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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Jan 26. 2024

새해다짐

  빳빳했던 새 달력의 기세는 며칠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새날’과 ‘지난날’의 별다른 경계가 모호해진 도긴개긴에 머문 밋밋한 노년이니까요. 그래도 대나무의 마디 하나가 그어줄 환기에 기대어 새해다짐을 했습니다. 작년과 비등한 정도의 목표 일정만 유지하자고. 체력소모의 한계를 인정하고 큰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70대를 넘겼을 때, 주위의 우려와 달리 걱정스런 일은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에 없던 몸의 이상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60대와 다름을 확연히 질러주곤 했지요. 그럼에도 꿈적 않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을 이어가려 합니다. 공부 자체가 참 괜찮을 정도로 이 노년에 충만으로 채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해야 할 공부는 문사철(文史哲)이 으뜸이지요. 


  ‘월든’의 저자, 헨리 소로는 매일 새벽 월든 호수에 자신의 몸을 담갔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려는 자신의 신념을 그 같은 의례로서 행동에 옮긴 것이었지요. 좋은 의식은 깊게 잠든 의식을 일깨우는 법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의례를 꾸준히 수행하다 보면 높은 수준의 깨달음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요. 기도와 정진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주위의 보통 사람들 얼굴에서 그에 관한 단서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헨리 소로 행적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지금의 일과를 한 해 의례처럼 잇기로 했습니다. 꾸준함에 맞서서 이길 장사는 없으니까요. 세상사 영원한 게 없으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란 이치에 머뭅니다. 내 스스로 쌓아갈 ‘하루’가 어떤 외풍에도 쓰러지지 않게 단단한 기둥을 세우는 일. 그건 신성한 의식과도 같습니다. 내 자신에게 부여된 진지한 의례이자 신선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확고하게 세운 신념은 위안과 용기를 주면서 내게 행동의 변화를 이끌 확신으로 안겨올 것이라고요. 심리학자 아들러가 “일반적으로 인생의 의미는 없다.” 그리고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듯이. 


  오늘 접한 책의 한 소절과 쓰인 나의 글이 서로 공명을 일으키기를. 한 소망의 의례가 찰나의 순간에서 영속적인 점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살면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절묘한 인연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절로 굴러들어온 인연이란 없습니다. 인연으로 맺어지는 과정을 인복이란 말로 통칭해 서로의 운명을 거론하지요. 잇게 되고 펼쳐지는 인연이 살아있는 내 운명이 될지언정, 그 운명을 다스리는 건 ‘나’라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요즘 하루하루도 이와 같이 글로 직접 만날 수 있는 절묘한, 스승 같은 인연을 공부를 통해 만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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