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런 교육은 7살짜리에겐 아니지 않나요?
나는 코로나 시기 이전에는 매년 한 번씩은 와이프와 일본에 놀러 가곤 했다. 일본의 문화와 예술, 생필품, 가전 등의 전반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꼭 해야 하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난 한국 사람으로서 “나는 일본을 좋아한다.”라는 말은 참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함부로 뱉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 많다. 나 또한 일본이 과거 우리나라에게 했던 식민지 지배와 수탈, 위안부 동원, 인체 실험 등 잔악한 행동을 했던 일들을 외면하거나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일들은 우리 민족에게 지워지지 않는 크나큰 상흔으로 남은 일이고 그때의 그 잘못되었던 모든 일들은 그들이 반드시 진심으로 사죄해야 하고 우리는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사과받아야 할 것이다. 정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 단위의 잘못이 개개인이나 기업에게 짐이 지워지면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유아 시절부터 일본의 문화를 가깝게 받아들이며 자라왔다. 후뢰시맨, 바이오맨, 가면라이더, 울트라맨 등등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보고 자랐던 비디오 속 영웅들은 온갖 더빙과 가위질, 캐릭터 설정 로컬라이징을 통해 그 모든 것들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척을 해댔지만 사실 그것들이 모두 일본에서 만들어진 거라는 건 6살 먹은 콧물 찔찔이였던 나도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일본 문화 규제가 있던 시절에 어린 날과 젊은 날을 보냈다. 1940년대부터 시작한 일본 문화 규제는 초반 40년 간은 식민지 문제 같은 감정적인 문제가 컸을 테지만 후반 20년은 너무나도 압도적인 규모와 퀄리티를 자랑하는 일본의 문화가 한낱 개도국인 대한민국의 문화를 짓뭉개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이점에 대해 이해하는 바이다. 내가 정치인이었어도 딱히 그런 방법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내 말이 나보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매우 의아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옛날에는 일본 문화를 규제했다고? 사실이야?”라고 말이다. 사실이다. 인터넷에 찾아봐라. 그렇지만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고 듣지 말라면 더 듣고 싶은 법, 몇몇의 우리는 온갖 보따리 장사와 인터넷 다운로드 등을 활용하여 온갖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 음악,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등을 보며 자라났다. 왜 자국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물론 그 시절에도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영화감독들과 음악가도 많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유명한 에반게리온이 일본 TV에 방영하고 있을 때 한국에선 두치와 뿌꾸를 하고 있었다. 물론 두치와 뿌꾸도 귀엽고 재미난 부분은 많지만.. 이건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고등학교 사생대회 우수작만큼의 아마득한 차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둘을 다 본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토와테이가 1집을 내던 시절 한국에는 룰라가 100일째 만남을 부르고 있었다. 일본에서 영화 러브레터가 개봉했을 때 한국에선 무슨 영화가 개봉했지.. 솔직히 찾아봐도 모를 지경이다. 나는 지금의 한국의 문화가 갑자기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당시 우리네 젊은 세대가 일본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그것이 반영된 결과물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말에 반박한다면 뭐 각자의 생각들이 있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는 과자, 조미료, 만화, 캐릭터와 완구, 음악, 드라마, 디자인, 영화, 예능, 패션까지 대부분의 것들을 일본을 교묘하게 베끼며 성장해왔다. 마치 지금의 중국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그러하듯이 말이다. 아니면 아주 오래전 전쟁에서 패망하고 일어서려는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그러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들 그 표절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내로남불을 시전 하며 서로를 혐오하는 이유의 첫째로 손꼽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일본을 사랑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의 정치인들을 혐오하고 일본의 악랄한 과거사는 증오하지만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나는 일본 문화의 영향력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자라난 한 명이기에 그것을 부정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일본 여행을 가면 내가 한국에서 동경하고 애착하고 그리워하던 것들 옷, 신발, 책, 음반, 게임기, 게임 소프트웨어, 피규어, 캐릭터 굿즈 등을 여기저기 쏘다니며 구경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끝도 없이 행복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도대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만들어진 곳, 그것들을 기를 쓰고 지켜내는 곳을 내 어찌 싫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또 어쩜 가게마다 간판들이 그리도 혐오스러운 디자인을 한 녀석을 찾아보기가 힘든 건지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다. 한국처럼 “제발 나를 봐!! 나를 봐줘!! 나를 존나 보라고!!”라고 외치는 것마냥 형광색, 경고 색으로 중무장한 쓰레기 로고와 쓰레기 폰트로 덕지덕지 처바른 대형 간판을 일본에선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나를 일평생 짓누르는 시각 공해에서 벗어날 수 있어 무척이나 행복해진다. 뭐 그것뿐인가? 나는 하다 못해 일본의 자동차 도로와 인도의 사이에 존재하는 선의 반듯함과 말끔한 마감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산뜻하게 좋아진다. 또 음식은 어떠한가? 반드시 맛있는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집착과 새로운 탐구 정신으로 가득 찬 먹을거리들을 찾아 나서는 건 정말이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나는 일본 여행을 한번 다녀오면 한국에서 일본에 있었던 기간만큼 시름시름 앓는다. 갓 다녀온 일본이 그리워서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나를 매국노 취급을 할 것이다. 씨발, 파시스트 같은 종자 같으니라고. 말해두지만 나는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위해 일반 병사들이 갈 수 있는 군부대중 가장 힘든 편이라는 기동대대라는 곳에 가서 평균 월급 7만원을 받으며 2년간 군 복무를 했으며 영상 제작업으로 개인사업자를 등록해 매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큰 금액의 세금을 국가에 지급하고 있다. 그리고 사무실에 직원을 여럿 두어 국가의 골칫거리인 청년 취업률에 일조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만약 일본에 푸틴처럼 미친 정치인이 있어 모종의 이유로 우리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면 하던 일과 가족을 내팽개치고 총을 메고 일본 놈들에게 정의를 시전 하러 떠날 것이다. 나도 그 정도의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는 인간이다. 그런 나를 일본의 문화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비난한다면 그런 인간은 정말 파시스트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나 그 인간이 군대도 다녀오지 않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주제에 백수라서 세금도 제대로 내본 적이 없는 인간이라면 나는 정말 멱살 잡고 싸울 자신이 있다. “너는 왜 씨발 키보드로 말 뿐인 애국을 하고 있냐고 말이다. 진정한 애국은 애꿎은 타국을 비난하고 혐오하느라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 한 푼이라도 더 세금을 내거나 자신의 자리에서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기꺼이 소비하게 하여 수출에 기여하는 것이 애국이고 성숙한 국민성을 갖추어 타국의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것이 애국이며 또 좋은 문화와 예술, 음악 등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애국이다.”라고 윽박지르며 싸울 것이다. 알았냐 썁새야.
