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 알고 싶은 미래보다 알아야만 하는 미래
“ 인간은 늘 미래를 꿈꾸고, 희망하며, 향한다 ”
우리는 막막하고 막연한 미래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합니다.
언젠가 다가올 수 있는 위기를 회피하고, 기회는 잡기 위해서
점도 쳐 보고, 미래 예측 서적도 읽어 보고, 과거 예언가들의
예언도 찾아보고는 하죠.
“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니까 이왕지사 희망지향 ”
생존 경쟁이 더욱 가속화되고 치열해지면서, 삶을 이겨내기 위해
미래의 위기를 알기보다 기회를 알고자 더 힘을 쓰게 되고,
‘그럴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긴 미래에 기대는 것이
한결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요즘입니다.
미래는 어차피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보다 지금보다 나은 희망만이
가득 차 있기를 바라는 생존 본능이 작용한 탓도 있겠지만, 지금 격는
위기가 계속 연장 되거나 또다른 위기를 맞이할 미래는 차마 용기가
없기도 하고, 미리 알아 골치만 아프기 때문에 모르고 싶을 수 밖에요.
“ 미래?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은 알게 뭐야 ”
보통 점과 예언은 ‘어떤 일이 있을 것이다’라는 모호하고 난해한 결과
또는 방향만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에
‘내가 원하는 바람이자 미래’라는 ‘희망 지향’의 습성이자 관성이
작용하여, 희망찬 결과로 해석하게 되죠.
결과적으로 점과 예언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가 ‘어떻게 될 것이다’로
뒤바뀌는 기이한 상황에 도달합니다. 이러한 점과 예언의 결과가
‘믿고 싶은 것 즉, 희망의 영역이자 기댈 언덕’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대부분 알고 있고, 실제로 ‘맹신’하지는 않기 때문에 골치 아픈 과정들까지는
더욱 궁금할리도 없고 묻지도 않게 되죠. 즉, ‘바람’에 머문 끝에, 결과로 가는
과정도 그 과정에 대한 준비나 대비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어요.
“ 미래를 당할 것이냐, 미래를 당당히 맞이할 것이냐 ”
내가 기대하며, 기대고 싶은 미래를 맞이하고 싶지만 다 내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 ‘불확실한 미래’를 피동적으로 기다리다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정 미래를 갑작 스레 맞이하게 되면, 그 미래가 무엇인지도,
시점도, 규모도 그로 인해 미칠 여파도 모르기 때문에 늘 미래에 끌려
다니기만 할뿐, 생존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죠.
“ 미래는 미지의 영역? 누군가에게는 개척의 영역 ”
대부분 이렇게 준비없이 ‘새로운 미래에 당하기만 할 때’,
신기하게도 ‘미래를 새롭게 개척하는 사람’, 이른 바 ‘First Mover’라고
불리는 선도자가 등장하곤 합니다. 이 ‘First Mover’는 선도자의 법칙에 의거,
높은 확률로 미래를 성공적으로 선점하게 된다고 하죠. 즉, 미지의 영역을
보이지 않는 미래로 접근하지 않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개간하여,
개안할 수 있도록 밝히는 개척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이단아 이자 영웅 곧, 위인이라 할 수 있죠.
“ 우리 모두가 영웅이 될 필요는 없지, 그저 보고 따를 뿐 ”
우리는 살면서 이런 위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며, 그들의 궤적과 결실을
조금이나마 닮고자, 담아 내고자 그 위인들을 연구하고 벤치마킹 삼고자 하죠.
하지만,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은 그들의 ‘High Return’ 만큼이나 무겁게
감당해야 했던 과정 곧, ‘High Risk’의 부담에 대한 부분이죠.
위인들이 대단한 것은, 고단하고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는 인내심과 끈기,
그리고 노력에 더해 운까지 따른 것이기에 그러한 부담을 우리 모두가
감당을 할 수도, 할 필요도 없죠.
“ 처음의 명예와 멍에보다, 처음을 익숙하게 만드는 실리 ”
과연 위인들만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고, 현실화에 성공해 큰 이득을
얻었을까요? 생각보다 위인들은 개척을 한 공로로 역사에 기록되었을지언정
그로 인한 실리는, 결국 응용을 잘해낸 이들이 챙기게 되었습니다.
즉, 위인들이 보았던 미래를 함께 보았고, 그 가능성과 희망을 높이 평가했기에
그 미래와 연결된 흐름 속에서, 빠르고 쉽게 실리를 챙길 기회를 찾고 만든 것이었죠.
