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리리 Aug 22. 2022

늦었다고 느꼈을 때가 가장 빠를 때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다가온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딱 한 번의 기회

안 되면 되게 하라?
안 되면 될 때까지!

무모한 뚝심인가, 열정적인 도전인가

‘안 되면 될 때까지?’

  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말인가. 안 되면 그만둘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을 텐데 될 때까지 하라니. 그러나 군생활 때 배운 이 문장은 나의 무모한 도전에 박차를 가하는 힘이 되었다.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기간제 교사였지만 나름 안정적이고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6년째 잔잔한 물결 같았던 나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남승무원이라는 직업이 큰 파도를 일으켰다. 그러나 승무원이라는 목표가 있다는 것을 주변에 알렸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나이가 너무 많지 않아?”

 위기를 기회로,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

  위기는 처음부터 찾아왔다. 객실 승무원으로 지원할 때 나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신입 승무원 중에 30대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른다. 있기는 하지만 한 두 명이 전부라는 사실은 나를 그 한 두 명이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좌절로 이끌었다. 내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수없이 고민했다.

‘내가 어린 경쟁자들보다 더 나은 건 뭘까… 밥으로 치면 수백 그릇을 더 먹었을 텐데…

그만큼 난 더 오래 살았지…? 그럼 난 더 많은 경험을 했겠지…?’

  내가 더 경험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릎을 탁 쳤다. 늦은 시작의 의미가 밥만 더 많이 먹은 게 아니라는 게 감사했고 그 이후로 내가 했던 다양하고도 가치 있는 경험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31년의 삶을 되돌아보니 정말 감사 투성이었다. 도전적이고 활발한 성격 덕에 다양한 경험이 내 삶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해외 고등학교에서 3년을 지내며 국제적 감각과 언어, 나와 다른 점을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을 배울 수 있었고, 해병대 군생활을 통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며,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3박 4일 자전거 국토종주를 통해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문장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교직에 있으며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섬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조건 없는 섬김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경험만으로는 부족했다.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다윗이 단지 무모하고 당찬 도전만으로 2m 30cm가 훌쩍 넘는 키를 가진 괴물 같은 골리앗을 죽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다윗이 믿었단 하나님의 뒷받침이 있었겠지만, 다윗은 당대 최고의 돌팔매질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 실력을 가지기 위해 수없이 연습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나 역시 경험이라는 무기가 뒷받침됐으나 이를 통해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면접 실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면접도 대화이고 면접관과 대화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여 적어보고 말해보고 이를 반복했으며 책으로 만들어 매일 독서했다. 아직 서류 합격도 하지 않았지만 4차 임원 면접을 대비해 임원 분들의 얼굴을 프린트해 사진을 세워놓고 연습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실력 있는 다윗이 되는 듯했다.

마치 날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유일한 항공사

  늦깎이 신입 사원 준비생(?)인 것도 서러운 상황에서 ‘코로나’라는 새로운 골리앗이 등장했다. 너무나 강력한 녀석인지 이 녀석을 해치워줄 다윗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고통이 시달렸고 항공업은 더했다. 모든 항공사 채용은 깜깜무소식이었고 잘 다니던 승무원도 해고되는 상황이었으며 추가적인 채용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찾아온다고 했던가! 한 항공사만이 신입 사원 채용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난 그 회사의 모든 것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유일하게 그 항공사만이 채용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채용 절차는 총 4번의 단계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본 가장 많은 단계가 3차였는데 이번에는 4차 면접까지 있다고? 높은 경쟁률은 불 보듯 뻔했지만 철저히 준비한 만큼 석이 아닌 옥이 되기 위해 비장한 마음으로 지원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자필 자소서와 근무하고 있던 학교 체육관에서 열심히 찍은 자기소개 영상으로 1차 합격을 이뤄냈고, 2차 영상 면접 역시 학교 체육관에서 합격 결과를 얻어냈다. 이제 3차, 4차만 남은 상황. 3차 토론 면접이 있던 이른 아침, 메이크업과 면접에 맞는 헤어를 위해 전문샵을 방문하여 꽃단장을 했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 전신 거울을 보던 중, 바지의 줄이 잘못 잡혀있던 게 아닌가? 면접 시간은 다가오고, 이른 아침이라 오픈한 세탁소는 없는 상황에서 가장 가까운 세탁소를 찾았다. 사장님께서 분주하게 오픈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정장 바지 줄을 잡으려고 하는데 혹시 지금 가능한가요?”

“지금 아직 청소 중이라 힘드네요”

어머니와 같은 연배 정도 되신 사장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면접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그때, 난 우리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아들처럼 다시 한번 여쭈었다.

“어머니, 힘 하면 저거든요! 제가 청소 빨리 도와드릴 테니 혹시 바지 줄만 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곧 면접 시간인데 큰일이네요”

“아이고, 그래요? 그럼 청소는 됐고 얼른 바지 벗어서 주세요”

사장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창피함과 부끄러움은 잠시 접어두고 바로 벗었다. 다행히(?) 사장님께서 잠시 동안 입을 옷을 주셔서 갈아입고 다림질이 끝날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아드님이 나와 동년배였고, 아드님도 취업이 많이 힘들었는데 아드님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셨다. 여기에 덧붙여 내가 부모 세대에게 예의 바르고 싹싹하게 하는 행동 덕분에 꼭 합격할 것이라고 응원까지 해주셨다.

  친절하신 사장님 덕분에 깔끔한 복장과 함께 면접장에 도착했다. 3차 토론 면접이 무사히 끝나고 개인 질문이 이어졌다. 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 질문을 받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00 씨는 부모님 세대 손님에게 어떻게 응대하실 건가요?”

마치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소개해보라는 질문 같았다. 주저함 없이 오늘 아침의 경험과 함께 내 가치관을 잘 말씀드렸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4차 임원 면접 역시 감사하게도 합격하게 되었다. 그렇게 31살의 신입 승무원이 된 것이다.

  우연한 일들로 치부하기에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연하게 만난 사람은 우연히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우연이 아니라 믿기에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 만남에 감사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제나 감사함으로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수저론’에 의하면 난 참 가진 게 없었다. 돈, 명예, 학벌은 물론이고 부모님 역시 물려줄 자산이 없었다. ‘인생의 주인은 나야!’라고 외치지만 모든 주권을 가지고 있는 주인인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인 부모, 성별, 시대, 성격, 키, 외모 등을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막막한 상황에서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감사’였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해야 한다는 말을 참 좋아한다. 난 교만 덩어리라서 밑바닥까지 고생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얼마나 감사 투성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룬 이 합격의 감사함과 초심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고 앞으로의 인생 역시도 감사함이 넘치기를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