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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주 May 30. 2022

독립을 위한 첫걸음

내가 바라던 큰 집으로 이사를 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이전에 살던 집도 충분히 여유롭고 좋았다. 세 개의 방이 있는, 이십 평 대 후반의 집이었고, 네 식구인 우리에겐 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넓은 집으로 가고 싶었다. 이사에 앞서 내가 정한 최소한의 조건은 식구 수만큼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식구들에게 각자 개인 공간으로 방 하나씩을 배분하는 게 내 목표였다. 지금 동네에서 기준에 맞는 집은 최소 사십 평이 넘는 아파트였다. 넷이 살기에 그만한 평수가 적당한가를 잠시 고민했지만 내 욕망은 생각보다 강했다.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 친정과 살림을 합쳤다. 처음부터 함께 살 계획은 아니었는데, 친정 근처에 집을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 결혼 후 8개월 만에 다시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렇게 친정살이를 하는 동안 당연하게도 ‘나만의 공간’은 생각조차 못했다.

10년 만에 분가를 하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살림을 꾸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아주 짧은 신혼생활을 제외하면, 결혼 전에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어 처음으로 ‘나의 주방’을 갖게 된 것이다. 분가에 맞춰 육아휴직을 신청해 집에서 보낼 시간이 늘어났기에 나의 공간에서 상상했던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가족만의 집은 마련했지만, 예전에 꿈꿨던 내 공간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내어준 두 개의 작은 방은 애들 물건으로 가득 차 내가 뭔가를 할 여유가 없다. PC와 TV가 함께 있는 안방은 어느새 아이들이 차지해버렸고, 독서를 위해 책장과 큰 테이블로 채워 놓은 거실은 너무 개방된 공간이라 온전하게 집중하기가 어렵다.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도 어느 순간 아이들이 나를 찾아와 방해했다. 나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기엔 우리 집이 작다고 느껴졌다.


이십 대 시절에는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며 시간 보내는 것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생각했고, 일부러 모임을 주도하며 어울릴 기회를 만들었다. 결혼과 육아라는 과정의 영향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나 혼자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즐거웠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이런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욕망을 꺼내 볼 여유가 없었지만, 자신들만의 일이 많아지고 내 손길이 필요한 일이 부쩍 줄어들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육아는 물론 함께 사는 동안 친정 엄마의 담당이었던 집안 살림까지 혼자 맡게 되니 처음 분가할 때 기대와는 다르게 점점 지쳐갔다. 마음이 지쳐갈수록 남편과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방해받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취향을 신경 쓰지 않고 큰 소리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누워있고 싶고, 식구들 끼니 걱정 없이 집중해서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고 싶고, 아이들의 호출로 끊기는 일 없이 새로 시작한 드라마를 쭉 보고 싶었다. 지친 나의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가족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주 가끔 견딜 수 없을 때면 한밤중에 혼자 집 앞 카페로 탈출했다. 다만 삼십 분이라도 혼자 앉아있으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처음 이사를 들어온 날, 예상보다도 넓은 새 집에 놀랐지만 어느새 이 공간에 익숙해졌다. 애석하게도 이사를 결심할 때의 계획과는 달리, 네 개의 방은 부부 침실과 아이들 각자의 방 그리고 멀티미디어 방으로 역할이 나뉘었다. 결국 이번에도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은 없다. 집 안에서 식구들이 각자 유지할 수 있는 거리가 커졌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일까? 하지만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은 우리 집을 다시 전쟁터로 만들었다. 재택근무와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이 계속되면서 세 식구가 하루 종일 집에 머물러야 했는데,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방문을 꼭 닫아도 전혀 개의치 않고 불쑥 들어오는 아이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방해가 가장 적은 공간을 찾기 위한 고민이 계속되면서 식구들은 알아채지 못한 나 혼자만의 스트레스는 더욱 커져만 갔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사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심리적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됐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식구들이 각자의 공간에 들어가 있어도 나는 집 안 이곳저곳을 살피며 여전히 남아있는 집안일들을 하느라 바빴다. 가끔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혹시나 아이가 나를 찾지는 않을까, 내가 TV 앞에 앉아있는데, 다른 식구가 TV를 보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막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무언가에 몰입한 순간에 가족에게 방해받는 것이 두려웠고, 내 몰입의 순간을 위해 가족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도 싫었다.


몇 해 전, ‘며느리 사표’라는 책을 읽었다. 거의 평생을 가부장적인 가정의 ‘아내’ 역할로 충실하게 살았던 한 여성이 그동안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만의 인생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이 담긴 에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가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첫 번째 노력으로 본인만의 작업실을 얻었다는 일화다. 그녀는 본인에게 부여된 다양한 역할을 벗고 오롯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작업실이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 내가 집 안에서의 ‘내 공간’에 집착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물리적인 공간이 주어지더라도 내 마음이 독립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작업실은 단순히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공간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의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을 강요받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심리적 독립의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오늘, 작업실을 얻기 위한 적금 통장을 개설했다. 다시 한번, 나를 위한 온전한 독립에 도전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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