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병아리 크루
새로운 업무
새로 생긴 항공사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다양한 서비스 업무를 시도하면서 여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했다. 세 번째 비행만에 새로운 듀티(업무)를 하게 되었다. 동기들과 선배들이 이미 많이 했던 업무라서 노하우와 필승 노트(?)들을 가지고 있던 터라 두려움은 없었지만, 판매 업무라 그런지 숫자에 약한 난 걱정이 앞섰다. 정말 배려 넘치시는 사무장님 덕분에 미리 내가 할 업무를 알게 되어 충분히 숙지를 해갔다.
그러나 역시 연습과 실전은 다른 법. 우리집 문을 닫고 띠디딕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서서 문이 닫혔는지 확인하는 이 불완전한 완벽주의(?) 덕분에 판매금을 세고 또 세고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나 자신을 못 믿는건지, 완벽한건지…나도 헷갈렸다. 열심히 준비해간 노트들을 참고하며 나름 성공적인 첫 업무였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기계 오류로 인해서 계산이 맞지 않았다. 하하하.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내 동기들과 선배님들이 도와주셔서 큰 문제 없이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기내에서 내릴 때 그 찝찝함이란…
역시나 모든 일은 사람과의 관계
고작 세 번째 비행이지만 느낀 게 있다면, 역시나 관계다.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관계’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상황마다 다른 답이 올 수 있겠지만, 이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 비행이었다.
당신의 주변 인간 관계는 어떠한가? 어떤 이를 만나면 만족감을 얻는가? 어떤 이를 만나면, 아니 그 사람은 만나고 싶지도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이들에게 어떠한 사람인가? 사람 인(人)이 서로 기대어 있으니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진부한 말은 너무나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를 정말 내 인생에 대입해본다면 내가 과연 기댈 사람이 있는가 혹은 나에게 기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고민했을 때 번뜩 생각이 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격상 난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보다는 나에게 기댈 수 있게 만드는게 편하고 뿌듯하고 오히려 누군가가 나에게 기댐으로써 내가 힘을 얻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동생들과 후배들이 많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도와주고,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 불 보듯 뻔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생각하는 것이 참 감사하다.
그러나 이번 비행은 참 달랐다. 처음 맡아본 업무 덕분에 나의 ‘정신없음’이 너무나도 티가 났나보다. 사무장님부터 동기들까지 모두들 나를 도와주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내 옆을 지나칠 때마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하던 8명의 승무원들이 천사 같았다. 6시간의 비행에서 자신들의 업무하기에도 바쁜 그 상황 가운데 도움을 청해주던 분들이 아직도 감사하고 감동이다. 마치 내가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선호했다면, 이번에는 도움을 받고 살아도 된다는 의미 같았다.
첫 입사 교육 때였다. 회사 임원분들이 돌아가면서 1시간씩 간단한 회사 소개와 업무 소개를 했다. 그분들 모두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여러분, 앞으로 만날 사람들과의 관계에 신경 쓰십시오.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른들이 해주시는 조언들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부모님이 그랬고, 많은 어른들이 그랬듯이 그분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옳았다. 그래서 ‘나이’와 ‘경험’을 초월한 지혜를 구하는 것이 내 기도 제목 중 하나이다.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임원분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자연스럽게 다가왔었다. 그때부터 회사와, 동기들과, 같이 비행을 가는 크루들을 위한 기도가 시작됐으니 말이다. 역시나 모든 일은 사람과의 관계인가보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시편 17편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