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아이가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딜(Deal)이 될 수도 있고, 협박이 될 수도 있다. 「나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 전윤미」 책 속 '대화에 방해되는 말' 챕터를 아래에 살짝 요약해보겠다.
지시하거나 명령! 경고하면서 위협하지 마세요.
이렇게 해야 네가 이렇게 될 수 있어. 라고 충고하지 마세요.
비난하거나 평가하면서 아이 기를 죽이지 마세요.
비교하는 말 하지 마세요.
알면서 질문하지 마세요.
너 크면 이렇게 될 거야, 예언하지 마세요.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으며 이러한 말들을 하지 않도록 애를 써왔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으니, 그건 8월 마지막주 목요일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그 날은 아이를 등원시킨 뒤 동네 사는 친척과 만나서 간만에 브런치도 먹고, 커피도 한잔하고, 쇼핑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었다. 세 시 반쯤 아이를 픽업해서 영어 학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차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유모차에 태우고 학원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4시 20분, 수업시간이었다. 종종 있는 일이라 흔들어 깨우는데 그날따라 짜증을 부리면서 웅얼웅얼하는 것이었다.
" ~~~~달라고!"
앞의 말이 들리지 않아서 두 번 세 번 물었더니, "~~벗겨 달라고!"라는 말이 들렸다. 알고 보니 양말을 벗겨달라는 거였다. 울음 섞인 짜증에다 이미 큰 소리는 났고, 주위 학부모들에게 미안해서 아이를 데리고 문밖에 나간 뒤였다.
"네 할 일은 하라고 했지? 엄마 말 안 들으면, 엄마 다시 회사 나갈 거야."
나도 모르게 이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금껏 내 말을 듣도록 하려고 수많은 당근과 채찍을 썼어도, 절대 하지 않던 말을 하고 만 것이다. 그 말을 하고 나자, 곧이어 후회가 폭풍우처럼 밀려왔다.
"안 돼. 엄마가 회사에 가면 나는 누가 돌봐주라고."
아차, 싶었다. 일단 수업시간이 많이 늦었기 때문에 무작정 강의실에 아이를 들여보낸 뒤, 곰곰 생각해보았다.
왜 이전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회사라는 말이 튀어나왔을까?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나의 진심인 것일까. 되돌아보면 나의 직장생활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교육업계는 상대적으로 여자들이 많은 곳이다. 그중 내가 전공한 평생교육은 같은 교육학이어도 교직 이수는 할 수 없는, 일명 교육서비스업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서비스’라는 말이 붙으면 대부분 일이 고되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들 많은 직장에선 뒷말이 돌기 십상이기에 행실을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목사님의 딸이라는 꼬리표는 평생 나를 따라다녀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아버지 직업을 모르는데, 정신 차려보면 그들은 내 아버지 직업을 알고 있었다. 나는 실수할 때마다 아버지까지 함께 모욕을 받는 기분이었다. 직장 사람 중 크리스천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분명 그 사람에게만 살짝 내 얘기를 했었는데, 어느새 주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나는 자연히 내 이야기를 가려서 하는 사람이 되었다.
직장 생활하며 부당한 일을 겪을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참았다. 참고, 참다가 곪아 터지는 날이 있었다. 그렇게 한 번 터뜨리고 나면 나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렇게 오해를 받았다. 착한 척 한 거라고. 위선자라고.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택해야 했다. 참느냐, 터뜨리고 뛰쳐나가느냐. 끝까지 참지 못하는 한 또 그런 일이 반복될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뒤엔 끝까지 참았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속 건강의 이상 원인은 힘들었던 직장생활에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편 세월은 흘러 어설펐던 내게도 노련함이 생기고, 사람 보는 눈과 서글프지만, 처세술도 생겼다.
지금 복귀하면 말단은 아니니, 그동안의 경력과 직급을 인정받는다는 가정하에 조금은 평온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까지 미쳤을 때, 다시금 생각했다. 정말 돌아가고 싶은지.
아이가 수업이 끝나고 잔치국수를 또 사 달라고 졸랐다. 지난달에는 외식이 잦았다. 휴가도 다녀오고 해서 말일만큼은 저녁 외식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들은 그런 내 속도 몰라주고 저렇게 말하는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타이르듯 차근차근 설득하기로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엄마가 오늘 잔치국수 안 사주면, 나는 이것보다 더 짜증 내고 엄마를 힘들게 할지도 몰라."
어휴,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다. 엄마도 오늘 밖에서 점심을 사 먹었으니 너도 사 줘야 공평하겠지. 이렇게 또 지고 만다. 얄미워서 먹여 주진 않았다. 그밖에도 아이는 자잘하게 화를 돋우었고, 한번 회사란 말이 튀어나오자 차단기가 올라가 버린 내 입에서는 회사로 돌아가겠다는 말이 계속 나왔다.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 울린 여파인지 아이는 기침을 심하게 했다. 이비인후과에 들렀다가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홀로 남은 거실에서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정말로 직장에 다시 복귀하고 싶은가? 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마음에도 없는데 아이에게 말로 저울질하며 협박했다는 말인가? 갑자기 양심이 너무 찔리고 아파 왔다. 아이가 유치원 생활을 할 때 행여나 내 말 때문에 싫은데도 억지로 참고 생활하는 거면 안 되는데. 억지로 태권도장 가고, 학원 다니게 되면 어쩌지. 이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다녔을 텐데, '엄마 말 안 들으면(내가 내 일을 잘하지 못하면) 엄마가 회사에 간다고 했으니까.'라고 애답지 않게 자신을 억누르면서 살면 큰일이지 않은가. 그런 일의 시초가 내 협박 때문이라면? 생각만 해도 견디기 힘들었다.
우리 모자는 밤에 자기 전 잠자리 대화를 나누곤 한다. 내가 짐작한바 거실에서 곱씹던 고민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자, 솔직히 "했다"라고 답해주는 아들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지금은 회사 생활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또 그러면서도 회사에 나갈지 모른다고 협박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아이는 흔쾌히 사과를 받아주었다. 곧이어 아이는 회사에 나갈 거면 본인이 따라갈 것이고, 유치원에서 엄마랑 너무 오래 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 교육 과정 반일 때는 한 시 반이면 엄마가 데리러 왔는데, 올해 방과 후 과정 반은 3~4시까지 진행되기에 길게 느껴졌나 보다. 그래도 나는 발달과정에 따라 6세 유치원 누리과정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학습능력이 있는 아이기에 기타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최대한 지원하고픈 마음이 크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어려도 '자기가 해야 하는 일' 이라 여기고 임해주기를 바란다. 되도록 기쁘고 즐겁게,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나의 협박은 아이가 그런 마음으로 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과도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팠었나 보다.
두 번 다시 협박하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 회사에 대한 언급도 피할 것이다. 아이가 지금처럼 아무 근심 없이 해맑게 자기 본분을 다하며, 조금씩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감에 성취감을 느끼며 자라나길 바란다. 그러다 다치거나 아프거나, 속이 상하면 엄마를 찾겠지. 네가 손을 뻗는 곳엔 엄마가 항상 있어 줄 것이다. 이렇게 오늘도 반성하며,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다.
나의 협박은 아이가 그런 마음으로 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과도 같았다. / 조금씩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감에 성취감을 느끼며 자라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