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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Sep 16. 2024

내생에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We need a Holi Holiday Whatever

금요일 퇴근길에 두부 샀다. 예약해 뒀던 빵도 찾아왔다. 집 근처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도 포장했다. 홈플러스 배송도 저녁에 오게끔 주문했다. 집 밖에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 성 안에서 만끽하는 아늑함을 기대했다. 토요일에 먹은 아바타와 바게트 그리고 초코빵  담백했다. 치아바타에 바질 페스토를 바르고 모렐라, 체다, 고다 치즈를 얹고 녹여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단맛이 부족해 포도잼을 찍어 먹었다.


오늘 눈 떠질 때까지 자고 일어나 주방과 거실 창문을 모두 열었다. 시원한 물을 들이켜고 소파에 널브러졌다. 에어컨 아닌 미급한 바람이 들어왔다. 간밤에 침대맡에 있던 소설을 가지고 나와 채광만으로 읽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히라야마처럼 머리맡에 책을 두고 읽는 주인공들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읽을 책이 넘쳐난다는 사실만으로 감정이 벅찰 때 있다. 유한한 삶에 비하면 읽을 책은 무한하다는 생각까지 다다르면 마음이 풍족해진다. 음식과 달리 책은 배가 불러도 볼 수 있다. 명절 연휴에는 책도 있고 음식도 있고 시간도 있으니 신난다.


논픽션은 특정 목적을 위해 읽지만, 문학은 에 따라 읽는다. 순간의 감성에 따라 골라 읽을 수 있다는 은 문학의 매력이다. 그때 그때 채우고 싶은 감성이 있고 그곳에 퍼즐조각처럼 들어맞는 문학이 있다.


의식 흐름대로 써 내려간 듯한 이야기를 읽고 싶으면 알랭드 보통이나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본다. 늦은 밤에 맥주 한 캔씩 놔두고 일방적으로 떠드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커피는 어울리지 않는다. 맥주여야 한다. 그들 이야기는 뒤죽박죽 같지만 저마다 큰 흐름이 있다.


요란 떠는 세상에 질렸을 때는 하루키 문학을 찾는다. 꿉꿉한 방에 처박혀 담담한 이야기를 듣는다. 하루키 문학 주인공은 초자연적 현상을 겪거나 원인 모를 사건에 휘말려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쓸데없이 무게 잡지 않으면서 가볍 않다. 세상이 요란 떨든 말든 묵묵히 나아가다 쉬고, 나아간다.


이윤기 감독 영화 <멋진 하루(2008)>나 김태곤 감독 영화 <1999, 면회(2012)>가 생각나곤 한다. 진지하지 않고 웃기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영화가 생각날 때, 김홍소설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김홍소설은 적절한 감성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나오자마자 주문 읽는. 김홍 소설은 많이 긴다.


장편 소설을 읽은 뒤에는 머리맡에 단편집을 다. 짧은 호흡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짧게 끝나면서, 단편집만의 분위기유지되길 원할 때 루시아 벌린 단편 소설 모음 『청소부 매뉴얼』은 좋은 선택이다. 흘린 맥주와 담뱃재를 제때 청소하지 않아 말라비틀어진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준다.


책은 자유도 준다. 언제 어디서든 시간을 온전하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커트하시려면 한 시간 넘게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기다릴게요."


같은 맥락으로 소설과 비문학 그리고 에세이를 동시에 읽는다. 그러면 글 질려도, 책 질리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 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프롤로그 중 -


책에 빠져 을 때 나는 김영민의 글처럼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있다. 이 시간이 내 퀘렌시아다. 자신의 퀘렌시아를 명확히 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삶에 힘이 된다. 그곳 역시 유한한 삶이지만, 그 곳에선 다급하지 않다. 남은 월화수도 성문을 닫아건다.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연휴 때 듣는 노래 : 카더가든의 홀리데이(ft. 빈지노)

https://youtu.be/Ysis8lfrwNM?si=C2cCENwM1OZlhNON

바람은 what a bre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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