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해
나는 꽤나 재미있는 시절에 젊은 날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가장 인생이 혼란스럽지만 재미있던 시절인 18살부터 23살까지 말이다.
2000년대 초반, 그 시절의 특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그때 그럴만한 나이였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설레는 일들이 툭하면 찾아오는 시절이었다.
그 수많은 설레는 것들 속에서 나를 가장 흔들어놨던 건 아마도 음악이었을 것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라디오헤드, 더 스미스, 오아시스, 콜드플레이, 진, 너바나, 제프 버클리 등의 음반을 CDP로 들으며 자랐다. 난 좀 젠체하기 좋아하고 마음속에 흑염룡이 가득한 징그러운 사춘기 소년이었고 나의 그런 성향은 남중에서는 쉽게 무시당하고 따돌림당하기 딱 좋은 요소였을 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 있어 날 둘러싼 세상이란 것은 늘 답답하고 촌스러웠으며 지나칠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남들 사는 것처럼 되는대로 평범하게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은 늘 나를 잠식했다.
늘 주변의 사람들은 말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사실 제일 어려운 일이고 행복한 것이라고.” 나는 그 말을 좀처럼 믿고 싶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대라는 곳에는 인디락 씬이 부흥하게 되었고 나는 그것에 푹 빠져버리게 되고야 말았다. 코코어, 언니네 이발관, 미선이, 델리 스파이스, 롤러코스터, 전자양, 몽구스 등등..
꼬깃 꼬깃한 고등학생의 용돈을 모두 쏟아부어 난 그들의 음반을 샀고 공연을 보러 다녔다.
홍대 곳곳에 들어찬 공연장들을 중심으로 홍대 길거리는 나날이 재밌게 변해갔다. 그건 어떤 느낌이라던가 하는 두리뭉실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실체를 가진 변화가 매일 같이 생겨났다.
아마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비슷한 기대감으로 홍대를 들락날락거렸을 것이다.
고리타분한 세상을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갈 힘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낙관은 겨우 뺨 두대를 맞고 끝나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조금 방심했던 틈을 타고서 말이다.
지금의 홍대 거리와 그 시절의 홍대 거리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지금의 홍대 거리는 그 시절의 홍대 거리가 죽고 남은 시체를 뜯어먹고 자란 욕망의 도시일 뿐이다. 이 말이 나이 든 사람의 넋두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음악 캠프 성기 노출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벌어졌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한 사건이다. 워낙 자극적이었고 별난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짧게 요약해서 말하자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럭스라는 인디 펑크락 밴드가 가요 무대에 올라가게 되었다.
럭스는 메이저 방송국 무대에 인디락 밴드들의 활기와 에너지를 무대에 전달하겠다며 동료 밴드 30인과 함께 무대를 함께 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중 동료 밴드 멤버 중 두 명이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성기 노출을 한 채 무대를 방방 뛰어다녔다. 무려 생방송에서 말이다.)
사람들은 크게 경악했다.
온갖 뉴스와 미디어가 해당 사건을 보도했고 네이버에는 해당 사건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다들 궁금해했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딴 짓을 저질렀는가에 대해 말이다. 각종 매체가 인터뷰와 시도했지만 그들은 답변을 거부했다. 아니 일반적으로 사람들는 그들이 모든 답변을 거부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두 번이나 명확하게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방송 중 바지를 내려 자신의 자지를 보여주었고 두 번째로 경찰에 이송되는 중 질문을 해대는 기자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뻑큐를 날렸다.
도대체 더 이상 무슨 설명을 해달란 말인가.
충분히 그들은 표현했지 않은가. “조까라고.”
무슨 동요 합창단을 섭외한 것도 아니고 펑크 밴드를 섭외해놓고 그들이 그들의 특기인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했다 해서 그들을 나무라야 한단 말인가.
분칠하고 아양이나 떨어대는 아이돌 그룹들의 공연 사이에 무슨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인디 밴드들의 자리 딱 하나 만들어 주고 그 틈에서 손 싱크 맞춰 광대처럼 재롱이나 부리라는데 참내 나 같아도 바지 내리고 껑충 뛰었을 것이다. 경직되고 촌스러운 세상에 도시락 폭탄이라도 하나 던져보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냥 그것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어야 한다.
