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할 수도 두렵기조차 한 AI시대입니다. 노인의 입장이라고 봐주지도 않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능화된 상품이 우리네 일상을 점령해 왔습니다. 기성제품 보다 첨가된 기능으로 또는 튀는 모델로 서로 다투며 생산해 내는 일이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본질일 테니까요. 상위 경제포식자인 그들은 갖은 유혹의 상술을 동원해 먹이사슬을 사정권 안에 몰아넣습니다. 길들이기 위한 양몰이처럼. “지금 바로 AI시대에 뒤처지지 않을 당신이 되려면...” “궂은일에서 벗어나 이젠 우아한 삶을 누리세요.”등등의 카피로서. 내 손에서 발효되어 익어갈 기대여명을 묵살하더니 손절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 늙은이는 이별해야 할 정든 것과 서툰 새 것을 번갈아가며 맞이하는 여럿 중압감으로 늘 버겁습니다. 미리 짜 맞춤한 제품의 수명이 4•5년으로 맞춰져 출품된 지도 여러 해. 향후 주기마다 반복적으로 받아들일 상황에 지레 힘이 빠집니다.
나름 위의 상황에 대처해 왔습니다만 앞으로는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어요.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이 들었음에도 웬만한 일은 따라잡아 왔지요. 그러나 80대 이후에는 자신할 일이 아닐 수도... 아니 그런 욕구가 과연 필요로 할까 하고 생각도 해봅니다. 어쩜 이번 경험이 나를 지탱할 심리적 마지노선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음엔 자신감을 내세워 남겨진 나의 미래를 이런 일에 담보로 삼을 일은 없을 테니까요. 차라리 그들이 말하는 ‘뒤처진 존재’로 남으렵니다. 믿는 구석이 따로 있거든요. 고령의 나이, 비밀의 문에 들어서면 잠재된 정신세계가 내 마지막의 생존력을 떠받들어 줄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보십시오. 노인의 다수는 지금처럼 문명의 이기에 손을 덜 탄 배경을 살아왔습니다. 또한 가내수작업으로 단련된 손아귀의 힘도 자생적으로 키워왔고요. 그 같은 능력은 여느 생존방식과도 비길 수 있을까요. 그러니 젊은이들 기준대로 늙은이들을 비하하려거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등의 섣부른 생각은 말아주세요. 지금껏 살린 내 몸에서 자연 발화돼 체화된 부분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 나이에 이르러야 제대로 그 실체를 알게 될 부분이라고요.
휙휙 돌고 도는 회전문처럼 일정한 생태적 시간을 걸어온 지금의 고령세대. 그때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채 멋모르고 들어선 스마트시대를 기웃거리며 익혀가는 중입니다. 두 시대에 걸친 그들은 그렇지 못한 젊은 세대 보다 몇 겹의 문화보유자가 되었어요. 이런 점에서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요. 아날로그시대에 머물러 공동체와 잘 버무려진 정서적 안정 속에 생활방식을 서로 나누며 성장해 왔습니다. 요즘처럼 조급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은 사회분위기였죠. 당시 감각의 흐름이나 욕구의 방향은 지금의 가치척도와는 사뭇 달랐고요. 근래 들어서 빠르게 번지는 AI의 충격이야말로 감당할 나의 용량을 초과해 버릴 정도입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고 있지만 기계치라서 컴퓨터 내장의 연결고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툭하면 전문용어가 튀어나와 설명을 듣는다 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전자우편을 주고받고 유튜브를 보고 전자상거래와 자료를 검색하는 등의 수준이 컴퓨터이용의 전부입니다. 이처럼 전자기기의 환경이 자꾸 바뀌는 현상은 휴대폰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생성해낸 이런 불안감은 나를 포함해 젊은이들에게도 옥죄려 들 것입니다.
