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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성 Jan 31. 2023

초혼이 재혼과 만나는 계기, 혹은 시기?

선택과 당위의 사이?

오래전 베스트셀러 중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있었다. 나 역시 그 책을 열심히 읽었었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건, 갈등이 생겼을 때 남자는 동굴에 들어가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싶어 하고, 여자는 남자를 붙잡고 얘기하며 풀고 싶기에 서로 본질적으로 문제 해결 방식이 달라 힘들다는 것 정도이다. 어쨌거나 남자와 여자의 다름을 다소 알게 해 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20대에 그 책을 읽었던 나는 내 특성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 역시 관계의 갈등에 부딪혔을 때 동굴에 들어가 혼자 조용히 성찰할 시간을 가지고 싶었기에 그 책이 이해도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연인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즉각 해소를 도모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회피하고 좀 시간을 갖고자 했는데 그게 상대에게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어느 것이 지혜로운 행동인지는 지금도 단언하기 힘들다. 상황에 따라 서로의 특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만 나이가 들고 보니 '다음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게 된 터라 인간관계의 앙금도 바로바로 푸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움을 줄 때도 바로바로 해줘야 하고, 갈등을 풀 때도 바로바로 풀어버려야지, '나중에 해야지' 하면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만 귀찮아지기도 해서 못하고 만다.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일에 신경이 덜 쓰이게 돼서 생각지 않게 상처를 주게 된다. 그래서 웬만하면 해줄 건 바로 해주고 못해줄 것은 즉각 부드럽게 거절하는 방법을 잘 터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인간관계의 지혜라는 것을 중년이 되니 알 것 같다. 


이혼도 많아진 만큼 재혼도 흔해진 요즘, 문득 재혼에 관한 통계가 궁금해 검색해 보다 사실 놀랐다. 국가통계포탈에서 검색한 결과 2021년 기준 우리나라 평균 재혼연령은 남자 50.65세, 여자 46.5세이다. 전반적으로 최근 전체 결혼자수도 지속 감소하는 추세에 있듯 재혼율 역시도 감소하고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재혼자의 구성비였다. 전체 재혼건수 중 남녀 모두 재혼인 경우가 물론 가장 많으나 다음이 '남자가 초혼, 여성이 재혼'으로 결혼한 경우였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3년 동안 동일했는데,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약 35-45% 정도 가량 남자가 초혼, 여자가 재혼으로 결혼을 한 케이스가 남자가 재혼, 여성이 초혼인 경우보다 많았다. 중년 세대들의 흔한 예상과 다른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 세대까지만 해도 재혼끼리 아니면 오히려 남성이 재혼, 여성이 초혼인 커플이 더 많을 거라 짐작하기 쉬운데 지금 현실은 반대였던 것이다. 이들이 어떤 프로필을 가졌고 어떤 식으로 만나 결혼을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상징해 주는 하나의 중요한 측면이 아닌가 싶다. 


내 주위에는 괜찮은 중년 미혼녀들이 여러 명 있다. 결혼해서 행복한 나는 그런 미혼 친구들에게 좋은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런 여성들과 맞는 싱글 남성들이 정말로 너무 없다. 그나마 존재하는 싱글들은 남편 친구 통해 들은 사별남이나 간혹 가는 모임에서 알고 있는 소수의 이혼남 정도인데 사실 미혼녀들에게 재혼남들을 선뜻 소개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재혼남과 소개팅하고 만나 결혼했는데 내 또래나 후배 여성들에게 그렇게 말을 꺼내기 조차 힘든 이유는 뭘까? 

나에게 괜찮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괜찮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도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닌지 재혼커플 통계를 보고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어쩌다 한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었다면 미혼이건 이혼이건 뭐건 서로 상관이 없겠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영화 같은 일이 잘 안 벌어지므로 결혼의사가 있다면 선이나 소개팅 같은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게 삶의 진실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이상적으로 바라는 초혼남을 그대로 고수하며 결혼의 낮아져 가는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느냐, 아니면 재혼 케이스도 고려해야 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언젠가 서게 된다. 그게 내 경우엔 4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였던 것 같다. 그게 나이에 대한 현실인식 차원에서도 그렇고 이전 글에서 밝혔듯 예의 없던 미혼남들과의 소개팅이 준 깨달음으로 인한 전격적인 사고의 전환도 한몫을 했다. 그즈음 나랑 비슷한 싱글녀들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는데, 그렇다고 재혼남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은 아니고 고려의 선상에서 배제시키지는 않는다는 정도로 점차 수용하게 됐던 듯하다. 


한마디로 모두들 '결혼을 하고는 싶으나 그렇다고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싱글녀들이어서 그저 운명을 탓하며 소극적으로 살다가, 어느날 재혼남과 소개팅을 하라는 말에 발끈하지 않고 소개팅하러 나갔을 뿐이었다.   


요즘 만혼이 대세가 되고 있고 재혼도 흔한 풍경이 되고 있는 마당에 자신이 어느새 캐캐묵은 사고의 소유자가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결혼이 너무 심각한 일이라서 현실적 수용 가능성을 고려해 재혼케이스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또 누구는 결혼이 별로 절실하지 않아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 즉 같은 초혼이어야 한다는 것을 포기할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른가는 답도, 의미도 없을 듯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가진 삶의 가치나 지향에 있어 '그런 조건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가 아닐까 싶다. 그게 절대 포기 못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심각한 질문에 한번 스스로 답해보면 좋을 듯하다.


내 경우는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위해 다소 아쉬운 조건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 것이지만 내가 꼭 대안적 정답이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좋은 사람이라면, 나랑 살기에 좋은 사람이라면 그런 조건의 제약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넌지시 말하고는 싶다.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솔직히 말해 결혼 초기  '남편이 지금 그대로이면서 나처럼 미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은 정말 공상처럼 한순간 지나간 생각이었는데, 내가 애정하는 지금의 남편의 품성과 태도를 만든 것에는 아버지로서의 엄중한 삶의 경험도 작용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깐의 망상 정도로 끝났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그 결론을 쓴다면 아마도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지구에서 같이 살면서 비슷한 사람이 되었다'라는 것일 듯하다. 그들은 중년이 되어 둘 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저 인간으로서 서로 기대고 살아갔을 것이라는 결말이 그것이다. 


중년이 되니 남자, 여자 이런 구분이 별로 의미가 없어진다. 초혼, 재혼도 그다지 의미가 없다. 혼자 살 때보다 행복하면 그만이다. 어쨌거나 좋은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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