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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정 Nov 23. 2022

[ONLY BOOK] - 유쾌한 뻥, 소설만의 매력

천명관의 『고래』

천명관의 『고래』는 ‘능란한 입담으로 흥미롭고 맛있게 뻥을 치는, 낯설고도 매혹적’인 소설이며, ‘이야기의 힘과 상상력’이 살아있는 소설이다. 무릇 소설이란,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소설은 ‘허구적’이어야 한다. 작가에게는 이러한 허구적인 이야기를 ‘있을 법한’ 이야기로 풀어나가기 위한 전략과 계획과 상상력이 주어진다. 천명관의 전략은 한마디로 낯설고 신선함에 있다. 한 번 들면 놓을 수 없는 책, 그 뻥같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고래』는 거대한 생명력과 욕망을 표상함과 동시에 그러한 ‘거대함’의 덧없는 속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주요인물 금복에게 영향력을 주는 세 가지 ‘거대함’은 ‘걱정’과 ‘고래’, 그리고 ‘춘희’로 요약된다.      

‘걱정’이는 부두에서 뱃사람에게 나쁜 일을 당하게 된 금복을 구해 주고 금복의 ‘남자’가 된 거대한 육체의 소유자이다. ‘걱정’은 죽음의 고비를 불사조처럼 넘고 날아가는 ‘거대한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생사를 오갈 때 그를 살리기 위해 ‘칼자국’의 모든 제안을 받아들인 금복의 비상식적인 행위가 모두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징적 서사가 있기에 가능해진다. 

      

산골 소녀가 부두로 와서 처음 본 ‘고래’의 거대함은 금복의 욕망을 표상한다. “한 개인이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그 개인이 지금의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때 초월은 자기가 욕망하게 되는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러나 욕망이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결여다. 따라서 금복의 질주하는 욕망은 결국 사람들에 의해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 가는 고래”처럼 종국에는 파괴될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마지막 ‘거대함’은 금복의 딸 ‘춘희’로 재현된다. 춘희는 태어났을 때 이미 칠 킬로그램에 달했고, 열네 살이 되기도 전에 백 킬로그램을 육박했으며, 오랜 감방생활을 마치고 나온 현재에도 백이십 킬로에 육박하는 육체를 가졌다. 금복에게 ‘걱정’이 생명력의 상징이었다면 ‘춘희’는 희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춘희가 오랜 감옥생활을 마치고 빈 벽돌 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변하지 않고 살아남아 있던 것은 ‘개망초’뿐이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한다. 춘희는 개망초 밭에서 묵묵히 벽돌을 만들기 시작함으로써 다시 희망을 써나간다.  

출처: pinterest.com


이 작품을 재미있고 신선하며 황당한 ‘뻥’으로 이끈 전략은 ‘교란’, 특히 육체적 교란에 있다. 금복은 산골 마을에서 생선장수를 따라 부두로 와서 살게 된 꿈 많은 소녀였다. 썩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여성스러웠던 금복은 특유의 냄새로 인해 남자가 끊이지 않았고, 열 남자 마다않고 받아들이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내키는 대로 아무 사내하고나 살을 섞는 자유분방”했던 금복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금복이 어느 날부터인가 어린 창녀의 젊고 아름다운 육체에 몰입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것이 금복의 실제적이고 육체적인 징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금복의 성기가 여성의 것에서 남성의 것으로 실제로 진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황당한 육체적 교란은 ‘쌍둥이자매’를 통해서도 일어난다. 쌍둥이자매는 딸만 줄줄이 일곱이 태어나고 그 뒤에 태어난 자매이다. 화가 난 아버지는 쌍둥이에게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싸잡아 쌍둥이’로 부르다가 여섯 살 되는 해 서커스단에 팔아버렸다. 공연을 하다가 코끼리 ‘점보’에게 밟힌 쌍둥이 언니는 결국 골반이 부서져 여자구실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쌍둥이 동생은 결혼할 나이가 되어 한 남자의 첩실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를 조르고 조른 끝에 언니와 코끼리 ‘점보’까지 함께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죽자 그의 본처가 이들을 모두 내쫓아버렸다. 쌍둥이자매는 코끼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술집에서 일을 했고, 몸까지 팔게 되었지만 다행히 그동안 모은 돈으로 술집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행동하는 쌍둥이자매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작품을 읽는 내내 혼란스럽다.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독자는 헷갈리고, 작품 속 인물들끼리도 헷갈리고, 쌍둥이자매와 몸을 섞고 지내는 남성도 헷갈린다. 급기야 자매들끼리도 자신이 언니인지 동생인지, 골반을 다쳐 여자구실을 못하게 된 사람이 언니였는지 동생이었는지도 헷갈리게 만들어 놓는다.   


이처럼 『고래』는 노파, 금복, 춘희라는 세 여성 인물이 이끄는 굵은 서사에 그와 얽히고설킨 다양한 인물군을 가지처럼 뻗어놓고, 과거와 현재, 독자와 인물을 쥐락펴락 흔들어 놓는다. 작품 중간 중간 작가가 판소리 사설꾼처럼 개입하곤 하는데, 이러한 개입은 몹시 수다스럽고 익살스러우며, 때론 짓궂고 허풍스럽다.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독자는 마치 노련한 약장수에게 홀렸던 청중이었던 것처럼 정신이 번쩍 돌아온다. 그런 유쾌한 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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