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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No Man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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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원 Mar 09. 2022

MZ세대의 청년 정신

“씨발, 젊게 살거다. 나의 방식으로.”

서른여덟 번째 입춘이 얼마 전 지나갔다.

이제와 새삼 한 살을 더 먹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한 해마다 새로운 존재가 되어 가는 7살짜리 아들을 바라보는 것은 한 없이 신기한 일이지만 말이다. 내가 느끼는 38살은 젊음과 늙음 사이의 연옥과도 같은 나이이다. 젊다고 믿으면 젊은것일 테고 자신의 젊음에 있어 약간의 의구심도 필요 없을 정도로 마냥 젊기만 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말도 섞기 싫을 정도로 늙어버린 나이. 나는 그런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나는 지금도 나 자신이 아직까지는 젊다고 믿고 있다. 내게 젊음이란 개념은 숫자에서 오는 것도 신체적 특성에서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 스스로 판단하기에 옳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자기 전 이불 킥 몇 번 한 다음 그것을 능히 수정해낼 수 있는 것이 젊음이다. 마음이 뛰고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얼마든지 앞뒤 안재고 들이받아 얻어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젊음이다. 돈도 좋지만 돈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이 젊음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해 애쓰는 삶이 젊음이다. 세상에 불의가 있다면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마땅히 싸워내는 것이 젊음이다. 나는 이 기준을 스스로 만족시키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 있는 동안은 나 스스로 젊음 속에 있다고 믿는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인터넷의 한 아무개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를 만족시킬 1명의 래퍼가 탄생하기 위해선 999명의 지망생들은 마땅히 희생하고 버려지고 잊혀서 세상을 탓하며 마약에 절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이 말은 심히 틀렸다. 설령 1000명의 마약쟁이 사이에서 1명의 고결한 아티스트가 생겨나는 것이 정녕 사실이라 하더라도 정말 그래서는 안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15세의 어린 여동생들과 같은 제봉 시다들이 닭장 같은 재봉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을 일하는 것에 슬퍼하고 안타까워 자신의 몸을 불살라 세상에 그 사실을 알렸다. 그는 그렇게 영원한 젊음을 얻고 동대문 청계천 다리 한켠에 놓인 동상이 되어 자신이 지키려 한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놓여있다. 이하 전태일이 남긴 글이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나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참 아름다운 말이다.


청년 정신이란 무엇일까? 지금 내 말에서 군내가 난다고 생각하는가? 철 지난 옛날이야기인 전태일 얘기까지 꺼내니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아주 신물이 나서 못 견디겠는가? 청년 정신이란 말 자체가 구리게 느껴지나? 그렇게 느낀다면 너는 나이는 젊었음에도 그 정신은 썩어 문 들어져 살아있는 시체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인간인 것이다. 너 스스로 그것을 알아야 한다. 1명의 위대한 아티스트가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 산업에 있어 커다란 영광이다. 하지만 그토록 위대한 것은 쉽사리 얻어낼 수 없기에.. 심지어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수많은 운도 함께 따라야 하고 그 주변의 환경도 무척이나 중요하며 해당 아티스트의 재능의 여부도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1000명의 도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999명이 마약에 쩌들어 평범한 인생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그 999명의 도전을 우리는 높이 사야 하고 그 999명이 평범한 우리의 일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응원하여야 할 것이다. “큰 일에 도전하느라 수고했다.” 며 감싸줘야 할 일이다. 너는 마약의 폐해를 너의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여 쉽사리 그런 말을 뱉는 것이다. 너는 전태일과는 달리 15세의 소녀들이 닭장 같은 재봉공장에서 16시간을 일해도 “그것이 우리나라의 산업을 지탱해주고 부유한 국가로 만들어줄 수 있으니 마땅히 그래야 한다.”라고 말할 더러운 돼지새끼에 불과하다. 이 철딱서니 없는 개 같고 병신 같은 힙찔아. 눈을 뜨고 세상을 봐라.


