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무심코 던진 이 말 한마디가 유난히 아프게 다가온 이유에 대하여
퇴사 하기 전까지 아이의 주양육을 외할머니가 맡아주셨기에 '주말육아'만 해오던 나에게 진짜 '엄마의 삶'은 퇴사와 함께 찾아왔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와 설레임은 잠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게 어설프기만 했던 초보 엄마는 시행착오도 참 많이 겪었더랬다. 그렇게 새롭고 낯선 세상에 온듯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기만 했던 생활들이 이제는 나른한 일상이 되어 가고 있는 요즘. 최근 나에게 유난히 아프게 다가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아이의 말 한마디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최근 아이가 유치원에서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 미래 나의 꿈 등에 대해 배우면서 '직업'에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이다 보니 하루에 수십번씩 꿈이 바뀌던 어느 날, 샤워를 하면서 아이가 나에게 직업을 물었다. 퇴사 후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 공부를 하며 경험을 쌓고는 있었지만 선뜻 당당하게 '엄마 직업은 000야!' 라고 말하기는 부끄러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아이가 재촉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직업은 뭐야?"
"..."
"엄마! 엄마는 직업이 뭐냐고~~"
"엄마 직업?... 음... 엄마 직업은 '엄마'지!"
"엥? 엄마가 무슨 직업이야~?"
"엄마도 직업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가족을 위해서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도 만들어주고...!!! "
"그게 뭐야~~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잖아! 그런거 말고 더 멋진 직업 말이야~"
"...!!!"
아이는 무심코 던진 말이었을텐데 아이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속에 화살로 날아와 박혀버리고 있었다. 엄마도 나름 업계에서 알아주는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더 구차해지고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하면 할 수록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가며 너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나의 노력과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다니!!!' 점점 더 억울하고 속상해졌다. 심지어 나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마져 들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나이에 아이가 부모의 희생과 노력을 헤어린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또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존재 자체가 행복이거늘...하지만 이때 나는 이성적 사고와 판단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분명 엄마의 직업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와 유치하게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엄마 다시 멋진 직업 갖을거야!
그러면 지금처럼 너랑 계속 함께 있을 수 없어.
넌 다시 할머니댁으로 가서 할머니랑 살아야해"
아... 이런 유치한 말을...!!!
말을 하면서도 알았다. 이 말만은 입 밖으로 내 뱉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이성의 끈을 놓은 나는 결국 이 말을 아이에게 해버리고 만 것이다. 아차! 싶었던 순간 몇 초 간의 정적이 흘렀고 아이는 "엄마 미워"라는 말을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러고는 "어떻게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냐"고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달려가서 안아주고 달래주었을텐데 그 당시에는 나에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도 식탁에 앉아 같이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가 방문 밑으로 종이를 한장 쓱- 내밀었다.
편지를 읽으며 그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억울하고 당황스러웠을까?
작은 아이가 방안에서 혼자 마음을 정리하며 이 편지를 써내려 갔을 걸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아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엄마구나! 오히려 아이가 나를 감싸고 위로를 하고 있다니...
편지를 읽자마다 아이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안고 펑펑 울었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는데 마음이 속상해지니까
엄마도 모르게 너에게 상처되는 말들을 해버린 것 같아"
"엄마 나도 미안해... 엄마를 화나고 슬프게 하려고 말한 건 아니었어"
한참을 울고 둘다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을 때
진짜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아이가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그렇기에 회사에 다니는 것 보다 지금 처럼 너의 곁에 머물며
너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모든 순간에 너의 곁에 머물며 너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일을 선택한거라고.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사실 아이를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말도 옳지 않다.
오히려 지금 내가 아이로부터 얻는 기쁨과 행복이 더 크니 말이다.
그날 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조용히 생각해봤다.
아이가 무심코 던진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왜그렇게 유난히 아프게 다가 왔던 것일까...
아마도 아무도 내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세상의 구석으로 밀려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엄마'라는 직업의 가치가 회사에서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에 뭔가 드러내고 인정받기란 참 힘든 것 같다. 하지만 그 가치는 내가 알고 인정해주면 된다. 오늘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 너 덕분에 '엄마'라는 인생에서 가장 멋진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말해줘야겠다 생각하며 이 에피소드에 대한 기록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