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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시루 Jun 14. 2023

부모라는 무게  

겪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일

부모라는 무게


요즘 들어 아이는 호불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 편의에 의해 앉혀지고, 이동되던 아이는 불호를 표현하는데 무척 적극적이다. 좋아하는 걸 좋다고 하는 것보다 싫은 걸 거부하는 몸짓과 소리는 훨씬 더 크다. 돌고래 사운드로 호감을 드러낼 때, 온몸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할 때 아이는 전혀 다른 아이로 보이기도 한다. 돌도 안 된 아이가 좋고 싫은 게 있을지 의문이라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빠란 사람이 하는 생각치곤 무척 과격했다.


대개 순한 맛을 보여온 아이는 싫다는 내색을 자주 하진 않았지만, 싫은 건 완강히 거부했다. 워낙 온몸으로 싫다는 뜻을 보여 우리를 쉽게 굴복시켰다. 부모가 원하는대로 못하는, 아니 나아가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것들을 듣고 보고 있다. 컨디션이 좋은 때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아이는 거실 한편에 마련한 놀이 공간에서 잘 놀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신호를 보낸다. 보통 일이 뭔가 풀리지 않을 때 어른들이 내는 짜증 섞인 소리와 비슷한데, 이는 0세 아이도 불호가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준다.


주중에 어린이집을 다니며 본격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는 걱정과 달리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다. MBTI로 골수 'I'형 부모인 우리와 달리 높은 사교성을 보이며 어린이집 아이들, 선생님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워낙 관찰력이 좋고 주변에 관심이 많아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다른 반 선생님들은 그 모습을 귀여워한다고 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가정 보육만 해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까 싶었던 우리의 걱정은 기우였다. 오는 7월 아내가 복직을 하면 어린이집에서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내야 하는데, 앞으로도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5월은 여러 가족 행사 등으로 비교적 장거리 외출과 모임이 잦았다. 부부에서 부모가 되니 피할 수 없는 행사가 더 늘어난 것 같다. 올해는 어린이날이 주말과 이어져 연휴였다. 우리는 외출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미리 예약한 전시를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그동안 비교적 가까운 곳만 다녀본 아이가 차로 1시간 내외 거리를 잘 버텨줄지 걱정이 됐다. 이동 중 아이 컨디션이 나빠지면 집으로 돌아올 심산이었다. 아이와의 외출은 항상 변수가 가득하다. 아침에 내린 비로 길은 다소 복잡했지만, 우리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강 건너 목적지에 도착했다.


같은 직장에 다니며 4살 여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료 부부를 만났다. 결혼 전부터 같은 회사에 다녔던 터라 '결혼-출산-육아' 경로를 함께 밟고 있어 의지가 됐다. 아이에 대해선 얘기도 듣고 사진으로도 봤지만 실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안타깝게도 팬데믹 때 태어난 아이는 강제로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이로 인해 겪는 발달 문제는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동료도 걱정이 없진 않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가 걱정과 달리 잘 자라줘서 안도했다! 사실 코로나19가 대재난이었기에 정부 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부모 입장이 되니 다른 무엇보다 이런 데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나 정부는 후속 세대가 중요하고 낮은 출생률이 국가 소멸을 가속화할 것이란 비관론을 내놓고도 이런 문제에는 무관심한 것 같다.


아이는 다행히 밝은 모습이었고, 키도 크고 말도 잘했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와 함께 두고 보니 어엿한 어린이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성인으로 몇 년 차는 쉽게 친구가 되는데, 영유아 단계에서 몇 개월은 정말 큰 차이라는 걸 실감했다. 우리 아이와는 몇 개월이 아닌 몇 년 차이가 났으니 정말 '큰 어린이' 같았다! 아이를 키우며 작은 아기나 어린이를 보면, 아이 곁에 있는 부모를 더 유심히 보게 됐다. 아이를 저만큼 키우느라 부모가 얼마나 고생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한 번도 깊이 하지 못한 고민이었다.  


어른이 된 아이가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별개로, 부모가 되기 전까지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가 양육에 쏟았을 고생을 절대 상상하지 못한다. 왜냐면 부모라는 경험이 겪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일이어서다. 우리도 그랬고 다른 부모도 그랬을 것이다. 부모가 되는 일을 쉽게 정의할 수 없고, 다른 어떤 일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또 아이-부모 관계가 지극히 개인적이란 점에서 이 경험의 무게는 같을 수도 없다. 대신 아이를 키우며 겪는 일이 무엇하나 쉽지 않다는 점에는 모든 부모가 공감할 만하다. 어려운데, 뭐라고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라고 해야 할까?


나 역시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될 결심을 하고 부모가 된 게 아니라 부모의 무게를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 '아이 있는 삶'의 무게를 알고 나서야 '아이 없는 삶'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출산을 고민하는 부부가 '아이 있는 삶'에 대해 알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부모의 무게를 이겨내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부모가 된 선택을 지지하는 목소리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양육 환경 조성이란 배려가 필수적이다. 모두 같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닐 테지만, 오늘도 하루를 이틀 아니 그 이상으로 쪼개 쓰고 있을 부모에겐 그런 응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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