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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d Fashioned NuBoi Mar 10. 2022

이상한 보통 사람

  화이트초코를 먹다 혀를 데였다. 혀는 열을 이겨내지 못해 따끔거리는데, 발은 차가움을 이겨내지 못해 감각이 둔하다. 그냥 12월의 25번 째 날이라고 되뇌어보지만,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어딜 저리 가는지 궁금해 한다. 어쩌면 되려 저 사람들에게 오늘이 그냥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일지 모르겠다. 잘 하고 있던 게임을 끄고,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굳이 나왔다.


  대부분은 이 날씨에 의미 없이 나가진 않겠지. 하지만 난 오늘도 20분을 할 일 없이 걸었다. 귀가 얼고 발가락이 시릴 쯤, 그냥 보이는 카페로 발을 옮겼다. 물론 목적이 없진 않았다. 새로 생긴 카페에 가고 싶었다. 가까워서 게으름을 피우며 나왔는데, 자리가 없다. 사실 그것보다 문을 열었을 때 모두를 바라보는 그 눈들이 무서웠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무섭냐고 반문한다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쳐다본다는 사실이 무섭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많은 시선들이 날 종종 당황시킨다. 그러면서도 관심을 받고 싶고, 주목받고 싶어 한다.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만난 좋아하는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아는 척하고, 친근하게 한 마디 붙이고 싶었지만, 정작 내 몸이 얼어붙었다. 혼자 다니면 이런 경우가 꽤 자주 발생한다. 오히려 누구와 같이 다니면 넉살 좋게 잘 다가간다. 그러면서도 나는 혼자 다니는 걸 상당히 선호한다. 붙임성으로 얻는 이익보다 누군가와 있다는 피로감으로 얻는 손해가 크다고 판단한 탓이다. 물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고, No man is island 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항상 혼자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만나며 사용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지만, 그게 내가 지금 내린 건강한 나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판단이다. 누군가와의 의견조율,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 나의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하는 염려들이 나를 너무 피곤하게 만든다. 나 혼자 있을 땐 온전히 내 위주로 생각하면 된다. 밥을 시켜먹어도, 해먹어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먹어도 된다. 굳이 밖을 나가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취향에 대한 고민 없이 노래를 틀고, 보고 싶을 때 넷플릭스를 켤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도태된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에 요즘 열광하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일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이런 것들을 잘 알아야,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화하면서도 사람구실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먼 길을 떠나는 이유도, 그래도 카톡을 영영 없애지 않은 이유도, 인스타를 일주일에 9시간씩 붙잡고 있는 이유도 다 이것 때문이다.


  TV에서 오은영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강박증은 의도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위험에 불안을 느끼는 거라고. 내 강박증이 여기까지 영향을 끼친 지는 의문이지만, 내 의지와 관계없이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보단 내가 의도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더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나라는 사람을 통제하고 있다는 안정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사람을 안 만나는 거라는 쿨한 척하는 자기 위로일지는 나도 헷갈린다.


  <이상한 보통사람들>이라는 노래가 있다. 처음 들을 때부터 가사가 너무 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분명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다. 착하게 살고 싶지만, 나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면서도 거리를 둔다. 쿨해 보이면서도 전혀 쿨하지 않다. 타인의 성공에 무신경한 듯 하지만 나도 모르는 질투심이 올라온다. 이렇게도 이중적인 나는 과거에 이중적인 사람을 욕하고, 비판하고, 비꼬는 문학을 쓰려고 덤볐다. 평범한 사람임을 자처하면서 평범한 사람들과 반대로 살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난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과거엔 ‘이상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부끄러웠다. 나도 남들 사이에 묻어가면서 유행하는 같은 옷을 입고, 유행하는 게임을 같이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비슷한 생각을 같이 하면서, 그렇게 튀지 않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튀는 사람으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건지 모르겠지만, 모든 우연과 의도가 나를 이쪽으로 이끌었다. 어느 순간 내가 무의식적으로 평범함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느낀 뒤론, 오히려 이렇게 사는 게 만족스럽다. 현재 그 길에 이끌려 걸어가고 있는 내 모습이 썩 나쁘진 않다. 이상하든 평범하든 결국 나에게 어울리게, 나답게 살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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