“ 미래를 함께 보지만 첫 발은 양보하고, 곁에서 앞으로 ”
이러한 전략을 ‘First Follower’, 곧 2등 전략이라고도 하죠. 하지만 굳이
2등일 필요도 없는 것은 빠르게 1등을 뒤에서 따르다 곁에서 배우고,
결국 앞서 나가는 존재는 그 시장이 채워질 상당한 수와 시간이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누릴 수 있는, 실리를 챙기는 무리와 그들의 시간을 ‘대세’라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대세의 행보에 함께 할 수 있으면 됩니다.
“ 누군가에게만? 누구나에게 보이는 흐름을 준비한 미래 ”
그렇다면 ‘누구를, 나아가 무엇을 따를 것인가?’라고 반문해본다면,
‘생존’이라는 ‘살고자 하는 것’과, ‘더 잘 살고자 하는 것’을 추구하는 가운데
‘기술과 환경’이라는 큰 흐름의 축을 따라가면 생존에 보다 가까워 질 것이라 생각해요.
즉,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이 시대에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소재들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정보들을 엮어, 흐름을 읽어 내기만 하면 누구나 미래를 준비할 기회를 얻는 것이죠.
“ 관객은 알지만 등장인물은 모를 때 서스펜스는 시작한다 ”
하지만 흐름을 읽지 않거나 못할 때 맞이하게 될 불확실한 미래는 마치
영화 장르 중 ‘서스펜스’와 같다고 할 수 있어요.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지속되는 상태
곧, 공포와 미스테리를 흔히 서스펜스 장르라고 하죠. 실제로 미래를 모르면,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니까요.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은 “관객은 알지만 등장 인물은 모를 때
서스펜스는 시작한다”라고 말했어요. 미래의 흐름을 읽는 누군가는 관객의 입장에서
즐길 수 있는 반면, 그 흐름을 모른다면 그저 등장인물이자 희생양이 될 수 있죠.
" 관객들이 안도할 때, 비로소 서스펜스는 절정에 다다른다 ”
히치콕은 “관객들이 안도할 때, 비로소 서스펜스는 절정에 다다른다”라고도 했어요.
즉, 미래를 읽고 준비하여 관객의 위치에 섰다 해도, 이 위치에 있음을 안도하며
앞으로 다가올 흐름을 읽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죠.
“ 서스펜스는 관객이 스스로 결말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 ”
히치콕은 끝으로 “서스펜스는 관객이 스스로 결말을 상상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어요.
즉, 내가 미래에 대해 열린 결말로 치부할 경우, 준비도 없을 것이고 막연한 공포는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죠. 우리 삶이, 내 삶이 서스펜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히치콕의 말과는 반대로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죠.
“ 하지만, 불확실 속 불가피한 미래가 다가온다 ”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하지만, 사실 확실시 되는 불가피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어요.
‘기술과 환경’ 변화의 흐름들 끝에 가시화된 미래들이 있는 것이고, 그 시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특정 단계와 징후와 같은 단서들을 겪어 내는 끝에
마주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요.
'Winter is Coming'이라는 왕좌의 게임의 대사처럼, 확실히 큰 흐름의 축이
도래할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언젠가는 맞이할 ‘불가피한 미래’라면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겠죠. 현재 존재하는 여러 단서들을 조합해
불확실한 미래를 보다 확실하게 밝히고, 흐름을 읽어 불가피한 미래의 시점과
준비할 것을 미리 챙기게 된다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능동적으로 쟁취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아가 겨울을 준비해할 지, 겨울 끝 다가올 봄을 준비해야할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헤아려야 할 것 같아요.
“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른다(살전 5:2)”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중략)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즉, ‘심판의 날’이 도적 같이 이를 것이라며
교회에서는 그 뜻을 모른채 경고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말이죠.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 5:4) ”
빛과 낮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천국의 지혜를 이미 알고 있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그날이 언제오게 될 지, 오히려 그 날은 ‘천국을 맞이할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억지로 모른 척하고 외면할 뿐 ”
두려울 것도, 어려울 것도 하나도 없어요. 사실 우리는 이미 이런 ‘불가피한 미래’에 대해
이미 알고 있고, 실체를 몰라도 이미 느끼고 있으니까요. 해서, 내 뇌와 유전자와
세포 하나하나가 의식 또는 무의식 중에 인지하고 있는 미래에 대해,
‘불가피한 미래 이야기’로 자각하실 수 있도록 돕고자 해요.
큰 흐름의 축을 읽는 방법을 체감하게 된다면,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는
보다 투명하게 밝아지고, 불가피한 미래가 준비된 미래가 되리라 확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