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하나 정도는 빼면 안 돼요?"
치앙마이의 햇볕은 따가웠고, 공기는 후끈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날씨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그래서 동남아를 가면 주로 오전에는 수영을 하면서 쉬고 오후에는 관광 한두 개를 하곤 했다. 동남아 날씨는 수영하기에는 좋지만 덥고 습해서 걸어 다닐 때는 참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게 선택한 치앙마이 올드타운의 오후 코스는 대부분 ‘사원’이었다.
나는 여행책자에 나온 유명한 장소는 하루에 꼭 하나 이상은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언제 또 오겠어”라는 말이 습관처럼 입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올드타운 둘째 날, 사원을 몇 개 보고 나서 첫째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엄마, 하나 정도는 빼면 안 돼요?”
순간 멍해졌다.
아이는 지친 얼굴로, 땀에 젖은 이마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내 눈을 바라봤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사원을 걷고 또 걷는 것이, 아이 눈엔 고역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에게는 '관광지'보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사원, 왓 프라싱은 황금빛 지붕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사원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아, 이게 바로 태국 사원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남편과 방콕에 갔을 때 왕궁이 너무 멋져서, 언젠가 아이들과도 이런 태국의 전통 사원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이곳은 그런 내 소원을 이뤄주는 장소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걸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사원의 섬세한 건축양식은 아직 그들의 관심을 끌기엔 조금 어려운 주제였다.
그래도 조용한 사원 안에서 잠시 앉아 땀을 식히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로컬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둘째 날의 사원은, 엄마의 만족을 위한 하루였는지도 모르겠다.
왓프라싱에서 조금 걸으면 부악하드공원이 나온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야시장도 있어서 함께 코스에 넣어보았다. 사원을 보고 저녁이 되니 덜 더워서 걸어 다니기에 괜찮았다.
올드타운 한복판에 위치한 이 공원은 크지는 않았지만, 태국 현지의 일상과 자연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잉어가 헤엄치는 연못, 나무 그늘 아래 쉬는 사람들, 그리고 작은 운동기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우리 아이들도 곧장 그 운동기구에 올라가 놀기 시작했다.
공원의 그늘 아래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더위도, 걷느라 쌓인 피로도 잊고, 그 순간만큼은 치앙마이의 일상 속으로 녹아든 기분이었다.
셋째 날은 사실, 내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았다.
전날 밤부터 몸이 으슬으슬했지만, “아무것도 안 보고 지나가는 하루는 아깝잖아” 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타이레놀을 챙겨 먹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 올드타운으로 나섰다.
그날 간 곳은 ‘왓 체디루앙’.
높이 솟은 고대 사원이 눈앞에 펼쳐졌고, 무너진 부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더욱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사원은 화려하기보다는 묵직했다.
태국 역사 속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사원 피로도가 누적된 상태였다.
왓 체디루앙 옆에 자리한 왓 판타 오는 전통 목조 건축물로 이뤄진 아담한 사원이었다.
화려함 대신 고요함이 있었고, 나무의 따뜻한 기운이 사원을 감싸고 있었다.
잠깐 둘러본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쉬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과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첫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하나 정도는 빼면 안 돼요?”
맞는 말이었다.
여행은 정보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감정을 쌓아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이와의 여행을 통해 또 한 번 배우게 되었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에서의 사원 산책은,
단순히 유명한 명소를 보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내 여행계획도, 아이의 피로도, 우리 가족의 감정도 함께 담겨 있었다.
비슷해 보이는 사원 속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바라보았고,
그 기억들은 사원의 모양만큼이나 다채롭게 우리 안에 남았다.
다음 여행에는, '다 봐야 한다'는 생각 대신
‘하나쯤은 빼도 괜찮아’라는 여유를 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