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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Mar 17. 2024

기억은 떠나고 기록은 남는다.

메모 어플 옵시디언 추천

작년 가을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신 『창조적 시선』 맞이했다. 『창조적 시선』은 1920년대에 설립된 창조적인 실험학교인 독일 바우하우스의 발자취를 따라 인간의 창조성부터 괴테의 색채론에 이어 일본 군국주의의 유산인 한국의 군대문화, 철도와 근대성, 창조와 통섭 등을 맥락 담아 다룬다. 10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었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술술 읽혔다. 하나같이 현학적이지 않고 군없는 문장들이었다. 읽기엔 두꺼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 땐, 그걸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사람 생각한다.


김정운 교수는 대체 이 책을 어떻게 썼을까. 답은 창조는 기존 내용의 편집이라는 의 철학에 있다. 그는 『에디톨로지』에서  창조는 기존 지들을 본인만의 메타언어로 재조합하고 편집하는 것이 말했고,  『창조적 시선』은 전작 『에디톨로지』의 실험서답게 126개의 unit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 지식의 모듈화가 창조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메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사실 여름에 숀케 아렌스의 『제텔카스텐』(독일어로 메모상자라는 의미)을 통해서 체계적인 메모가 어떻게 지식이 되는지 접했지만 실천하지 않았다. 생각의 조각들 창조적으로 엮인 것을 보고 나니 조각을 붙잡아 두고 싶어졌다. 최근에 창의성은 다양한 자극으로 인한 뇌의 복잡한 중복신경망 사이에 일어나는 증폭이라는 내용을 접했는데, 이것이 창조는 기존 지식들을 편집한 결과에 대한 뇌 과학적 설명이 아닐까 싶다.


떠도는 여러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 두면 더 이상 두서없이 머릿속을 맴돌지 않는다. 안개가 걷힌 느낌이다. 고민거리는 물론이고 가치판단을 내리지 못한 이슈 정리해 두면 마치 생각을 주제별로 분류된 서랍에 넣어 정리하고 자물쇠로 잠가둔 것처럼 기분이 깔끔하다. 그제야 다른 주제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 같아서 매일 일기를 썼다. 하지만 활용하기 어려웠다. 생각과 감정의 나열이었을 뿐 제텔카스텐과 다르게 생각들이 체계를 갖추거나 유기적이진 않았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옵시디언을 찾았다. 한 유튜버가 제텔카스텐을 구현하는 최적의 어플이라고 소개한 것이 눈길을 잡았다. 한줄평 : 작년 10.20일부터 불만 하나 없이 잘 쓰고 있다. 어플은 무료이지만, 순정 동기화와 백업기능을 사용하기 때문에 유료(월 6달러) 구독 중이다. 구글 드라이브와 같은 동기화 어플을 통해서 무료로 기능을 쓰는 방법도 있다.


첫 번째로 옵시디언은 자유도가 높다. 개발자용 메모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이 공유하는 다양한 플러그인을 통해서 테마부터 기능까지 변경하고 확장하면서 직접 어플을 꾸밀 수 있다. 자유도가 높다는 의미는 기본값이 매우 심플하다는 거다. 본인 목적에 따라 커스터마이징 해서 최적화할 수 있다. 나는 옵시디언에 생각의 단편들을 적어두거나, 일기를 쓴다. 일정 관리를 엄격하게 하지 않아서 스케줄러로 활용하지 않지만, 필요하면 구글 캘린더와 연동하여 일정을 관리할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옵시디언은 백업과 동기화가 잘된다. 옵시디언은 로컬 기반 메모어플이기 때문에 백업이 안정적이다. 유료로 동기화 기능을 사용하면 노트북 버전에서 수정한 내용이 핸드폰 버전 어플에 바로 반영된다. 또한 텍스트는 물론 이미지까지 드래그 한 번에 복사 붙여 넣기가 된다. 이전에는 핸드폰 다이어리 어플로 일상과 생각의 단편들을 기록해 두었는데, 복사 붙여 넣기도 힘들고, PDF 저장기능은 무용지물이라 백업이 무의미했다. 당연하게도 일기 어플은 노트북과 호환되지 않았다. 기존 어플에 몇 년 간 썼던 일기 중에서 이전할 만한 들을 옵시디언에 옮기느라, 백업의 중요성을 몇 날 며칠 손끝으로 체감했다. 다시는 아무 데나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로 옵시디언은 기록을 유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어플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기존 기록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해 준다. 일기에 태그기능을 활용하면 생각과 감정의 변천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검색뿐만 아니라 그래프 뷰 기능을 통해 기존 메모들을 한 번에 볼 수 있고 서로 링크해 놓은 문서들은 직선으로 연결되어 직관적으로 확인 가능하다. 나는 검색과 그래프 뷰 기능이 옵시디언의 킥이라고 생각한다. 옵시디언으로 생각을 촘촘하게 연결하니 발상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픽 뷰를 보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난다.


AI가 진화할수록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다. 정보 접근성이 높아짐에 따라 기존 지식을 단순 암기하는 행위는 의미를 잃는다. 반면 AI가 아직 대체할 수 없는 상황판단능력이 중요하다. 상황판단이 정확하고 빠른 사람은 주어진 정보를 계층화하고 분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즉 중요성이 다른 정보는 중요한 것부터 위계적으로 파악하고, 중요성이 동일한 정보는 같은 층위에 두면서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한다. 정보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분류하는 것은 우선순위에 따른 올바른 판단을 돕는다.


또한 AI 시대에는 기존 지식의 단편들을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편집하고 조합하면서 창조적인 메타언어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를 위해 메모를 놓지 않는 사람에게 옵시디언 심플하고 안정적이고 직관적인 도구다. 옵시디언과 핸드폰 키보드의 음성인식 기록을 이용하면, 정보를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당신의 소중한 생각 또한 손쉽게 잡아둘 수 있다.



* 표지 사진: UnsplashThought Cat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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