“하하하 웃긴다. 쟤네 골 때리네.” 정도로 말이다.
티비로 그깟 쪼그만 꼬추 2개 좀 본다고 세상에 도대체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전쟁이 일어나나?? 역병에 걸리나??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이 뒤로 후퇴하나?? 아니면 젊은 친구들이 그걸 보고 시도 때도 없이 꼬추라도 내놓고 다닐까 봐 겁이 났나??
기득권, 지상파, 제도권의 아저씨들의 보복은 그 정도가 지나쳤다.
지상파는 약 4년간을 그 해당 당사자조차 아닌 인디 밴드들이 자신들의 문턱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댔으며 정치권은 홍대의 클럽들을 밀어버리겠다며 겁박했다.
미디어는 그들을 그냥 답도 없고 사상도 없고 미친 쓰레기들로만 몰아갔다.
미디어에 놀아난 대중들은 인디 밴드들을 사회악으로 규정해 갔다.
그들은 달랑거리는 꼬추 2개를 보여준 죄를 물어 군대에서나 볼 법한 연좌제를 적용하여 여러 사람의 밥줄과 꿈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누군가는 자업자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기회를 발로 차 버린 꼴통 집단들을 무엇하러 옹호하느냐라고 말이다.
하지만 벌은 죄를 지은 값만큼만을 받아야 하며
타인의 죄로 인해 억울함을 겪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우린 그런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 사건 때 나를 비롯한 우리는 그냥 막연하게 그 상황을 관망하기만 했다. 흔들리는 꼬추가 TV에 나왔단 사실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그 사실로 인해 대중과 시민의 삶이 변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미디어는 그 이슈로 한동안 재미를 봤으며 인디 밴드들은 사라져 갔고 공연장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보통 그 자리에는 힙합 클럽이라는 것이 생겨났으며 잠시간 홍대에는 우리말로 된 음악은 좀처럼 들리지 않게 되었다.
“홍대에 가면 여자랑 부비부비를 할 수 있대!!”
이제 더 이상 꼬추는 TV에서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얌전하게 각자의 바지 안에 들어가 처음 본 이성의 엉덩이 사이에서 비벼지게 되었다.
꼬추는 이제 저항의 상징에서 다시금 본래의 목적인 짐승 마냥 눈먼 생식의 상징으로 돌아오게 되고 만 것이다.
도대체 어느 게 더 외설스럽고 저질스럽단 말인가?
진짜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마지막으로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거리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 놓았던 곳은 홍대 거리의 젠틀리 피케이션 때문이었다. 그 젠틀리 피케이션의 씨앗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예술과 문화의 거리를 만들어 놓으니 늙은이들이 오히려 신나 자신들의 지갑을 불리고자 문화 예술 관광특구를 만들었다.
그 사실에 신난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올려 예술가들과 그들을 위한 공간을 운영하던 자영업자들을 거리에서 전부 다 쫓아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헌팅 포차와 부비부비 전문 힙합 클럽, 프랜차이즈 카페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고야 말았다. 그렇게 변한 자리에 무슨 문화와 예술이 있어 그것을 빌미로 특구를 만든단 말인가 역겨운 일이다.
그 홍역들이 끝나고 현시대의 인디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밥벌이를 이뤄내기 위해서 거대 자본이 만들어낸 랩 차력 경연 방송에 나가 성과를 보여주어야만 하게 되었다.
인디펜던트는 이제 자본과 시스템에 농락당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을 통해 예술을 생산하고 독자적 판매 루트를 찾아내는 것이 아닌 그저 아직 메이저가 되지 못해 비참한 무언가로 변질되고야 말았다.
거대 자본이 깔아준 놀이터에서 그들이 허락한 틀 안에서만 놀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젊음은 진짜 젊음일까?
의심스럽다. 나이 든 나라도 반항하고 싶다. 진짜 바지라도 벗어나 하나?
기득권이 젊음을 모두 앗아가고 사소한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 들기 전에 말이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