너는 아마도 외국의 멋진 뮤지션들은 마약을 통해 그 영향으로 인해 우리를 감동시킬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서도 토를 달 생각이냐고 너는 물을 것이다. 자 내가 아주 논리 정연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주겠다. 아주 솔직하고 명징하게 말이다. 나는 대마초를 마약이라 생각지 않는다. 만약에라도 광화문 한복판에 대마초를 좌판으로 깔아놓고 전 국민에게 대마초를 한 모금씩 해보라고 하자. 그런 다음 이 것이 나라에서 말하듯 그리도 해로운 것이란 생각이 드느냐고 물어보자. 대마초의 합법 여부에 대해 미디어나 여론 등의 통제 없이 본인의 판단으로 그것을 판단하게 하여 보자. 대마초는 마약일까? 그렇게 해로운 것을 미국과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서 합법화시켰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심지어 나는 LSD조차도 가끔 재미로 한번 해볼 수 있는 약물이라고 생각한다. 되려 술이나 담배가 되려 그 약물들보다 해로울 여지가 클 것이다. 나는 만약 우리나라가 여느 선진국처럼 대마초를 합법화한다면 매일 같이 대마초를 한대 피우고 잠을 자거나 글을 쓸 것이다. 아주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왜?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인식에서는 대마초나 LSD나 필로폰이나 펜타닐이나 헤로인이나 다 같은 약물이니 말이다. 해당 마약의 해악 여부에 비해 무지막지한 형벌을 때리는 이 나라에서 왜 그런 손해를 보며 내가 굳이 마약을 하겠냔 그 말이다. 애도 있고 가정도 있고 사업체도 있는 사람이 말이다. 하지만 이건 나뿐만이 아닌 예술가 지망생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미래를 망칠 필요는 없다. 술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 그것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내가 저격한 것은 펜타닐이다. 펜타닐과 대마초의 차이는 고양이와 호랑이만큼이나 다르다. 같은 고양잇과 동물이지만 하나는 사람을 잡아먹고 하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것이다. 펜타닐은 조금의 과복용으로 인해 사람을 정말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약물이다. 펜타닐은 강한 중독성으로 인해 잠시만 그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약이다. 멀쩡한 랩 지망생 청년이 그 마약에 중독되어 해당 마약을 구하기 위해 랩 레슨을 빌미로 우리의 소중한 어린아이들인 고등학생들을 그 무서운 마약에 중독시킨다. 그 아이들은 마약 패치 하나를 더 하기 위해 서로를 죽인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펜타닐이다. 나는 내 주변 인물 중 몇 명이 어느 순간부터 일상생활에서도 초점 잃은 동공을 하고서는 뇌가 녹아내렸는지 평범한 대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또 나는 어느 한 명이 일상생활을 하다가 마치 컴퓨터가 블루 스크린이 되어 멈춘 것처럼 제 자리에 석상이 된 것처럼 굳어 20분간 가만히 있는 것 또한 본 적이 있다. 이것은 대마초와는 명백하게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이래서는 우리네 아이들이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올 수가 없다. 그리고 마약도 무섭지만 마약을 거래하는 인간종들이 더 무섭다. 마약을 팔고 거래하는 족속들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정상이 아니다. 인생에 바닥이 있다면 그 아래의 바닥을 찍은 존재들이다. 그들과 어울리게 된 인간에겐 파멸만이 존재한다. 수많은 악의와 갈취, 파탄으로의 유도가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다. 차라리 그들과 마주치고 인맥을 쌓아갈 바에는 마약 가게에서 대놓고 파는 게 나을 지경으로 말이다. 나는 그런 세상에서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영상을 수업을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써 아이들을 지켜내고 싶었다. 이렇게 말했음에도 너가 마약을 잔뜩 빨아재낀 뮤지션들의 음악을 그리도 듣고 싶다면 이 땅의 대마초 흡연을 합법화하고 LSD 정도는 경범죄 처분을 받을 수 있게 하도록 운동에 가담해라. 김부선과 전인권, 빌 스택스 등의 옆자리에 앉아 전력을 다해 시위해라. 나는 충분히 동의하고 응원하겠다. 나는 딱히 하고 싶지 않다. 그딴 것 없이도 잘만 살고 있으니 말이다.


마약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이 이외에는 하고 싶은 말도 없다. 사실.


나는 아이돌 문화도 그런 의미에서 전심전력을 다해 욕을 하고 싶다. 이런 나를 꼰대라고 비꼬고 욕해도 상관없다.

