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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Dec 02. 2022

읽고 쓰고 토론하다 죽을 뻔한 이야기(1)

공동체로 책 읽기- 심리학 책 읽는 법

읽고 쓰고 토론하다 죽을 뻔한 이야기


나는 온라인 석사과정으로 상담심리를 공부했다. 캐나다에 있는 대학이다. 집을 팔고 유학을 갈 만한 베짱이 없었던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처음엔 이런 식의 공부가 폼 나지도 않고 당당하지 못하다 느꼈다. 그러나 내가 졸업할 무렵에는, 코로나의 습격에 다른 대학들이 황급히 온라인 수업으로 바꾸는 모습을 덤덤하게 여유롭게 지켜보기도 했다.

대학원 시절의 독서와 글쓰기는 무지막지했다. 학기 중 읽어야 할 책 이외에 매주 읽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양의 문건들이 있었고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토론시간이 있었다. 온라인 대학원의 토론시간은 특이했다. 토론 주제가 학과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면 내 생각을 글로 써서 올려야 했다. 그리고 같은 반 친구들이 올린 글에 답글도 달아야 한다. 현장에서 주고받는 대화만큼의 생동감은 없었으나 문자로 생각을 주고받았을 때 내 마음은 적지 않게 출렁였다. 나의 글에 동의하는 답글에도, 반대하는 답글에도 마음을 진정시키려 거실을 한참 동안 서성거렸다. 토론과 대화의 힘은 강력했다.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답글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내 몸을 끌어당겨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게 했다.




그래도 토론시간 글쓰기는 죽을 만큼의 부담은 아니었다. 관건은 리포트였다. 심리상담 이론에 관한 내 생각을 쓰려면 반드시 관련 책과 논문을 찾아 내 생각의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인간관계가 조화로울 때 행복하다’라는 것이 내 생각이라면, 그 내용을 어느 학자가 주장했으며 관련된 주제로 실험과 조사를 한 논문을 찾아 근거를 밝혀야 한다. 그래서 문장 하나를 쓰려고 해도 운이 없으면 하루 종일 관련 자료를 찾아 헤맸다. 글을 쓰기 위해 적극적으로 하는 독서인 셈이다. 리포트 마감 하루 전은 마지막으로 문장을 다듬고, 틀린 문법을 고치고 참고문헌 목록을 정리하느라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등이 아팠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글을 써 내려갔다. 15페이지 정도 되는 글을 영문으로 작성하고 나면 마라톤을 한 것 같았다. 표절에 너그러운 한국 대학에 내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부모로서 윤리적인 행동일까 고민된다.  

 혹독한 읽기와 쓰기 과정이었다. 처음엔 영작 실력이 아무래도 원어민만큼 되지 않아서 힘들다 생각했으나 계속하다 보니 그냥 과정 자체가 힘들었다. 같은 반이었던 캐나다 친구들도 힘들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리포트 마감날이 다가와 정신없이 읽고 쓰던 나를 보던 내 아들이 한참 뒤에 한 말이 생각난다. ‘아빠가 저러다 죽을 것 같았어요...’ 정말 목숨 걸고 공부를 했나 보다. 

글쓰기 숙제와 토론은 매우 정교하게 짜인 평가기준으로 채점되고 교수자의 소상한 피드백 편지와 함께 돌아왔다. 비록 내가 바라는 점수가 아니더라도 겸허한 마음으로 평가결과에 승복했다. 






공부는 함께 하는 것

대학원의 모든 시험과 리포트는 절대평가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어떻게든 서로 돕고 정보를 나누고 상대가 하나라도 더 득점하도록 도왔다. 다들 직장 일에 가사에 쫓겨가며 공부하는 처지여서 더 끈끈했는지도 모른다. 저 멀리 태평양 반대쪽에서 공부하는 동양인 학생인 나에게 특별히 친절하고 따뜻했다. 온라인 과정이었지만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수업도 세 번이나 있었다. 심리상담 교육과정이라 얼굴을 마주하고 사람을 만나는 연습을 안 할 수 없다. 서로에게 상담자와 내담자가 되어주는 연습을 하다 보면 사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어디에서도 하지 않았던 처음 해 보는 이야기들이 오가다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실험을 통해 현실이 되는 과정은 이공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상담 이론과 더불어 삶도 나누었다. 공부는 함께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려면 배움의 공동체에 소속되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왜 화를 내는 걸까

그렇게 고단하고 감동적이게 3년이 조금 넘는 과정을 잘 버텨냈다. 몸에 힘이 없는데 급하게 해야 할 숙제가 있거나 과제 마감날이 다가올 때는 커피믹스와 고용량 카페인 음료를  마셨다. 덕분에 내장지방이 쌓였고 고지혈증도 왔다. 지금은 더 이상 고용량 카페인 음료를 마실 일이 없다. 살 것 같다. 그렇게 고생은 했으나 원한이 생기지 않는다. 불평하는 마음도 없다. 내가 내적으로 더 풍성해지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읽고 쓰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졸업장 받아 들었을 때의 감격과 해방감을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공부하는 매 순간 역시 뿌듯하고 의미 있었다. 과정 자체가 감사했다.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나의 대학원 공부와 정 반대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공부 과정을 한국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혼자 공부하며, 제대로 된 쓰기와 토론도 없다. 수험서에 날림으로 요약된 정보를 시험을 위해 기계처럼 읽고 외운다. 5개의 예시 중 정답만 골라내는 훈련이다. 5지선다형을 공부하는 과정을 혼자서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의 마음엔 원한이 쌓이게 된다. 공부와 삶이 분리된 모순과 소외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섬기는 것이 공무원의 존재 이유이지만 임용 과정은 점수로 상대를 물리쳐야 살아남는 전쟁터다. 이 모순과 소외를 어찌할 것인가. 그나마 이런 시험은 어른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더 가슴 아픈 것이 고등학생들이다. 고등학교 평가시스템은 미성년자인 고등학생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와 열등감을 새긴다. 학생들 각자의 시험 점수를 상대 평가해서 우열과 당락을 결정한다. 내 친구들이 나보다 더 공부를 잘하면 나는 그만큼 기회를 뺏기게 된다. 잔인하고 비윤리적이며 폭력적이다. 어린 나이에 이런 비정한 환경에서 공부를 했으니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안 생길 수가 없다. 고생해서 공부하며 원한이 쌓인 고3 수험생들, 각종 공무원 시험과 전문직 자격 취득을 위한 수험생들을 본다. 마음이 착잡하다. 그렇게 고통스러웠으니 시험 통과 이후에 얻게 되는 기득권을 당연시하며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폭력적인 환경에서 공부하며 폭력적인 사람이 되어 사회에 진출한다. 노동과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오로지 점수와 시험 당락으로만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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