아이고, 하여간 사족이 무지하게 길었다. 이 긴 사족은 지금부터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가족끼리 밥을 먹다 무심결에 와이프에게 “코로나가 끝나면 우리 다 같이 일본부터 가자. 이제 못 참겠다. 정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뜸 7살 난 (만으로 5살) 우리 아들 세준이가 “아빠!! 일본은 나쁜 나라야!! 절대 가면 안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세준아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나는 조심스레 세준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세준이는 “선생님이 일본이 옛날에 우리나라한테 못된 짓 많이 하고 괴롭혔다고 그랬어. 그래서 절대 일본에 가면 안 되고 일본 물건도 사면 안 된대!!”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어린애가 참 똑 부러졌구나 생각하겠지만 그건 모르는 말씀. 이건 뭐 북한 주민들이 어렸을 적부터 “우리가 못 사는 이유는 미국 양키 놈 때문입네다. 우리가 위대한 수령님의 총 칼이 되어 그 양키 놈들의 배때지를 갈라야 합니다!”라고 듣고 배워서 늙어서 까지도 앵무새 마냥 그 말을 반복해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가치관이 제대로 서지 않은 만 5세의 아이에게 지금 국가 간의 혐오라는 가치관을 주입시키고 “NO JAPAN”이라는 극단적인 캠페인을 강요한다는 것이 나는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나는 전화로 이 점에 대해 유치원 선생에게 격하게 따지려다 괜히 세준이가 선생님 눈 밖에 나지 않을까 싶어 꾹 참았다. 원래 성질대로라면 5초도 안 걸려 전화기를 들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유치원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줬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일본은 우리에게 나쁜 행동을 했어. 정말 나쁜 짓들을 말야. 지금도 일본은 제대로 사과를 안 하고 있는 것도 맞아. 그건 너무 잘못한 행동이야. 하지만 그것들은 너의 할머니의 어머니 시절의 이야기이고 2020년도를 살아가는 일본과 우리는 언제까지고 미움만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어. 이제 일본은 그 점에 대해 우리가 납득이 가는 방식으로 사과를 해야 하고 우리는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해야 해. 그리고 일본의 정치인들이 잘못한 거지 일본의 개개인들과 일본의 문화, 예술, 음악이 잘못되고 나쁜 건 아냐. 분노와 혐오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오직 또 다른 분노와 혐오뿐이야. 그걸 종용하는 어른들은 정말 나쁜 어른들이야. 그게 선생이건 대통령이건 간에 말이야. 그리고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는 건 가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감정은 무서운 감정이니까 설령 네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너의 생각의 힘으로 결정할 문제고 책임질 문제야. 절대 다른 사람의 강요와 세뇌로 이루어져서는 안 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 필요한 건 사죄와 용서, 화해와 교류라고 생각해. 너의 의견은 어떠니?”라고 말이다. 만약 그 선생이 지금 내 말을 듣고 "저렇게 어려운 말은 아직 어린 아이가 이해할 수 없다."라고 판단한다면 그렇다면 좀 이 주제는 커서 말해줘도 그다지 늦지 않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본인의 능지가 딸려서 저렇게 표현할 수 없다면 이런 것들은 가정교육으로 남겨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이런 건 내가 잘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한테 맡겨주면 뒤에 이 말도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포켓몬도 파워레인저도 닌텐도 스위치도 마리오도 다 일본에서 만든 거야.”라고 말이다.
나는 기본 적으로 음모론자 기질이 있는 사람이기에 유치원에서 저런 교육을 하는 게 국가차원에서 교육 지시 사항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구심이 든다. 이번 정권이 워낙 반일 정서가 강한 정권이라 더욱 그러하다. 어느 국가나 집단이 혐오와 분노라는 광기로 물들었을 때 그 악취는 어마 무시하다. 나는 그것들을 견뎌내고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걸 만 5세의 아이에게 강요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애를 가진 부모로서 정말이지 정중하게 부탁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