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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시루 Sep 05. 2023

참견과 응원 사이

책임지지 못할 오지랖은 절대 금지! 

참견과 응원 사이 


아내 복직 후 우리 육아는 임기응변의 연속이다. 그래도 주변에 고군분투하는 우리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있어 든든하다. 육아가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고, 이미 부모가 된 이들도 육아기 기억이 희석돼 현실을 알 수 없어 그렇다. 또 아이의 모든 것을 옆에서 챙기는 일이 지난하고, 끝없는 도전이라 더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육아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는 말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만큼 아이는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거쳐 성장한다. 


돌이 지난 아이와 그동안 내가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계산해 보면 새삼 겸손해진다. 출산, 육아휴직으로 아내가 10개월 이상 주 양육자로 아이를 돌봐준 덕분에 그 기간 내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출근 전 아이를 1~2시간 정도 보고, 퇴근 후 일찍 자는 아이를 1시간 내외로 보는 정도였다. 매일 이 패턴을 지킨 것도 아니었으니 하루 1~2시간을 아이와 함께 한 셈이다. 아내 복직으로 아이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점은 가족 모두에게 좋은 변화다! 


돌이 지나며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난 아이는 오전 5시 반, 6시면 눈을 뜬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 혼자 잘 있는 편이다. 근래 부쩍 말이 늘어 일어나자마자 '엄마', '아빠'를 부르는 소리가 커진 건 신기한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 알람이 아닌 아이가 잠에서 깨는 소리에 아침을 시작하게 된 점은  기분 좋은 일이다. 아이 소리가 알람보다 좋은 소리여서고, 쫑알쫑알 소리 내는 아이가 작은 아기새와 닮아 귀여워서다.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면 우리도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아침 7시 전후로 출근길에 나서야 하는 아내가 준비하는 사이 나는 아이를 챙긴다. 돌 전후로 아침잠이 없어진 아이 덕분에 날이 좋으면 동네 산책을 하고 있다. 출근하는 엄마를 따라 주차장에 가서 엄마와 인사를 하고, 동네 구경겸 산책을 시작한다. 가까운 곳에 도심 하천이 있어 천변 산책로를 따라 아이와 함께 세상 탐험을 한다. 들리고 보이는 게 많아진 덕에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운동, 산책하는 사람과 마주치면 어린이집에서 배운 개인기를 선보인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흔들기도 하고, '안녕'과 비슷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또 동네 어른이 다가와 아이를 예뻐하면 방긋방긋 웃는다. 이렇게 산책을 시작한 지 3주 이상이 지나며 아침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이는 산책을 하며 기분이 좋은지 더 잘 웃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해 냈다. 또 온몸으로 날갯짓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도 아이와 함께한 1시간 산책으로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한다. 모두 아이 덕분이다! 결혼 전부터 아침 운동을 해왔지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또 다르다. 


물론 절대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라 부모는 부담을 갖지 않아야 한다. 개별 부모, 가족이 처한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한 가지 처방을 모두에 적용할 수 없다. 아내 복직 후 아침 시간에 더해 퇴근 후 아이가 잘 때까지 1시간가량을 함께 보낸다. 주중 하루 3시간 내외를 아빠 역할을 하는데 쓰고 있는 셈이다. 하루 24시간 중 3시간이면 1/8이다. 어떻게 보면 길고, 짧다면 또 짧다. 그나마 직장이 가깝고,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어 아침을 자유롭게 쓰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육아를 하며 주변 사공들의 참견을 자주 접하고 있다. 아이 조부모, 동네 지인, 아이를 먼저 키운 지인 등 셀 수 없다. 진심 어린 조언은 고맙지만, 선 넘는 참견은 사양하고 싶다. 장기판 훈수는 쉬워서다. 자신이 온전히 책임질 일이 아니니 더 많은 수가 보일지 모른다. 우리 주변의 훈수가 선을 지키는 '적당한' 관여라면, 둘이 감당해야 하는 육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적당하다는 기준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또 세상을 살며 나도 부지불식간에 다른 사람 일에 그렇게 관여했을지 모른다. 


육아를 하면서는 다른 사람 일에 혹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도 쉽게 나서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선택, 결정은 절대 없어서다. 나와 생각이 같더라도, 각자 여건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다. 육아 등에 있어 우리 여건을 다른 이들이 온전히 다 알 수 없듯이 다른 이들의 삶을 내가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아니 오만이고,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나, 내 가족 하나 챙기며 살기에도 바쁘고 힘든 세상이다. '확장' 가족이 애매할 때가 가장 많다. 그들의 조언을 단순히 참견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인연이 남달라서다. 그래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육아 전선에 있는 우리 같은 부모에게 필요한 건 '이래라저래라' 류의 참견이 아닌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란 사실이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 선택이고, 우리가 감당할 몫으로 보고 넘어가면 좋겠다! 자녀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부모다. 자녀 인생에 훈수 둘 여유가 있다면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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