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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주 Apr 27. 2022

나는 매일을 흘러간다.

ISFJ, 용감한 수호자. 

요즘 유행하고 있는 MBTI의 16개 성격 유형 중 나에게 해당하는 유형이다. 

내향적이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현재에 초점을 두어 보수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인간관계를 중시하기에 지금 상황을 위해 원칙을 바꾸기도 하지만,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 

한 사람의 성격을 몇 개의 단어로 단정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평소의 내 모습과 많은 부분 일치하기도 한다.

매일 저녁 회사 사람들과 부딪히며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기진맥진하여 잠시라도 조용히 앉거나 누워서 나만의 에너지 충전 시간을 보내야만 하고, 때로는 함께 사는 가족들을 마주하는 것도 버거워 혼자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온전히 ‘혼자’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늘 나만의 정해진 루틴을 찾아 그대로 실행하기를 바라고, 그 루틴이 잘 지켜질 때에 마음이 편하다. 집안 곳곳 내 손이 닿는 곳에는 내가 정한 규칙에 따라 물건들이 정돈되어 있을 때 가장 만족스럽다. 그러면서도 함께 있는 사람들의 기분을 위해 그 규칙이 지켜지지 못해 불편한 상황들을 감수하곤 한다. 


17년 전쯤, 신입사원 연수 시절 MBTI보다는 단순한, ‘DISC’ 라는 성격 유형 검사를 했었다. 검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성격 유형을 검사 이름과 같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특성을 설명해 주었는데, 나는 ‘I’ 형이라고 했다. 외향적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굉장히 관심이 많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동일한 성격 유형의 사람들끼리 한 공간에 모아두고 과제를 수행하게 한 다음 결과물을 공유하며 각 그룹의 특징을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으로나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 그룹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던 행동과도 꼭 들어맞아 매우 신기했다. 

그 뒤로도 한참을 나는 외향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저런 모임들을 주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만남들이 힘겨워지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불편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고 오히려 만남의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17년 전의 외향적이고 즉흥적이던 성향의 나와 혼자만의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인 걸까? 


올해로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다. 연애기간까지 포함하면 남편을 만난 지 20년이다. 두 아이를 낳고 아이들의 사춘기를 맞이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우리 부부의 관계도 롤러코스터를 탔던 것 같다. 

늘 함께 가던 영화관도 번갈아 아이들을 돌보며 혼자 가게 되고, TV 드라마 역시 순번을 정해서 봐야하는 시간들이 길어지다 보니 이제는 함께 TV 앞에 앉아서 볼만한 프로그램을 결정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화나 드라마 취향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읽는 책도, 즐겨 듣는 음악이나 라디오 방송,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까지도 전혀 다른 지점에 와있다. 주로 접하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내가 사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이고,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해석하는 사고의 과정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20년 전 처음 만나 설렘을 느꼈던 그 사람과 지금의 남편을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남편과 한참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는 그 때 내가 사랑하고 인생을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과 지금의 남편은 너무나 다른 사람이고,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또 전혀 다른 사람이기에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관점에서 ‘결혼’ 이라는 제도는 너무나도 잔인한 속박이고 이혼을 선택하는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집에서 아이들과 부딪혀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한 2020년 여름,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가족과의 트러블, 회사일로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시작한 상담이었지만 회차가 계속될수록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과 나를 힘들게 했던 상황에서 ‘누가 잘못했는가’ 가 아닌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고 반응했는가’에 대해서 계속 탐구하다 보니 그동안 모르고 있던 나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던 내 안의 나를 더욱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상대방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혼자 머릿속으로 써내려 간 시나리오에 따라 상대의 마음을 규정짓고 혼자 화내거나 불안해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내가 있었다. 상대를 배려한다며 내 의사에 관계없이 상황에 끌려 다니다가 ‘배려하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상대에게 화를 내는 나를 보고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면서 ‘내가 원하는 것’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거절도 많이 하고 불친절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거절한 뒤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거절하는 만큼 단단해 지는 것이라고 나 자신을 독려하는 중이다. 


얼마 전, 중학생 첫째가 학교에서 시 낭송 대회를 하는데 참가하고 싶다며 후보작들을 가족들 앞에서 낭독해주었다. 주로 나태주 시인의 작품들이었는데, ‘너는 흐르는 별’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너는 흐르는 별
나도 또한 흐르는 별
<중략>
어제의 너와 나는 죽고 
어제의 산과 들과 나무는 
더불어 죽고

오늘의 너는 새로이 태어난 너
오늘의 나는 새로이 눈을 뜬 나
<후략>


그래, 나는 흐르는 별이고 매일매일 새로이 태어나고 눈을 뜨는 것이다. 

이렇게 흐르는 동안 나는 끝없이 새롭게 태어나고 변화하겠지. 나는 앞으로 어디로 흘러가게 될 지 이 끝없는 여정이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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