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1년 12월 30일, 태국 방콕에 1세, 4세 아이들과 80kg 짐을 메고 남편도 없이 혼자 수완나폼 공항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국 토종 박사과정 워킹맘에서 갑자기 태국 주재원에 나와 마담(사모님)으로 호명되었습니다. 천국이라던 동남아 주재원 사모님 생활은 예상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코로나여서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한국 사회의 나를 정의하는 키워드, 가족, 직장인, 박사과정, 그리고 모든 연결에서 송두리째 뽑여 나와 낯선 곳에 던져진 막막함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방콕 생활은 저의 삶에서 가장 눈부신 성장을 했음을 자부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제 삶의 키워드들, 워킹맘, 일과 가정의 양립, 결혼과 육아, 안정적인 직장, 생산성, 박사, 성공, 자기 계발 등 많은 키워드를 한 걸음 멀리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고 태국 방콕의 새로운 키워드들, 국제학교, 빈부 격차, 계급, 제3세계, 다양성을 경험하며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며 성장해본 시기였습니다.
워낙 촌스러운 집순이라 여행, 맛집, 루프탑 바 같은 방콕의 멋과 맛은 모르지만 한국 사회에서 인생 키워드들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여 요동칠 때 자신의 정체성, 감정, 그리고 의미가 재정립 되는 과정은 잘 알 것 같같습니다. 혹시나 지금 인생이 변화를 맞이하고, 내 삶이 흔들리고 계신 분들이라면 그 과정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둘째가 갓 돌을 지나고 박사 과정으로 고군분투하던 2021년 중순이었다.
7월쯤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태국 주재원을 한 번 연습 삼아 써볼까? 하는 말에 "그래" 하면서 같이 면접 준비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7월 중순 덜컥 합격이 되었고 8월 중순 남편이 갑자기 태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혹시 붙을지도 모를 가능성에 대한 대책 없이 지원한 내 남편에 대한 원망이 들었다. 정말 피 토하면서 싸웠다 (카카오톡과 페톡으로)
나는 코로나와, 아이들과, 복직과 학업과 각종 수많은 산더미 같은 문제 속에 허우적 대느라 일단, 학기 종료인 12월 중순을 출국 날짜로 잡게 되었다
그렇게 2022년부터 태국 방콕에서 생활이 시작되었다.
2021년 6월까지만 해도 나의 인생에는 태국, 방콕이라는 삶이 계획에 없었다.
나는 박사과정, 젠더문제, 워킹맘, 돌봄, 사회적 경제를 생각하면서 9월 복직을 향해 어린이집부터 모든 삶을 차근차근 준비하던 육아휴직 맘이었다.
인생의 계획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렸을 때 오는 원망과 분노를 어느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았다.
"태국, 정말 좋겠다"라는 반응이 99.9% 의 사람들의 반응.
심지어 남편 주재원 따라가서 쉬다 오는 팔자 편한 여자로 부러움 반 시샘 반을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출국하는 전날까지도 각종 위염과 피부염을 앓을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나에게 있어 태국 방콕 생활은 말 그대로 두 아이와 방콕 하면서 24시간 전업주부 육아를 해야 하는 가장 끔찍하고 피하고 싶은 일들이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가 몰려왔다.
아이들은 엄마와 늘 같이 있는 시간이 행복하겠지만 나의 시간이 아예 없는 채 육아를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코로나 시국에 혼자 두 아이를 돌보며 절절히 깨달았다. 단 1시간이라도 돌봄을 위탁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엄마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절절히 깨달았다.
친정도, 이웃도, 어린이집도, 배우자도 의지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4세, 19개월 아이들과 코로나 시기에 방콕으로 건너가는 일은 너무나 청천벽력과 같은 피할 수 없는 감옥 같았다.
어찌어찌 나는 2022년 1월 26일 현재 태국에 건너온 지 28일 차가 되었다.
24시간 독박육아는 사실이지만, 내가 머릿속으로 한국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상상하던 범주와는 또 다른 새롭고 신선한 경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물론, 완벽한 것은 없지만 태국 방콕은 살기 좋은 도시 축에 속하는 것 같다.
태국은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여유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쉼표를 찍어가며 살아가는 삶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태국 땅에서 얻은 첫 번째 깨달음이다.
매사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내 삶이 너무 낭비 같았다는 생각도 든다.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될 수없다는 것,
어느 길로 내가 인도되고, 어느 곳에 던져 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동안 왜 그렇게 갈아 넣고 사는 가에 대해, 나는 성장할 때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답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하던 일을 멈추면 그것이 성장이 멈춘 것인가? 과연 성장은 그렇게 매일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들 두 명 등원을 준비하고 등원 후 출근하고 퇴근해서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책 읽어주고 밤 10시부터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고민하고 잠을 줄여가며 나를 고통스럽게 해야만 꼭 성장이었는가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비록 태국에서 대한민국 일과 공부에는 쉼표를 찍었지만 두 아이들의 전업 엄마와 주재원 배우자로서의 삶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내 인생을 설명하는 수많은 호칭들과 그 호칭을 작동시키는 키워드들이 있었다.
워킹 맘, 샐러던트 맘, 결혼과 육아, 경력 단절, 직장과 연봉, 계급, 부동산, 자아실현, 생산성, 성공 등
나는 외국인, 주재원 동반 가족이자 배우자가 되었고, 마담(사모님)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얻게 되었다.
낯선 태국 방콕에서, 다른 호칭과 다른 키워드들과 부딪치며 어떻게 내 정체성이 변화하는지, 나의 인생 키워드는 무엇이어야 할지 고민하며, 듣고, 보고,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