10년 째 사용 중인 노트북 화면상단에 크롬(Chrome)의 경고장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렸습니다. 윈도우를 업그레이드하라는 명령이었죠.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을 성싶어 미루고 미뤄왔습니다. 실은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미적댄 점도 있었죠. 도움 받을 젊은 인력이 바로 곁에 있지 않은 이유는 더 했어요. 그랬던 어느 날 덜컥 겁이 나더군요. 더 이상 미루다 예고치 않은 실행으로 곤두박질 칠 수 있겠다 싶었지요. 서둘러 해당 서비스센터에 먼저 문의했습니다. 상담사는 ‘윈도우’와 ‘아래한글’의 장착비용이라면 돈을 보태서 신형으로 구매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권유하더군요. 다음 날 모 전자샵과 하이마트샵 두 곳을 방문해서 새 제품을 둘러봤습니다. 알선 받은 제품은 160만 원대로서 돈을 보태는 수준이 아니었죠. 집에 돌아와서는 지인들을 총동원해 자문을 구했습니다. 한 사람은 사용 중인 이 노트북의 생명이 긴 제품이니 업그레이드만 받아라. 다른 이는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오가며 고생하느니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게 낫겠다 등등. 고심하다 결국 업그레드로 방향을 굳혔습니다. 가까운 서비스센터에 부지런히 서둘러 1등으로 도착했지요. 해당 기사는 실행은 해보겠으나 안 될 수도 있음을 알렸고, 노트북의 운명을 그에게 맡긴 채 집으로 돌아왔지요. 장장 4시간이나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점심을 끝낼 무렵, 연락이 왔습니다. 무사히 작업을 마쳤다는 전갈을. 안도하는 마음이었고 너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성사되지 않았다면 나는 160만원을 고스란히 치러야 할 판국이었죠. 공교롭게도 올 들어 목돈 들어갈 일이 연속되었거든요. 사용하지 않게 된 그 돈은 따로 번 것인 양 뿌듯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노인들에게 지출을 줄이는 것이 돈을 버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입니다. 내 발품을 많이 팔았으니 얻게 된 횡재라 하면서. 오후에 그 기술자에게 감사의 뜻으로 케이크를 사들고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실행하는데 또 낯선 일이 생기지 뭡니까. 화면이 바뀌고 새로 달리 설정한 방식의 낯섦. 그러면서 또 이상한 화면의 창이 자주 뜨는 겁니다. 가슴이 콩닥거리며 해당 서비스센터에 문의하는데 상담사의 설명을 못 알아듣게더라고요. 젊은 상담사에게 미안했습니다. 10년이 다 된 내 노트북이 겨우 살아남았지만 이젠 저장소가 자료로 꽉 차 공간을 확보해 줘야 할 일이 또 생긴 것이죠. 이런 젠장, 창조적 일로매진을 해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인데 이런 일로 갉아 먹히는 상황을 맞게 될 줄이야. 노트북 노화 뒤처리에 도움 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 과제의 연속입니다.
편리함을 빗대 몽매한 인간으로 길들일지 모를 새 문명의 이기, AI. 이 편리성이 언젠가는 우리를 인간성 소멸의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을까요. 지속적인 새 기능을 뽐내며 교묘하게 학습을 지속시키면서 자주적 인간본래의 능력을 마비시키지 않을는지요. 향후 그들에게 예속된 노예로서 살아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상에서 도태될 ‘너 자신’이 될 거라는 위협적인 틀을 우리에게 씌워왔기 때문이지요. 문명 이기의 역습이 이렇듯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중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사람들이 가상현실 속에 머물고 새 기기 학습에 열중하느라 소중한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소홀해 하지 않나요. 그를 쫒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머리는 뒤죽박죽 얽혀 복잡한 상황으로 치달을 테니. 지금 이 문명이 대세인줄 알겠는데 선택적 경계태세로 임해 우리의 두뇌가 무분별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나서야겠죠. 격동의 현장에서 느린 속도로 좌우 살피며 살아왔던 아날로그적 옛 향수로 급선회하려는 지금의 내 마음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까요. 본래 유지했던 자신의 모습이 훼손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데 소홀해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