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도착하다 : 첫 번째 여정 (1)
씩씩한 겁쟁이가 되는 법은 간단하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결정을 내리고 움직이면 된다. 잘못된 선택인가 싶어 겁이 나면 겁이 나는 대로 선택을 따라가는 것. 잘못된 선택을 할까 싶어 걱정을 한가득 안고서라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그게 전부다.
제주에 가기 전 '비행기에 무사히 오를 수 있겠지?'라는 질문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원래부터 늦을까 싶은 걱정에 약속 시간보다 10분에서 20분은 일찍 나오는 습관이 있었다. 그뿐인가,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인 나는 김포공항이라는 거대한 공간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결국 김포공항에서 수하물을 맡기고 수속을 하는 곳까지 가는 법을 검색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무작정 가보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알고 가는 게 훨씬 나을 테니.
김포공항에서 제주로 가는 법. 층수부터 바이오 등록, 에스컬레이터까지 진짜 공항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상세히 말해주는 글이 참 많았다. 그간 점점 각박한 사회가 되어 가는 것 같아 서글펐는데, 어쩌면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여전히 다정한 세상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기대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어찌저찌 가다 보면 제주에는 도달하겠구나, 싶었다.
3시 20분 탑승 시작. 비행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에 소요 시간만큼이나 일찍이 서둘렀다. 어차피 태블릿도 챙겼으니, 카페에 가서 글을 쓰자는 마음이었다. 언제나 늦는 것보다는 서두르는 게 낫다. 점심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세상에, 일찍 도착해도 너무 일찍 도착했다. 2시간 남짓한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 했다. 글을 쓸 만한 공간을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적당한 곳을 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편의점에서 우유 하나를 사서는 빈 의자에 앉았다. 모두가 어디론가 향하는 길목에 앉으니, 그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유니폼을 입고 바삐 움직이는 승무원들, 비행기를 정비하는 사람들, 부랴부랴 도착해 수속하러 뛰어가는 사람들, 단체로 우르르 와 비행기만 기다리던 학생들 등등. 각자의 목적을 가진 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누군가에게 어떠한 존재로 보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와서 어설프게 앉아 우유를 먹는, 다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여자. 순간 웃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셀카를 찍었다. 웃자. 더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도록, 카메라를 보고 환히 웃었다. 그러고 나니 빨리 제주에 도착하고 싶었다. 딜레이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비행기 출발했어?"
"아직. 비행기를 안 탄지 너무 오래야. 그래서 신발 벗고 탈 지경이야."
출발했냐는 지인들의 말에 나는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을 내비추었다. 지인은 신발 벗고 인증샷을 보내달라고 한 건 비밀이다. 사실 가만히만 있어도 알아서 제주도에 내려다 주겠지만, 너무 오랜만에 그것도 혼자 타는 비행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탑승장은 잘 왔는지, 내 좌석은 맞는지 확인하고 앉은 후에야 한숨 돌렸다.
그것도 잠시,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기도 전에 승무원 분이 비상구 좌석에 앉은 탑승객이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창가 자리에 앉은 내가 비상구를 열어야 했다. 복도 자리승객들은 문이 열리기 전까지 사람들이 문에 가지 않도록 막아줘야 한다는 거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게 맞겠지만, 혹여나 하는 생각에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조금 더 넓은 좌석에 앉으려던 것 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 폭만큼의 책임감까지 생겼다. 물론 이륙과 동시에 그 생각은 조금 흐릿해졌지만.
"비행기 이륙합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미세하게 붕 뜨는 느낌이 드는 걸 좋아한다. 정말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가벼이 어디론가 향하는 순간의 절정 같은 거랄까. 여행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면, 이 순간만큼은 제주에 착륙하기 직전의 클라이맥스와 같다. 결말로 치닫기 직전의 절정. 나는 드넓은 땅과 맞닿은 구름을 보고 나자 긴장을 풀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속도가 빨라지더니, 무사히, 이륙에 성공했다.
잠에 언제 들었는지, 눈을 감았다 뜨니 하늘 아래로 제주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드디어 제주에 도착했다! HELLO JEJU 글씨를 보니 정말 제주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푸릇하게 반기는 문구를 보니 어서 제주를 맘껏 느끼고 싶어졌다. 서둘러 수하물을 찾아 공항을 빠져 나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분명 점심 먹고 나왔는데, 제주에 오고 나니 저녁이었다. 하루가 긴장과 기다림의 연속이었지만, 막상 제주에 도착하고 나니 걱정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