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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Dec 03. 2022

읽고 쓰며 토론하다 죽을 뻔한 이야기(2)

공동체로 책 읽기- 심리학 책 읽는 법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공동체

 공부는 여럿이 함께 읽고 쓰고 토론하며 내면을 단련시키고 삶을 풍성하게 하는 과정이다. 다만 대학원 시절엔 이 과정을 천천히 여유 있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학교 밖에서 만든 책모임에서 나는 천천히 읽고 나눈다. 더할 수 없는 행복이다. 나는 책모임을 두 종류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상담을 하는 동료들과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인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다. 상담을 하는 동료들과 하는 모임은 내가 전문가로 계속 성장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반면에 일반인들과 하는 모임은 조금 더 특별하다. 나는 상담심리를 전공했으며 한국에서 남성으로 살아왔다. 나의 독서모임에 주로 오시는 분들은 다른 전문 분야가 있으시고 대부분이 여성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이 분들은 책을 읽을 때 여성의 관점에서, 어머니와 아내, 딸과 며느리의 관점에서 심리현상을 읽어내고 이야기해 주신다. 내가 그래도 20년 이상 심리학 언저리를 맴돌았는데 이 분들의 혜안과 독특한 경험과 아픔은 들을 때마다 새롭고 인상적이며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서양 백인 남성들이 쓴 이론으로는 한국 여성들의 삶을 다 설명할 수 없다. 한국 가정과 사회에서 딸로 존재하며 살아남은 삶은 태내에서부터 생명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투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책에 없는 심리현상을 떨리는 목소리로 노기 어린 눈빛으로 설명해 주신다. 이중 삼중의 억압과 도저히 풀기 어려운 실타래이지만 그래도 견디고 사랑하고 기어코 성장하는 진짜 심리학 이야기를 듣는다. 




책 읽는 모임은 마치 추운 겨울 난로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은 것과 같다. 서로에게서 나오는 온기로 얼었던 마음을 녹인다. 홀로 책을 읽고 마음의 위로와 문제의 해결책을 얻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분명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하는 독서와 함께하는 독서는 치유의 깊이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람은 깊은 공감을 주고받아야 치유되고 성장한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의 상처는 마음으로 치유한다. 전문가의  심리 처방보다 더 근원적 치유 요인이 바로 상처받은 마음을 알아보는 다른 상처받은 마음이다. 


자본은 우리를 이기적이 되라고 한다. 손해 보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고 가능하면 이익이 쌓이도록 행동하라고 촉구한다. 마트에만 가도 포인트를 챙기라 하고 사은품을 챙기지 않으면 바보가 된 느낌이다. 그러나 독서모임에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이타적이 된다. 서로 이타적이 되지 못해 안달이다. 이타적이 되었을 때, 즉 나의 공감과 위로가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라라도 움직였다고 느꼈을 때 진정 살아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함께 울고 아파하고 웃고 격려하며 함께 일어선다. 허무로 가득한 경쟁사회 틈바구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거대한 자본의 질서가 통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이 책모임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책모임이 항상 그렇게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란 법은 없다. 지겹고 따분하며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책모임을 훈훈하게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공개한다. 

     

천천히 읽고 준비

나는 일부러 책 한 권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지 않는다. 한 챕터씩 쪼개어 읽거나 그마저도 분량이 많으면 또 나누어 읽는다. 천천히 책을 읽고 나를 돌아보며 일단 책과 대화를 해야 재미든 감동이던 느낄게 아닌가. 많은 양의 글을 빨리 읽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기도 하던데 자기 성찰을 위한 심리학 책은 그렇게 읽을 수 없다. 시간을 들여가며 그 내용이 몸과 마음에 쌓이도록 읽어야 한다. 

책모임에 오기 전에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문단에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한다. 그리고 소리 내어 낭독하기를 권한다. 따로 노트에 필사해서 보면 더 좋다. 저자의 문장을 몸으로 만나는 것이다. 선택한 문장과 관련해 질문을 만들어 오거나 떠오르는 생각과 경험을 정리하면 더없이 좋다. 


대화

모임이 생산적이 되려면 모임 멤버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생명이다. 대화를 통해 감정과 생각을 주고받는다. 그 상호작용 안에서 사람은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래서 한 사람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모임에 독이 된다. 주목받고 싶은 욕구와 묵힌 감정을 해소하고 싶은 욕구를 배설할 뿐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치고 짜증이 난다. 하고 싶은 말이 많더라도 줄여야 한다. 상대방도 입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미덕을 갖추자. 적어도 이런 삶의 자세를 갖춘 사람은 ‘꼰대’라는 비난은 듣지 않는다. 

순서를 정해놓고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것도 생산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기다리기도 지루하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내가 말할 내용 정리하느라 잘 듣지 않게 될 때도 있다. 내가 말할 시간과 공간을 타인이 정해놓은 규칙에 의탁해 버리는 꼴이 된다. 순서에 의지하지 않고 내가 말하고 싶을 때 말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 순간에, 이 타이밍에 나를 표현하기로 용기를 내는 그 순간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며 내 운명의 개척자가 된다. 자유로운 대화의 흐름이 이어지고 멤버들이 골고루 대화에 참여했다면 그 모임은 일단 성공적이다. 


마치며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지고 말았다. 진짜 나이가 드니 할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좋은 것이 넘치는 세상이다. 요가, 명상, 춤 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최근에 유행 중인 자기 계발 힐링 강연까지 새로운 치유 기법은 유행을 만들어가며 계속 나왔고 또 나올 것이다. 그중에는 물론 도움이 되는 것들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그냥 한 시절 성행하다가 사라질 것들도 보인다. 자신에게 맞는 좋은 기법과 잘 훈련된 전문가를 만나면 좋겠지만 그걸 찾기 힘든 상황이라면 기본에 충실하면 좋겠다. 함께 모여 읽고 쓰고 토론(대화)하며 내면을 가꾸고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후로 수 천년 간 해 오던 방법이다. 간편하고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치유와 성장의 비법이다. 읽고 대화하기에 대해 글에 자세히 설명했지만 사실 쓰기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만 하고 말았다. 글쓰기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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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 & 고가후미타케. 전경아 역. (2014). 미움받을 용기. 인플루엔셜


윌리암 피취. 홍순철, 고재섭 역. (1986). 인간 만남 그리고 창조. 민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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