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기억이 지워지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
질병이라는 단어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우리 할머니.
그녀에게 치매라는 병이 찾아왔다.
할머니는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일을 하셨다.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을 하셨다.
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다 하셨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두 개의 일을 병행하셨을 정도였으니까.
할머니의 기쁨은 나와 동생이 할머니 집에 방문할 때마다 고기를 사 먹이고 용돈을 주시는 데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정하신 모습을 보여주셨던 할머니가 아플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할머니를 보면 건강해 보이시는데 몸의 건강과 기억의 건강은 전혀 연관이 없었다.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잊혀 간다는 것이 슬펐다.
24년 4월 어느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할머니 집에 방문했다.
할머니 집에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밥을 먹기 위해 아버지가 찾아둔 중국집에 방문했다.
블루리본을 10년 넘게 받은 중국집이었다.
가게 안쪽에 있던 커다란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점심식사.
다른 것은 할머니의 기억뿐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할머니는 똑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반복하셨다.
"학교는 언제 졸업하니?”
“지금 3학년이니까 2년 정도만 더 다니면 돼요.”
“여자친구는 있니?”
“네. 여자친구있어요.”
그리고 장교로 근무 중인 동생에게도 반복했던 질문.
“그래서 전역은 언제라고?”
“아직 2년 넘게 남았어요.”
나에게 물어보는 졸업과 여자친구 질문, 동생에게 물어보는 전역 질문.
중국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똑같은 질문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와 치매라는 단어는 물과 기름 같아서 그때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거 같다.
할머니가 나이가 있으셔서 내 대답들을 잘 기억 못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항상 정정하신 모습만 보여주셨던 할머니의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가 내 대답을 잘 기억 못 하시는 거 같아.”
“최근 들어 그러시더라고.”
“어머님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 같았는데…”
내 이야기에 아버지가 답변했고 어머니도 말을 더했다.
그 이후로도 할머니는 컨디션이 좋아 기억을 잘하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똑같은 질문들을 반복하셨다.
할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할머니는 똑같은 질문을 내게 하셨다.
수십 수백 번의 질문에도 나는 항상 처음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답했다.
수백 번 반복되는 질문이 힘든 게 아니라 할머니가 내 대답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이제 이야기하지 않아도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보았고 진단을 받았다.
우리가 생각하던 그 병이었다.
그녀에게 치매라는 병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