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전통 민화 호작도(虎鵲圖)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와 액운을 막는 호랑이를 함께 그려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저는 이 익숙한 도상을 비틀어 바니타스의 한 장면으로 다시 그려보았습니다.
그림의 중심에는 한때 온 숲을 지배했을 호랑이의 잔해가 자리합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 굳어버린 해골과 그 아래 깔린 호랑이 가죽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박제된 과거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그 위, 휴대용 해시계인 일영원구(日影圓球) 위에 올라앉은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대신 죽어버린 제왕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한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존재도 시간 앞에서는 한낱 박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까치의 저 담담한 눈빛이 말해줍니다.
해골의 좌우에는 우리 전통 장례 문화에서 망자의 마지막 길을 지키던 꼭두들이 서 있습니다. 거꾸로 선 꼭두와 피리를 부는 꼭두는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다음 세계로의 이행임을 보여주며, 삶의 끝자락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적인 온기를 전합니다.
해골 좌측의 거울은 존재의 유한함을 비추는 바니타스의 핵심 도상입니다. 거울 속에서 점차 스러져가는 초승달은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조용히 일깨웁니다. 우측의 전등은 아직 켜져 있지만,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일렁이고 있습니다.
해골 뒤로 고결하게 피어난 연꽃 아래에는 씨를 퍼뜨리고 검게 시들어가는 연밥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화려한 아름다움도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쇠락의 순환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연꽃은 그것을 알면서도 오늘 피어납니다.
인생을 하나의 여행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저마다의 가방에 무엇을 채우며 걸어가고 있는 걸까요. 이번 그림을 그리며 저는 제 삶이라는 행장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전통 민화 호작도의 구성을 빌렸지만, 호랑이의 기세 대신 여행이 끝난 뒤 남겨진 낡은 가방과 그 주변의 물건들을 담았습니다.
낡은 가방 안에는 지나온 시간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을 마른 장미는 바짝 말라있고 빨간 하이힐은 굽이 부러져 더는 신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무척이나 소중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분주히 달렸던 열정의 증거들입니다.
자정을 가리키는 시계 앞에서 이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 순간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가방 위에 걸쳐진 호피 코트는 제가 한때 품었던 부귀영화에 대한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그 곁에 놓인 거울은 그 화려함이 영원할 수 없음을 묵묵히 비추고 있습니다. 모피 위에 내려앉은 까치는 화려한 가죽 속에 감춰진 고단함을 가만히 관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가방 한 가운데에는 바리데기 꼭두를 그려 넣었습니다. 버림받았으나 효성으로 아버지를 구하고 저승신이 된 바리데기 공주는 망자의 마지막 길을 외롭지 않게 지켜주는 동반자입니다. 그녀의 미소는 죽음이 단절이 아닌 다음 세계로의 이행임을 보여주면서, 삶의 끝자락에서도 온기가 남아있음을 전합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 여행길에도 이런 따뜻한 길동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그녀가 손에 든 꽃 한 송이가 지친 몸과 마음을 조용히 다독여주는 것만 같습니다.