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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시루 Jun 16. 2023

자본주의 키즈에게

0세 아이를 위한 자본주의 생존법 

자본주의 키즈에게 


그간 아이와의 일상을 기록하는데 소홀했다. 그 사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한 순간, 지쳐 쓰러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 내게 주어진 그 어느 역할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이어졌다. 아내의 임신과 출산을 전후로 세계를 요동치게 한 팬데믹은 우리 일상도 크게 바꿨다. 10여 년 전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상대적 박탈감', '번아웃'이 우리를 덮쳤다. 물론 그동안에도 크고 작은 파도가 우리 일상을 흔들긴 했으나 당시 변화는 이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실물 자산, 수익률 등 생경한 투자 용어는 일상에 깊이 침투했다. 여태 주위 어른들이 기대한 바를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새 미션이 주어진 셈이다. 지난한 인생을 가장 작은 단위로 나눠보면 모든 게 크고 작은 문제 해결 과정이다. 문제를 마주하고, 그 문제에 나름의 접근법을 택하고, 또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누적된 게 한 개인의 삶이어서다. 소득에 비해 자본의 증식 속도가 빨라 양극화가 더 심화할 것이란 피케티의 주장에 크게 공감한 시기는 최근 몇 년이다. 내 주위에서 펼쳐진 자산 양극화를 적나라하게 목격한 경험은 강렬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태어난 우리는 그에 맞는 삶의 양식을 찾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난 후, 거부할 수 없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을 지키며 생존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우리도 아직 분명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출산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다음 세대인 아이가 시장경제 논리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생존법을 찾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모두에게 맞는 답은 없지만, 우리 또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 당위여서다. 


많은 이들은 이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없이 살아가고, 이를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어 현재에 머무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적어도 아이가 자본주의 원리를 깨닫고, 나름의 생존법을 찾는 노력을 일찍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왜냐면 우리는 비교적 최근에야 시스템의 냉혹함을 접하며 큰 혼돈을 겪어서다. 한편으로 안락한 학창 시절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며 경제적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운을 타고난 데 감사하다. 특히 취업 때까지 과외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온실 속 화초'로 자랄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현재는 자본소득 등으로 인한 양극화가 아이를 습격하지 않도록 하는 게 과제가 됐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면서, 동시에 일찍 이와 같은 '세상 법칙'을 이해하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출산을 전후로 아내와 삶에 대한 여러 고민을 나누며 우리는 인생 선배들의 경험과 지혜가 담긴 좋은 책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는데 공감했다. 우리가 '일요북클럽'이란 독서 또는 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도 그에 맞닿아 있다. 


처음으로 일종의 돈 공부를 하고 있다. 성장하면서 겪은 거의 모든 교육이 노동소득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었다면 지금은 자본소득 자체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사실 아이를 위해 무얼 하는 게 중요할까란 질문은 우문이다. 내가 알아서 내 삶의 방식을 찾고 있듯, 아이도 그럴 것 같아서다. 그런 면에서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물론 여기서 내 삶의 여러 선택에 만족하는지는 별개다. 그럼에도 최선, 차선, 차차선 또는 차악의 선택에 얼마간 아쉬움은 있지만 난 내 삶에 대체로 만족한다. 아이도 아마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찾을 것이다! 


아무쪼록 지금은 아이가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현실적으로 (바라건대 시장경제 논리에 부합하는)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고민이다. 현재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시장경제 작동 방식에 빈번하게 노출시켜 익숙하게 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결국에는 많은 이들이 하는 방식으로 투자하고, 공부하며 자본시장에 오래 머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아이가 이 원리를 자연스레 수용하도록, 시장 흐름을 경험하게 할 방법을 찾고 있다. 이미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주식 계좌를 만들어 준다고 한다. 그 숫자는 팬데믹 시기 급증했다는 통계도 있다. 해당 시기 자산시장 급등을 목격한 밀레니얼 세대 이후 부모가 자식을 위해 계좌를 개설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와 같은 고민에서 이뤄진 결정임에 틀림없다. 


여기에도 답은 없으나, 우리도 모르는 복잡한 룰을 모두 알려줄 순 없지만 적어도 아예 모르고 성장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어쩌면 아이에게 양질의 양육, 교육을 제공하는 것보다 자본 논리에 눈 뜨게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세상 법칙' 속에 나름의 생존법을 찾아갈 아이에게 룰을 먼저 알려주는 건 당연해서다. 적어도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건 일찍 알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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