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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Aug 06. 2024

살아있는 나를 찾은 <착한 아이 사탕이>

강밀아 글. 최덕규 그림. 글로연 도서출판

동그란 얼굴에 두 손을 얌전히 모은 사탕이  그림이 어릴 적 나 같다. 
어린아이 마음에 전략이 들어갈 때 진짜 마음과 겉으로 드러난 마음이 불일치를 이룬다. 표정이 없다.


  동그란 얼굴, 얌전하게 다문 입,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모습이 그림만 봐도 참 착하다. 이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 익숙하다. 몇 안 되는 어릴 적 나의 사진 같다. 농사일로 늘 고생하는 엄마, 아버지의 엄마애 대한 무례한 행동으로 힘들어하던 엄마, 딸 많이 낳았다고 구박당하던 엄마, 그런 속상함을 참고 인내하던 엄마, 그런 엄마를 바라보던 어린 딸, 그 딸이 바로 나였다. 


  엄마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더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다 나의 적이다. 내가 무찔러야 하는 대상이다. 나는 엄마가 하는 일은 모든 것에 동의한다.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 착해도 너무 착한 딸이 되기로 결심한다. 내가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나라도 해서는 안된다. 울지 않는다. 심부름 잘한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돈이 들어가는 일은 엄마에게 말하기 어려워 거의 안 한다. 공납금 낼 때 말하기 어려워 수십 번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선생님에게 불려 간 후 말하곤 했다. 수학여행 간다고 말도 안 했다. 소풍 갈 때도 내가 도시락을 쌌다. 졸업앨범도 사지 않았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내가 다 스스로 감당하기로 결심했다. 그림책 '착한 아이 사탕이'가 너무 나와 비슷해서 어릴 생각이 마구 올라온다. 


  사탕이는 엄마 속을 썩인 일이 없다.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다. 어른들은 손이 가지 않고 말썽 부리지 않으면 편하니까 그런 아이로 커주기를 바란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님이 나의 생명을 돌봐주는 어른이니까 그 어른들에게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는지 영혼으로 알아차린다. 실제 마음과 다르게 어른들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자기감정은 잘못된 것이고 표현하면 안 된다고 어린아이가 마음먹는 것이다.  이 그림책에서는 그림자의 마음이 사탕이의 속마음이다. 진짜 마음이다. 사탕이는 아직 어린 아이다. 무서울 때 무섭고 넘어지면 아프다. 친구들이 장난치면 귀찮고, 동생이 자기 물건을 만지거나 부러트리면 화가 난다. 하지만 사탕이는 화를 내지 않는다. 착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쁜 아이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사탕이는 얼굴에 표정을 잃어간다. 자신의 감정이 억눌러 있으니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무서워하는지, 심지어 화가 나는지도 모른다. 감정표현이 어렵게 된다. 칭찬을 해도 기분 좋은 줄도 모른다. 행복감을 느낄 수가 없다. 진짜 속마음인 그림자가 드디어 폭발한다. 진짜 너의 마음을 표현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무조건 참기만 하면 그림자인 내가 힘들어 죽겠다고 말한다. 


   어릴 적 착한 아이로만 자란 어른은 많은 정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동안 억눌러온 감정이 북극의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기 때문에 부드러운 마음을 지켜주지 못한다. 어른이 되어서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성취감도 느낄 수 없고,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감정을 느껴서는 안된다는 명령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프도 멍하고, 기뻐도 기쁨을 느낄 수 없고, 두려움도 분노도 표현이 어렵다. 사람들은 쉽게 해꼬지를 해도 화를 내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언제나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감정찌꺼기를 헤집느라 늘 괴롭다. 


  이제 사탕이는 무서울 때는 무섭다고 말하고, 아프면 울고, 싫을 땐 싫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사탕이의 무표정했던 얼굴이 다양하게 바뀌었다. 진짜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짜 착하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이 그림책을 읽고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진짜 착하다는 것은 것은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한다. 그래서 갈등이 많이 해소된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다양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니까.  그러기에 진짜 착한 사람은 어려운 일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고 여러 가지 상황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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