사실 나는 아이돌들의 곡이나 뮤직비디오, 그들의 활동에 대해 비하하거나 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되려 그 높은 수준에 감탄을 금치 못할 때도 많다. 그러니 글을 끝까지 읽고 욕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들은 사실 그것을 소비하는 행태에 대한 비난에 가깝다. 내가 느끼는 우리나라는 소아성애에 있어 무척이나 관대하다. 그 어떤 나라보다 더욱 관대하다. 웰컴 투 비디오로 유명한 손정호는 6개월 된 아기의 성폭행 영상을 인터넷에 업로드하였음에도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난 그 아기를 생각하면 피눈물이 나고 주먹이 아려온다. 그럼에도 그의 아버지는 자식의 형이 과하다며 언론에 아우성을 쳤다. 이쯤 되면 차라리 나라에서 소아성애를 권장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나는 30살, 40살의 아저씨들을 위하여 15살 혹은 17살쯤 먹은어린 여자 아이들이 짧은 치마에 탱크 탑을 입고 나와 야한 춤을 추는 문화가 존중받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이전 글에서도 말한 부분이지만 정말 국위선양만 해서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오, K-POP 쪼아요~”라고만 하면 그것이 용인되는 것인지에 대해 묻고 싶다. 왜 아이돌을 직업으로 삼은 어리고 젊은 남녀가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대해 늙고 해진 당신들이 분노하고 피를 토해가며 배신당했다고 지랄 염병을 떠는지 나는 묻고 싶다. 왜 그들이 언젠가는 당신들을 만나 줄 것이라 생각했나? 당신들은 뮤지션의 무엇을 좋아했던 것인가? 몸매? 얼굴? 역겹다. 거울을 보라.


멀쩡한 이성애자 남성 아이돌들을 게이로 설정하여 적나라한 성애를 하는 것을 소설로 담아내는 것이 용인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중에는 분명 미성년자인 멤버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아이돌이라는 직업으로 사랑받으며 성공을 하려면 마땅히 겪어야 할 과제 등으로 생각이 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도대체 어디까지 썩었다는 말인가?


(나는 이전에 아이돌 뮤직비디오도 몇 편 찍은 전력이 있다. 나는 워낙 아이돌 문화에 대해 몰랐기에 별 거부감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몇 년간 해당 작업들을 하며 관련자들을 알게 되고 해당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그런 일들을 받지 않게 되었다. 사실 마지막 뮤직비디오 이후로 두세 번 정도는 아이돌 뮤직 비디오 작업 의뢰가 들어왔지만 나는 그 일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10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 문화에 기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너도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찍어 넣고 혓바닥이 길다.”라는 표현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가정이 있고 직원이 있고 프로덕션이 있는 자가 몇 천만 원, 몇 억에 달하는 자신의 업무 건을 쉽게 거절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나는 위에 해당되는 범죄와 같은 두 가지 문제만 해결이 된다라면 능히 다시금 K-POP을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돌 문화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커다란 문제들은 다른 방식으로 서서히 해결해나가더라도 말이다.


소아성애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프라모델과 게임을 좋아한다. 스스로 오타쿠라고 자칭하는 편인 인간이다. 나는 이제 플스 등으로 나오는 일부 게임들은 정말 새로운 세대의 예술의 표현 방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갓 오브 워”, “호라이즌 제로 던” 등의 게임을 하고 있노라면 여느 영화나 드라마가 부럽지 않은 새로운 방식의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게임을 권장한다. 여느 부모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나는 새로운 프라모델과 게임의 정보를 얻기 위해 루리웹이란 커뮤니티에 들어가곤 한다. 그곳은 나에게 무척이나 고마운 사이트다. 그런 정보들이 모여있는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루리웹의 유머 게시판 등을 들어가 보면 어린 여성들이 적나라하게 성적으로 묘사된 일러스트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오타쿠 문화의 어두운 단면이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섭다. 이러니 사람들이 오타쿠를 그렇게 혐오하지. 누군가는 그것은 그림일 뿐 실제 사람이 아니라 괜찮지 않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정신인가? 당신은? 나는 그것이 어떻게 용납될 수 있는 것인지 너무나도 무섭다. 내가 딸을 낳게 된다면 6살짜리 아이를 13살짜리 아이를 그런 더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더러운 종자들이 대한민국 땅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는다. 나는 오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 말이 과장되었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다. 이게 비단 남자만의 문제인가? 여초 커뮤니티에도 단체로 어린 남자아이를 성 착취하는 사건이 연일 인터넷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이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문제다. 정말 당신들은 이런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가?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들을 바꾸는 건 무리라 하더라도 그들이 버젓이 그런 행동을 하도록 두면 안되지 않을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지켜보자. 그들의 수는 정말이지 당신의 상상보다 많다.


