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 때 걸려오는 전화를 굳이 받지 말아라
내 평생 밥 먹다 받은 전화 중에 수저를 놓을 만큼 중요한 전화는 없었다
한빛은행 김종욱 前 부행장이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고 떠도는 글 '아들에게 들려주는 충고' 중 일부다. 저 말만 기억난다. 맞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그렇기에 나는 질 좋은 재료로 정성 들여 만들어 먹는다. 취향을 담은 식기에 정갈하게 담아 먹는다. 좋아하는 섬유유연제 향을 품은 빨래를 탁탁 털어 널거나, 환기를 시키고 집 청소를 할 때와 같은 기분이다. 내 일상을 아끼며 손수 챙길 때처럼 보람을 느낀다. 여유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때 기분이 좋다. 사 먹은 음식이 엉망이면 헛배를 채웠다는 생각에 속이 상한다. 매끼니가 소중한데 말이다. 비슷한 심정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재료로는 굳이 요리하고 싶지 않다.
요리를 하면서 깨달은 점 중 하나만 꼽자면 재료가 8할이라는 사실이다. 만족스러운 요리는 질 좋은 재료로부터 나온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주말농장을 가지고 있어 쌀과 고기 외의 채소 대부분은 유기농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신선한 재료를 쉽게 얻는 건 행운이다. 요리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감사하다.
또한 비슷한 재료더라도 풍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재료를 쓴다. 예를 들어 볶음밥, 카레나 김치찌개 레시피에서는 '돼지고기 부위는 상관없어요.'라고 한다. 어느 부위든 요리는 가능은 하겠지만 풍미에서 큰 차이가 난다. 카레에서 감칠맛을 충분히 끌어내려면 돼지기름에 양파를 충분히 볶아야 한다. 볶음밥알이든 계란이든 양파든 풍미를 극대화시키는 돼지기름에 볶아야 더 맛있다. 라드라는 돼지기름만 따로 팔기도 하니까. 요리가 가진 주된 풍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풍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재료를 써야 한다. 수육도 통삼겹을 삶아야 비계와 살코기 비율이 적당하여 훨씬 맛있다. 나는 고급 유기농 달걀을 격주로 구독한다. 까르보나라의 풍미가 고소한 노른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파스타면으로 요리해 본 결과 정착한 면 브랜드는 '아펠트라'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가 소중하다. 동생이 일본에 다녀오면서 사다 준 간장달걀밥 전용 간장 3종소스에는 풍미가 있다. 진간장도 감칠맛이 있어서 그전에 해먹은 요리와 별 차이 없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전용 간장은 예상을 뛰어넘는 맛을 보여 주었다. 역시 그들은 간장달걀밥에 진심인 민족이다. 달걀프라이가 90% 정도 되었을 때 팬의 한쪽에 간장소스를 부어 살짝 졸이면 풍미가 극대화된다. 스위스에서 사다 준 마요네즈와 함께 비벼 먹을 때마다 아리까또.
참고하는 요리 유튜버는 3명이다. 양식은 김밀란, 한식은 김대석 셰프 그리고 종합 성시경. 김밀란은 재료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레시피를 알려준다. 그가 출간한 『김밀란 파스타:이탈리아에서 요리하는 셰프의 정통 파스타 레시피』는 파스타의 바이블이다. 김대석 셰프 레시피는 풍미를 중시한다. 어느 부위든 상관없다고 하지 않고 어느 부위를 써야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다고 알려준다. 성시경은 먹는 즐거움까지 보여준다. 마요네즈(아리가또)가 꼭 들어가야 한다는 성시경 레시피를 참고하여, 어제 만들어 먹은 나폴리탄 파스타는 만족스러웠다. 역시 그는 쩝쩝박사다.
오늘은 다음 주에 먹을 부대찌개를 할 생각이다.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부대찌개용으로 가장 적당한 소시지는 콘킹 소시지(고염)였다. 궁금을 참지 못하고, 어제 나폴리탄 파스타 해 먹을 때 주워 먹어 봤다. 기존 소시지가 급식에 나오는 쫀쫀함 밖에 없는 찹쌀 순대 느낌이라면, 콘킹 소시지는 30년 전통 피순대처럼 감칠맛이 넘쳤다. "이래도 더 안 먹을 거야?"라는 거만함 자체였다.
밥 먹다가 전화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화받지 않는 것을 질책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사회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밥 먹다가도 전화를 받는 것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다는 점에 본질이 있다. 음미하라고 꾸며놓은 산책길에서 죄다 전력질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고개를 돌리면 냇물도 흐르고 꽃도 피어있는데 참 요란이다. 모르겠고 콘킹 소시지 부대찌개 국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