨는데, 아들의 이름도 거론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이유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하셨다.

"OO이가 말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을 불쌍히 여기거나 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잘 알아주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런 멋진 친구니 어머니께서도 아이를 격려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자랑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아들을 잘못 파악한 것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어느 유아기의 잔상이 떠올랐다.


이 두돌 무렵이었다. 그 날도 독박 육아에 시달리던 나는 친정으로 애를 데리고 가서 마음 놓고 늦게까지 잠을 잤었다. 그런데 나중에 아빠께 듣기로,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아기가 먼저 깨어나서는 배고프다 울지도, 엄마를 깨우지도 않고, 그저 엄마 손가락만 가만 가만 만지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며, 당신의 눈을 의심했다고 하셨다. 사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기분이 섬칫했었다. 이후에도 아이 유치원 참관수업 때 등 몇 번의 일들을 거쳐 아들이 생각보다 깊은 아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한편으론 복잡한 심경이었다.

'애가 애다워야 하는데, 너무 애어른 같은 것이 아닐까? 애어른처럼 키우는 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리는 아이가 되었나, 어려서부터 그때 그때 감정을 설명해주고 기민하게 대처한다고 다 이렇게 된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아이의 기질일 수도 있다. 세상 천지에 '애어른 같은 아이 키우기'라는 육아서는 없다. 나는 엄마로서 아이를 좀 더 천진하게 키우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유치원 선생님께 들은 그 몇 마디는 내 생각을 변화시켰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로 하자.

애어른 같은 면이 아이의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울컥하기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 부분을 콕 집어 칭찬해 준 것이다.

내 아들이지만 멋지게 느껴졌다.


작년에 아들이 자꾸만 지체장애를 가진 다른 친구를 가리켜 자기를 괴롭힌다고 표현을 하기에, 나는 이렇게 말해줬었다.

"너보다 조금 느릴 뿐이야. 느린 아이라고 해서 너와 다르다거나, 너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널 괴롭히려고 한 게 아니라 말이 안 되다보니 행동으로 나간 거래."

한편 이 올라가면서 내심 걱정도 되었었다. '아이들이 분명히 서로 조금씩 다름을 눈치챌텐데, 놀리고 괴롭히면 어쩌나. OO이는 눈치가 빨라서 분위기에 잘 휩쓸릴지도 몰라. 혹시 동조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최근 아이가 '엄마는~ ○○래요~. 못한대요~.' 이렇게 놀리는 투로 멜로디를 넣어 말하기도 해서 더 걱정이  부분도 있다. 세월이 흘러도 '놀리는 곡'의 리듬과 멜로디가 똑같다는 것이 다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한 걱정이 무색하게도, 내 기준에서 아들은 잘 자라주고 있었다.

나의 어린시절 아픔도 장애를 가진 친구와 얽히면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눈물도 고... 속으로 대견했다.


훗날 아이 본인이 칭찬받았다는 것을 잊을까 싶어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 본다.

잘했어, 잘했어.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다.

부디 쭉 이렇게만 자라다오.


아이는 놀리는 행동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이 싸울 때,

착한 마음을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가만히 말해주었다.


※ '그 엄마에 그 아들'이라는 표현은 자화자찬의 의미가 아니라, 지난 글 '바람과 같은 인연이라도'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로 하자. /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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