남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한남들과 꼴페미들 간의 싸움도 문제가 많다. 왜 서로를 그런 명칭으로 규정짓고 왜 그렇게 죽도록 싸우는가.

레디컬 페미니즘에 가담한 여인들이여. 당신들을 서럽게 한 자들은 누구인가? 당신의 어머니를 그렇게 서럽게 만들었던 자들은 누구이며 당신들이 남성들에 비해 억울한 대우를 받는 세상을 만든 자들이 누구인가? 당신들과 같은 나이의 갓 세상에 적응하느라 바쁜 20대, 30대 남자들인가? 정말 그러한가? 아니면 당신들이 한남 유충이라고 부르는 티 없이 맑은 어린아이들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가? 범인은 누구인가. 그다지 명석하지 못한 내가 보기에도 확실한 범인은 우리의 윗세대다. 혹은 그들의 더 윗세대다. 나이 먹은 기득권자들이다. 그리고 혹은 기득권자들의 나이 먹은 아내와 어머니들이다. 그 기득권자들이 정치권에 틀어 앉아 자신의 과실과 비리를 감추기 위해 젊은이들의 분노의 화살을 서로에게 향하게 하고 있다. 그 명석하고 예리하며 화가 나면 불과 같이 달려드는 젊은이들의 날 선 창이 자신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젊은 남녀가 서로를 끝없이 싸우도록 끝없이 싸움을 뒤에서 조장하는 것이다. 왜 그것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이제 서로에게 향해 있는 창을 거두고 다른 곳을 향하게 하여야 한다. 여자들이 맘 놓고 아이들을 낳고도 자신의 커리어를 단절시키지 않을 수 있는 정책을 내도록 기득권층인 회사의 사장들과 정치인들을 그 창으로 위협하여야 한다. 아이들을 맘 놓고 맡기고 엄마들이 일하러 갈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출산율 저하가 문제라는 식의 이야기를 해대는 정치인들의 입을 찢어놓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가 직장 내에서 혹은 같은 직업군에서 같은 스타트 라인에 설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젊은 남녀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실 이제는 예전에 비해 그런 문화가 많이 자리 잡기도 했지만 아직 어딘가에는 그 점에 있어 여성들이 억울한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점을 함께 의논하고 해결해 낼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해내어야 한다. 만약에 그것에 대하여 모종의 이유로 어느 늙은 기득권자가 반대한다면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이 세상을 살아가고 누릴 것은 우리들이기에 혹은 우리들의 자식들이기에 늙고 해묵은 욕심이 많은 그 기득권을 창으로 찔러 죽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모든 젊은 남자가 성범죄자는 아니다. 그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남자들 중에 누가 성범죄자일지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두려운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여자들은  사실을 알고 있을까? 많은 수의 남자들이 어두 컴컴한 골목에서 어느 여성과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둘이 걷고 있는데 여성이 뒤를  돌아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 괜히 내가  괜히 신경 쓰여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여자가 가던 길을 한참 앞서 가버리길 기다리고 있는 것을 말이다. 우리 남성들은 그런 식으로 당신들의 공포를 이해하고 배려하기도 한다는 이야기이다. 정말이지 우리도  성범죄자 놈들이 밉다. 나의 어머니를, 나의 와이프를, 나의 여자 친구를, 나의 여동생을, 나와 다른 성별의 친구를, 나의 딸을 위협하는  막돼먹은 놈들을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다. 그러니 같은 목소리로 그들에게 합당한 벌을 내릴  있는 제도를 만들어내라고 법관과 정치인들에게 성토해야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힘들게 벌어서  세금으로 헛짓거리  그만하고 길거리마다 밝은 조명과 CCTV  달아달라고도  말하고 말이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은 이것이다. 정의에 침묵하고, 차별과 억압에 무감각하고, 어떻게든 기득권의 젖꼭지를 물기 위해 그들의 꼭두각시가 된 청춘은 갓 20살이라 하더라도 썩은 청춘이다. 우리의 젊음은 그러라고 부여된 것이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썩은 곰팡내 나는 각종 극성 커뮤니티들의 게시판에서 나와, 우리를 거짓 행복으로 중독시킨 SNS에서 나와 젊음을 농락한 다양한 방식의 눈가리개를 벗고 진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젊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늙고 탐욕스러운 기득권자들에게서 반드시 쟁취해내야 한다. 이게 내가 바라는 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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