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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myam Jul 15. 2022

육아라는 '퇴사 없는 삶'에 대하여

나는 아이가 4살이 되던 해 봄, 1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치열하게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늘 육아와 일의 공존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번아웃’이 오면서 그 고민의 종지부를 과감하게 찍어버린 것이다. 당시 나는 ‘퇴사’를 앞두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 가지 일도 동시에 해왔는데 한 가지만 하면 된다니!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더 이상 회사 일을 신경쓰지 않고 내 아이에게만 집중하여 육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남들이 다 일하는 평일 오후에 내 시간을 잠시나마 갖을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행복할지 생각만해도 설레었다. 바쁜 일상에 치여 미뤄 두었던 일들도 조금씩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새로운 인생 2막이 시작된다는 기대감에 잔뜩 들 떠 있었다. 앞으로 닥칠 어둡고 험난한 길을 보지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업맘’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이런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일 하면서 ‘주말 육아’만 해오던 내가 아이를 온전하게 책임지기 시작하면서 육아는 나에게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이 아이가 내가 낳은 그 아이가 맞는 것인가?’ 를 늘 되물으며 ‘육아’라는 광활한 우주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한 아이와 살아남기 위해 매일 전쟁을 치뤄야했다.


퇴사와 동시에 나에게 일터는 ‘집’이 되었고, 주요 업무는 ‘육아’가 되었다. 나는 마치 아이의 A to Z을 책임지는 매니저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초보 엄마인 나는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처럼 모든것이 어설펐고 혼란스러웠다. 회사는 처음 들어가면 신입사원을 위한 교육을 해주지만, 육아에는 초보 엄마를 위한 교육 따위는 없다. 그냥 바로 실전인 것이다. 회사에는 매뉴얼이 있지만 육아에는 매뉴얼이 없다. 매뉴얼이 있다고 해도 그 메뉴얼이 내 아이에게 딱 맞지 않을 경우가 더 많다. 회사에는 모르면 알려주는 선배들이 있지만 육아는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도, 정답을 알 고 있는 사람도 없다. 애초에 육아에 정답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육아의 신이라 불리는 오은영 선생님이 알려주신다해도 결국 내 아이에 대한 정답은 엄마인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 퇴사를 앞두고 꿈꿨던 달콤한(?) 미래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치열한 삶이 시작되었고, 아이도 나도 서로에게 호흡을 맞추며 낯설기만 했던 일상을 익숙하고 편안하게 만들기까지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회사는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이라는 것이 있지만 육아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풀가동이다. 물론 ‘육아퇴근’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곤 하지만 피곤에 지쳐 아이와 함께 꿈나라로 같이 퇴근해버리기 일쑤고, 육퇴 후 밀린 일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 다가오곤 한다. 잠도 편히 잘 수없다. 아이가 소변이 마렵다고 하면 새벽 화장실 동행은 물론이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 잠결에 비틀거리며 물 셔틀을 해야 한다. 무서운 꿈이라도 꾼 날이면 옆에 누워 다시 잠들때까지 엉덩이를 토닥거려줘야 한다. ‘퇴근’이 있긴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아이가 ‘엄마’를 부르면 ‘출근’이 시작되는 삶인 것이다.


무엇보다 회사 다닐 때는 퇴근이라는 것을 하면 ‘회사’라는 공간에서 잠시 빠져나와 나만의 공간인 ‘집’에서 쉬면서 충전할 수 있었지만 ‘육아’는 출근해도 집, 퇴근해도 집이다. 회사는 일주일에 5일만 나가면 ‘주말’이 있지만 육아는 ‘주말’이 없다. 오히려 아이가 유치원을 안가는 ‘주말’이 더 빡세다. 퇴사를 하고 한 가지 좋은 점은 ‘월요병’이 사라졌다는 것일까? 회사는 아플 때는 병가를 내고 쉴 수 있지만 육아는 내가 아무리 아파도 아이를 챙겨야만 한다.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는 노릇이다. 회사는 지치고 힘들 때 잠시 ‘휴가’를 내고 쉴 수 있지만 ‘육아’는 휴가를 낼 수가 없다. 회사는 오래 다닐 수록 연차가 쌓이고 월급이 오르지만 육아는 연차도, 월급도 없는 ‘무보수 노동’이다. 회사에서는 실수를 하거나 내 업무에 대한 성과가 안 좋을 때면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탓’할 수 있지만 육아에서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탓’을 할 수가 없다. 온전한 나의 책임이고, 그 결과를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상사나 동료와 갈등이 있을 때면 욕하고 툴툴 풀어버릴 수 있지만 육아에서는 아이와 갈등이 있을 때면 늘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한다.


회사에서는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도 어느정도 연차가 쌓이면 익숙해지고 쉬워지지만 육아는 늘 처음 해보는 새로운 일을 하는 기분이다. 이제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늘 더 어렵고 낯선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회사에서는 성과가 좋으면 인정 받는다. 나의 성과를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하지만 육아에서는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노력을 인정 받기란 더 어렵다. 오히려 내가 힘들게 애쓴 노력들과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다. 회사는 내가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을 제시해주지만 육아는 내가 과연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늘 불확신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육아’에서는 ‘퇴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입사는 마음대로 했을지언정 퇴사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번아웃’이 와도 버텨야만 한다. 엄마이기 때문에. 회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쿨하게 사직서를 내던질 수 있지만 육아에서는 ‘사직서’라는 것을 낼 수가 없다. 내 아이가 나랑 정말 안 맞는다고, 육아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내 마음대로 그만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새 일흔을 훌쩍 넘기신 우리 엄마도 아직도 퇴사를 하지 못하고 계시니 말이다. 아직도 내가 ‘엄마’하고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 손주를 봐주시고, 여전히 뭐 먹고 사는지 걱정하며 밑반찬을 해서 나르시며 456개월째 딸 육아를 하고 계신 우리 엄마. 그래도 엄마는 말씀 하신다. 나를 낳은 것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이렇게 매일이 어렵고 힘들고 혼란스러운 ‘육아’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아이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이제서야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와 매일 울고 웃으며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막연히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이런 것일까 문득 깨닫기도 하고,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매일 아이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이가 없었다면 절대 느껴보지 못했을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름의 중심을 잡는 연습을 하며 ‘내가 이제서야 진짜 인생을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퇴사 없는 삶’, 아니 ‘퇴사 할 수 없는 삶’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끔찍하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육아’라는 퇴사 없는 삶은 나의 든든한 ‘평생직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직업. 섣불리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인생에서 한번쯤 가져볼 만한 ‘멋진 직업’임은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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