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미영 Jun 14. 2024

탁월했던 순간을 피워낸 생일꽃

  노년엔 뭐든 줄이며 사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닌 물질을 비우고 언저리의 마음을 덜어내는 일이지요. 비우고 덜어내야 머지않아 가벼워진 몸으로 떠날 수 있지 않겠어요. 나아가 주변사람들에게 구(求)하려는 마음마저 접어놓으니 되레 편안해 지더라고요. 기댈 사람 있으되 그 기대치에 못 미칠 때, 실망해서 마음 부대낀 일은 누구나 있으리라 봅니다. 몇 해 전부터 이 같은 감정을 부여잡고 조용히 치루는 나만의 행사를 즐기기로 했습니다. 가장 으뜸은 매해 맞는 탄생일을 자축하는 일이지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몸이나, 탄생 축하연의 자리만큼은 소박하나 적극적인 개입이 없을 수 없겠죠. 이 몸은 무엇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니까요. 의미 있는 일을 만들거나 나 자신에게 뜻깊은 선물을 안깁니다. 며칠 전이 바로 생일날이었지요. 


  예전엔 ‘생일’이 외부로 드러난 일은 공적인 일이 아니면 드문 현상이었죠. 요즘은 ‘톡 알림’으로 생일이 노출되는 스마트시대를 거치고 있어요. 조용히 치르고자 했으나 당사자 의사와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생일이 알려지는 일. ‘생일’도 가정사에 머물지 않고 상업화에 힘입어 시끌벅적한 추세로 돌입했습니다. 촘촘히 얽혀 잠식된 자본시장 아래 내 신상정보가 공개돼 내걸리는 일로서. 게다가 한 개인의 사회적 역량이 투시되 듯 톡 메시지가 얼마 달렸는지 그 여부에 따라 당사자의 영향력을 알리는 결과가 되기도 하죠. 가상의 공간에 불과하다며 의연한 척한다 해도 은퇴자나 소외된 이웃에게 미치는 심리적 파급은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요 노년에는 이 같은 사회적 속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거든요. 그들로부터 나에 대한 관심이 잊힌들 어떻습니까. 있는 사람마저 정리해가는 이 노년기인데. 


  생일축하의 톡 몇 통이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딸 같은 아이로부터 축하의 전화도 받았지요. 그런데요 반기는 마음 보다 웬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감도는 거에요. 나는 한때 ‘홀로’라는 조건 하에서 생일을 챙기는 건 사치라는 생각을 지닌 적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잊지 않고 선물을 건네거나 연락을 취하는 지인들이 더러 있어, 내 안의 사람이 그 관심들을 거부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참에 생각의 전환을 꾀하기로 했지요. 상황에 따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보기로. 그러면서 따라온 생각이 또 있었죠. 연락해 온 이가 진정한 내 사람들로 느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하고 다투는 내 안의 성숙치 못한 생각을요. 그 같은 생각에 꺽이지 않도록 바짝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알던 알지 못했던 그들이 내민 관심은 한순간에 포착된 찰나일 뿐 영원의 시간으로 착각해서는 안될 테니 그냥 지나쳐무심해지라고. ‘숫타니파타’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마음에 적시해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엉뚱한 발상을 냈습니다. 다가온 생일, 나이 수만큼 생일축하금을 한 시민단체에 후원하기로. 71세부터 시작된 일이 77세인 올해도 어김없었습니다. 그렇게 모여 80세에 이르면 천 만 원이란 목돈이 될 테니까요. 이를 계기로 해당 시민단체에 ‘탄생을 공유하는 공간, 후원자클럽’을 제안했습니다. 내 뜻과 상반된 전시적이고 의례적인 생일축하 보다 알토란같은 의미가 담긴 선물을 나 자신부터 솔선해보는 게 낫다 싶었죠. 반응은 뜨거웠어요. 잘 살아준 내게 이 같은 행사는 ‘설렘 있는 생일선물’로서 매해 맞게 될 뿌듯한 날이 되겠지요. 애초 원했던 바 아니었으나 이로써 단체가 내 생일을 자연스레 기억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일이나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바깥세상으로 시야를 돌린 일은 내게 탁월한 선택이 되었고요. 그 순간을 피워낸 내 생일이 꽃처럼 느껴졌습니다. 소박한 나의 실천이 나이 수만큼 쭉쭉 차오른다면 벅찬 감동에 휩싸일 테고요. 스치는 사소한 감정 같은 것에 걸리지 않아 마음 다칠 일도 없겠다 싶습니다. 이처럼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감정을 일궈 소모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요. 이처럼 에고를 내려놓는 날이 내 죽는 날까지 이어지리라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 안의 우주를 만날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