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이를 위한 건가요?
아이의 첫 돌, 지워진 8월
우리는 생애 내내 보이지 않는 뭔가를 찾아 헤매다 그 끝에 닿는 것 같다. 답이 없는 삶에서 육아는 이에 대해 생각할 짧은 여유도 허락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본질에 더 다가가게 한다. 내 앞에 임의적으로 놓인 아이란 존재와 부모-자녀 관계를 맺고, 그에 대해 평생을 탐구하게 해서다. 사실 이는 어떤 개념어에도 온전히 담기지 않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몸부림을 무한반복해야 한다.
아이 돌을 앞두고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 힘들다는 육아 첫해를 잘 넘겼다는 안도감, 이제 입문한 육아 세계에서 더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 주기가 하루로 짧아진 내 일상을 어떻게 지속할지에 대한 의문 등이 핵심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떻게 해도 100% 날 것을 주변에 전하기 어렵다. 완벽하게 같은 부모-자녀 관계가 없어서 일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난 힘겹게 흘러간 8월, 한 달을 기록하려고 한다.
부모-자녀 관계가 아무리 중요해도 우리 일상을 흔들어선 안 된다. 일테면 관계를 빛나게 하는 의례라도 적당히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올 8월로 아이를 만난 지 꼭 1년이 됐다. 우리 셋에게 뜻깊은 달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의미를 되새길 여유는 사치였다. 첫 몇 주는 아내 복직으로, 이후 보름은 ‘돌치레'와 가족모임으로 지워졌다. 생후 12개월 전후로 아이가 이유 없이 아플 수 있다는 얘기는 자주 들었다. 돌치레의 원인은 생후 6개월 후 엄마로부터 받은 면역력이 소진되며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져서란다. 3월부터 시설에서 생활한 아이는 약 2~3주 주기로 감기 등을 앓았고, 직전에도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치료받은 터라 돌 때도 아플까 싶었다.
8월 초, 아이는 앞서 걸린 바이러스성 질환에서 회복하고 있었다. 돌 치레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는 돌 전후로 가족을 만나고 심한 발열은 없었으나 가벼운 기침, 콧물 등의 증상을 보였다. 지나고 보니 아이 컨디션이 부모, 가족의 욕심 때문에 나빠진 것 같기도 했다. 좋은 뜻으로 챙기는 돌잔치가 아이에게 해가 될 가능성은 복잡한 의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른도 피곤하게 만드는데, 아이 컨디션을 망친다고 생각하지 못하면 넌센스다. 알면서도 한다고 하면 말릴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를 의례를 위해 아이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돌잔치를 건너뛰기로 한 이유였다. 아쉬워하는 부모님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뺏지만 우리에게는 결혼식, 백일잔치까지가 임계치였다. 돌잔치로 인한 후폭풍을 막기 위해 아이 조부모 등을 대상으로 한 설득에 공을 들였다. 그럼에도 잔치를 대신할 가족 모임은 피할 수 없었다. 돌잔치를 치르지 않기로 했기에 양가 부모님이 원하는 방식을 최대한 고려해 모임을 계획했다. 광복절 전후 교외에서 친가 가족 모임을 하고, 그다음에는 집에 돌 상을 차리고 처가댁 부모님을 모시기로 했다.
돌잔치를 대신하는 모임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게 아니면 우리는 집에 돌 상을 차리고, 가족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주문해 먹을 생각이었다. 그나마 처가댁 모임은 우리 계획의 확장판이어서 돌 떡, 아이를 데리고 갈 식당 등만 찾으면 됐다. 2주 연속 치러질 돌잔치 대체 가족 모임에 앞서 아이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달 걸린 호흡기 질환에서 거의 나은 것 같아 걱정하지 않았다. 워낙 바깥 활동을 좋아하고, 차를 잘 타는 아이라 이동 단계까진 순조로웠다.
계획이 틀어진 건 예상보다 오래 차를 타고 이동하며 피로도가 높아져서였다. 도착 때까지 양호했던 아이 컨디션은 밤이 되면서 나빠졌다. 먹고 있던 콧물약에 해열제도 먹어야 했다. 상비약으로 준비한 열패치를 이마에 붙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첫 돌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아이가 열패치를 붙이고 있게 된 것이다. 아이의 조부모, 고모 내외가 어렵게 모였지만 선한 의도에 반한 상황이 펼쳐졌다. 이렇게 된 이상 가족 모두가 좌불안석이 됐다. 밤 사이 우리는 아이의 열이 내리길 바랐다. 일단 열만 잡히면 아이 컨디션은 금세 나아지기도 해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밤새 아이 컨디션이 나아진 점이다. 첫 돌을 축하할 완벽한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아프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모임에 참석한 모두가 불편한 가운데 첫 돌을 축하했고, 아이 컨디션을 고려해 빠르게 자리를 정리했다. 1차 가족 모임을 치렀지만 다음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아이를 위한 자리라고 하지만, 돌잔치와 같은 의례에는 부모 등의 가족이 욕심을 투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나마 아이가 컨디션을 회복했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이제 2차 모임 목표는 아이가 아프지 않고, 모임을 마무리하는 게 됐다. 노심초사한 덕에, 또 1차 모임에서 한 차례 소동을 겪은 덕에 아이는 무리 없이 2차 가족 모임을 치렀다.
아이가 아파서 또 돌잔치 대체 가족모임을 하느라 이번 8월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누군가 내게 아이의 첫 돌을 의미 있게 보냈는지 물으면, 자신 있게 그랬다고 답할 수 있을까? 아이와 특별한 날을 보내고 싶은 부모, 가족의 욕심이 아이를 구속하는 건 아닌지 잘 살펴야 할 것 같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예비 또는 초보 부모에게 우리의 좌충우돌 경험담이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